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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업계 주름잡는 스타 디자이너, 그 빛과 그림자
기사입력 :[ 2019-06-14 14:03 ]
자동차 디자인 한 사람이 오래해도 괜찮을까?

“자동차 디자인에 수장의 역할은 지대하다. 적절한 혁신과 변화를 준다면 한 사람의 역량이 긍정적으로 표출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루한 디자인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임유신의 업 앤 다운] 혼자 튀는 게 나을까, 여럿이 다 잘하는 게 좋을까? 사회 여러 분야에서 의견이 분분한 일 중에 하나다. 보통 음악 그룹은 리더가 이끌고 간다. 애초에 팀 내에 격차가 존재해서 구성원들이 리더를 보조하는 구조다. 관심은 리더에게 쏠리고 개인 활동도 대부분 리더가 독식한다. 통상 리더가 인기가 많고 능력도 앞서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인정하고 따르는 분위기다. 그룹의 특색도 리더가 확립하는 등 모든 일을 리더가 좌지우지한다. 리더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능력을 잘 발휘한다면 꾸준히 인기를 이어간다. 위험성도 커서 리더가 사건을 일으키면 팀도 순식간에 공중분해 된다.

아이돌은 그룹 단위로 활동한다. 원칙적으로는 멤버 전원이 공평하게 활동한다. 팀의 개성도 소수 구성원에게 의존하지 않고 전체 특색을 살리는데 주력한다. 단점도 없지 않다. 집단성을 추구하지만 실제로는 잘 나가는 한두 명이 팀을 이끈다. 소속사에서 구성원 활동을 공평하게 제어하지 않으면, 방송활동이나 CF 등은 잘 나가는 소수에게 몰린다. 결국 팀 내 중요도에 따라 내부 구성원 사이에 차이가 생겨 분열된다.



자동차회사 소속 인물 중에서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CEO 정도다. CEO 외에는 디자이너를 꼽는다. 눈으로 보이는 부분이다보니 디자인은 자동차 요소 중에서 관심이 높은 편이다. 차에 조금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CEO 외에 디자이너 이름 정도는 안다. 물론 모든 디자이너가 그렇지는 않다. 이름을 널리 알린 디자이너는 대체로 수장급에 한정된다. BMW 아드리안 반 호이동크, 메르세데스-벤츠 고든 바그너, 재규어 이안 칼럼, 볼보 토마스 잉엔라트, 현대기아차 피터 슈라이어 등이 수장으로 이름을 날린다.

디자인 수장은 그룹 내 디자인을 총괄한다. 실질적인 디자인이야 수석 디자이너와 실무자들이 해내지만, 방향을 잡고 이끄는 역할을 수장이 한다. 때에 따라서는 수장이 실제로 디자인을 하는 경우도 있다. 정체성 확립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동차 디자인은 수장의 기조를 따라간다.



수장의 능력이 우수해도 한 사람이 계속해서 이끌면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 다른 곳에서 일하는 수장을 데려 올 때는 디자인 유사성에 대한 위험성도 고려해야 한다. 디자인은 창조적인 작업이라 얼마든지 다르게 그려낼 수 있지만, 디자이너의 색채는 대체로 일정하다. A 자동차회사에서 일하던 수장이 B 회사로 자리를 옮기면, B 회사 디자인이 A 회사 디자인과 유사해지는 일은 흔치 않게 일어난다. A 회사 디자인에서 B 회사 색채가 빠지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아예 닮아 버린 채로 계속 이어지기도 한다.

자리를 옮길 때 외에도 문제는 생긴다. 한 사람이 한 회사에서 오래 이끌면 디자인이 지루해진다. 디자인에 변화를 줘야할 때 과감히 바꾸면 문제는 덜하지만, 디자인 바꾸기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오래 동안 쌓아 올린 정체성, 현재 및 앞으로 밀려올 트렌드, 그룹 내 타 분야와 관계 등 엄청나게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수장이 개인 취향을 고수하면 비슷한 디자인이 몇 세대씩 이어지기도 한다.



디자인 혁신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켜 디자인 전성기를 이룬 브랜드가, 이후 변화를 주지 않아 관심이 떨어진 예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최근 BMW 디자인이 그렇고, 아우디의 경우 세련미는 여전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오래도록 달라지지 않는다는 평을 받는다. 디자인 신화로 꼽던 최신 벤츠 디자인도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반면에 볼보와 푸조는 수장의 활약으로 요즘 가장 주목 받는 디자인으로 인정받는다. 피터 슈라이어가 기아차 디자인을 바꿔 놓은 일화는 유명하다. 디자인 혁신 작업도 10년이 넘은 터라, 기아차 디자인이 정체에 빠질지 새로운 혁신을 일으킬 지는 지켜봐야 한다.

한 사람이 디자인을 책임을 지면 장점도 있다. 정체성 확립에 유리하고, 일관된 방향을 유지하기 쉽다. 수장의 역량을 잘 발휘해 적기에 디자인에 변화를 준다면 디자인 명성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다. ‘누구 디자인’이라는 인식이 박히면 디자인은 물론 자동차 모델과 브랜드 인지도 상승효과도 얻는다.



며칠 전 재규어 디자인 수장 이안 칼럼이 은퇴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1979년 포드에서 시작해 TWR을 거쳐 1999년 재규어를 맡았다. 여러 작품으로 유명하지만 애스턴마틴 DB7과 뱅퀴시로 유명하다. 재규어 초창기 시절에는 전통적인 재규어 감성을 현대적으로 잘 해석한 모델을 그려 실력을 인정받았다. 2000년대 중후반에는 클래식한 멋을 오래도록 유지하던 재규어 모델을 미래지향적인 모습으로 싹 바꾸는 대대적인 혁신작업을 수행한다. 오래도록 한 브랜드의 수장 자리를 지켰지만 디자인 변화에 과감히 도전한 예로 꼽힌다.



BMW 크리스 뱅글은 독특한 경우다. 오펠과 피아트를 거쳐 1992년 BMW에 들어간 뱅글이 주목 받기 시작한 때는 2000년대 초 7시리즈를 내놓으면서부터다.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BMW 디자인을 완전히 뒤엎었고 세계 자동차 디자인 흐름을 바꿔 놓았다. 크리스 뱅글은 큰 혁신을 이룬 후 한창 잘 나가던 2009년 BMW뿐만 아니라 자동차 디자인 업계를 떠났다. 요즘도 BMW 디자인 하면 크리스 뱅글을 떠올리는 사람이 더 많다. 수장으로 계속해서 남았다면 더 큰 일을 이뤘을 수도 있겠지만 가장 좋은 모습만 남기고 떠났다.

수장의 개인 역량을 꼭 강조할 필요는 없다. 일부 자동차회사는 아예 수장이 있어도 드러나지 않는다. 수장 개인의 역량을 강조하기보다는 디자인팀 전체가 관여하는 구조다. 수장이 드러나는 곳보다 디자인이 떨어지지도 않는다.



자동차 디자인은 회사의 전략과 비전의 산물이지만, 최종적으로 디자인을 접하는 이는 구매자들이다. 아무리 좋은 디자인이라도 오래 보면 질린다. 방향성 없이 혼란스럽게 변하는 디자인은 지양해야 하겠지만, 시기적절한 변화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그런 변화를 끌어내지 못한다면 수장 한 사람의 장기집권은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임유신

임유신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 <모터 트렌드>, 등을 거쳤다. 얼마 전까지 글로벌 NO.1 자동차 전문지 영국 BBC <탑기어>의 한국판 편집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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