‘바람이 분다’, 초반 콧바람이 너무 셌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JTBC 월화드라마 <바람이 분다>가 시작부터 시기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같은 시간대에 방영한 <눈이 부시게>가 알츠하이머 환자를 다룬 수작에다가, 주연배우 김혜자는 백상예술대상까지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바람이 분다>에서 알츠하이머 환자로 등장한 배우 감우성은 지난해 출연했던 SBS <키스 먼저 할까요?>를 통해 SBS 연기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당시 감우성이 연기한 손무한 역시 생을 정리하는 시한부 중년남자였다. 그리고 <바람이 분다>의 권도훈 역시 알츠하이머임을 깨닫고 생을 정리하는 남자다.

비록 겹쳐지는 것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바람이 분다>는 극 초반 꽤 괜찮았다. 서로에 대한 피로가 극에 달한 권도훈과 이수진(김하늘)을 보여줄 때는 현실감 있는 부부의 리얼라이프를 생중계하는 느낌이었다. 거기에 아이를 원하는 이수진과 딩크족을 바라는 권도훈의 갈등선 역시 기존에는 보지 못한 참신한 갈등이었다.(물론 도훈이 아이를 원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본인이 알츠하이머 환자이기에 수진의 새 출발을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이처럼 <바람이 분다>는 이미 시청자의 눈물샘을 쏙 빼놓을 세팅을 완벽하게 해놓은 작품이었다. 비록 진부하더라도 배우자 중 한 사람이 아파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보는 이의 마음을 바람처럼 뒤흔든다. 그것은 우리가 바라지 않는, 하지만 언젠가 현실적으로 닥칠 가능성이 너무 큰 비극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감우성이나 김하늘 모두 슬픈 감정에는 타고난 능력을 지닌 주연배우들이다. 감우성은 남자 중견배우들 중에서도 매력적인 감정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다. 느끼하지 않게 로맨스를 연기할 줄 알고, 쿨하면서도 먹먹하게 중년남자의 슬픔을 그려낼 줄 안다. 김하늘 역시 그녀의 모든 연기가 탁월하지는 않아도, KBS <공항 가는 길> 여주인공 최수아처럼 드라마의 멜랑콜리한 멜로적 흐름을 그려낼 때 특유의 분위기가 살아난다. 그러니 마음을 아리게 만드는 서사를 담은 <바람이 분다>에 이 두 배우가 정말 잘 어울린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극중 이수진이 갈치비늘 원피스에 뚜껑 앞머리 특수분장 코를 붙이고 등장하면서 <바람이 분다>는 틀어져 버렸다. 너무 과도해서 인위적으로 보이는 높은 코 분장에 헛웃음이 터지기 때문이다. 거기에 과하게 사이버틱한 의상까지 도드라지면서 갑자기 이수진은 20대 한국 여성이 아니라 외계에서 온 20대처럼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니, <바람이 분다>를 보면서 <내 딸 금사월>이나 <아내의 유혹> 같은 이야기를 기대하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 <바람이 분다>는 코믹 막장극이 아니라 멜로물에 가까운 드라마다. 하지만 멜로물에도 가벼운 유머장면을 양념처럼 집어넣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극 전체의 분위기를 깨버릴 정도의 유머는 선을 넘은 것이다.



<바람이 분다>는 코만 변신한 김하늘이 계속해서 등장하면서 극 특유의 감성적인 분위기를 완전히 깨버렸다. 이 우스꽝스러운 분위기에서 감정선을 잡고 연기하는 주연배우들이 신기하게 보일 정도다.

과연 <바람이 분다>가 콧바람 때문에 방향이 완전히 바뀐 드라마의 분위기를 되살릴 수 있을까? 아직 가능성은 없는 건 아니다. <바람이 분다>의 본격적인 서사는 아직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이혼이 진행되고, 권도훈의 알츠하이머가 증상이 점점 깊어질 때가 이 드라마가 지닌 감정선의 진짜 시작이기 때문이다. 물론 <바람이 분다>의 초반 콧바람이 너무 센 탓에 진즉에 이 드라마를 못 견디고 나가떨어진 시청자들이 이미 많겠지만 말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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