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줄 테니 아무 말 말라고요?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어떤 보도는 질 나쁜 악몽처럼 며칠씩 머릿속에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MBC [PD수첩]의 이번 보도가 그랬다. 수돗물로 샤워를 하고, 손을 씻고, 화분에 물을 주고, 쌀을 씻는 그 모든 순간에,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비 오던 밤 흘려보낸 정체불명의 폐기물이 생각이 나 몸서리를 치게 됐다. 카드뮴을 비롯해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많이 배출되는 산업이기에, 아연을 제련하는 시설은 정화시설과 후처리시설을 철저하게 갖춰야 한다. 그러나 봉화군 영풍 석포제련소의 배출구에서 나오는 물에서는 하천수 기준 수치를 38배 초과하는 양의 카드뮴이 검출됐다. 경상남북도에 살고 있는 1300만 시민들의 식수원인 낙동강의 최상류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방송은 화요일에 나갔지만, 주말이 되도록 그 잔상을 도저히 떨칠 수 없었기에 부득이 다 늦은 리뷰를 내보낸다. 정석희 평론가는 영풍의 뒤를 봐주고 있는 배후의 비호세력들이 누구인지 더 끈질기게 추적해 줄 것을 [PD수첩] 팀에 요구했고, 이승한 평론가는 봉화군의 경제 생산이라는 이유로 매번 책임을 피해온 영풍 석포제련소의 행태를 ‘인질극’이라 평했다. 김선영 평론가는 이 모든 일이 피해를 입는 당사자들이 주변부에서 소외당해 온 계층이기에 벌어진 일임을 지적했다. 지방이라서, 나이든 하청업체 노동자라서, 농민이라서, 제 입장을 말할 길 없는 동물들과 나무들이라서. 독자들의 주말을 다시 한번 흉흉하게 만들어 죄송하지만, 진심에서 나온 우려를 담은 리뷰를 보낸다. 이 오랜 소외가 빚은 인질극을, 이제는 끝내야 하지 않는가.



◆ 영풍을 비호하는 자 누구인가

지난해 ‘영풍 제련소 48년 만에 조업 중지’라는 기사를 봤다. 이 영풍이 내가 자주 들르는 그 영풍과 무슨 관련이 있나 싶어 찾아봤었다. 1960년대 일본에서 ‘이타이이타이병’으로 크게 문제가 된 아연 제련소를 물 맑기로 소문난 경북 봉화군으로 들여온 것이 영풍이었다니. 실망스러웠지만 행정 처분이 내려진 만큼 문제가 해결됐거니 잊고 살았는데 이번 주 MBC [PD수첩] ‘책과 독, 영풍의 두 얼굴’ 편을 보니 이번엔 더 나아가 120일 조업 중지 판정을 받았단다. 그간 일자리 지역 경제를 인질삼아 시정은커녕 제대로 된 검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그런데 영풍 측은 공업용수 기준 수치 3만 배 이상의 카드뮴이 검출됐음에도 현미경 검사라는 주장이다. 뻔뻔하기 이를 데 없다. 봉화 군수를 비롯해 감독할 책임이 있는 전·현직 공무원들은 서로 책임을 미루기 바쁘고, 동네 이장의 반응이 가관이다. 오염이 됐다면 수명이 짧아져야 옳은데 이 지역에는 장수 노인이 많지 않느냐, 영풍에서 개량 한복 한 벌씩 선물해서 기분 좋아하신다는 답. 제3 공장을 불법 증축 사용해놓고도 영풍은 모르쇠로 답한다. 다 시행업자가 알아서 그리 했다는 핑계다. 봉화군은 경제적 손실을 우려해 벌금만 부과하고 말았단다.

영풍으로부터 불법적인 잠입취재와 허위 주장의 악의적 보도라는 항의를 받은 ‘책과 독, 영풍의 두 얼굴’은 영풍 경영진, 공무원, 환경운동 연구가, 농민, 주민, 제련소 노동자, 수생태보전과 사무관 등 여러 목소리를 담았다. 그에 대해서는 묵묵부답, 잠입취재 부분만 물고 늘어지니 어이없달 밖에. 제련소 임원들의 오리발에 제작진이 공장 주변 몇몇 곳에서 직접 채수해 수질 검사를 의뢰하기도 했는데 내가 드라마를 많이 본 탓인가. 깜깜한 밤에 들킬세라 조심조심 다니는 장면이 어찌나 걱정스럽던지. 그럼에도 부탁하고 싶다. 기왕 파헤친 김에 누가 이들을 비호하는지, 후속 보도가 꼭 이어지기를.

정석희 방송 칼럼니스트 soyow59@daum.net



◆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줄 테니 아무 말 말라는 인질극

“허락받는 것보다 용서받는 게 더 쉽다.” 주로 남자들이 많이 모인 온라인 취미 동호회에서 유행하는 말이다. 새로운 렌즈나 낚시대, 게임기 등 사려면 큰돈을 지출해야 하는 품목들은, 사기 전 아내에게 허락받기 어려우니 일단 질러놓고 후에 용서를 비는 쪽을 택하라는 이야기다. 유부남들끼리 농담처럼 나눠도 한심한 이 이야기는, 영풍이 지은 경북 봉화군 석포 아연제련소 제3공장쯤 오면 거대한 악몽으로 돌변한다.

2005년 영풍은 유해물질 배출이 적은 제4종 사업장을 짓겠다며 제3공장 건설의 허가를 신청한다. 그런 뒤 허가도 받지 않고 유해물질 배출 1종 사업장으로 증축해 운영을 시작한다. 주변에 보전산지와 하천부지가 있기에 1종 사업장을 지어서는 안 되는 부지다. 그런 자리에 허가도 없이 막무가내로 지은 1400억 원짜리 불법공장에 떨어진 행정명령은, 고작 14억 원의 강제이행금에 불과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솜방망이 처분이 내려진 것인지 묻는 [PD수첩] 제작진에게, 봉화군청 도시교통과 직원은 이렇게 말한다. “기업 손실하고 지역의 경제 상황하고 주민들의 경제활동분야(까지 고려하다보니)..” 봉화군의 경제 생산의 많은 부분을 영풍에게 의존하고 있는 탓에, 영풍에게 큰 타격이 갈 만한 처분은 가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석포면 마을이장협의회장은 보다 더 노골적으로 말한다. “석포면 전체가 존폐의 위기에 놓여있고, 영풍이 있음으로써 있는 주민들이지 없으면 떠나야 할 주민들이고. 그러면 과연 우리가 우리 생존권을 어떻게 합니까? 회사를 살려 달라 하는 것이 우리 생존권이에요.” 가장 큰 피해를 입는 당사자들이면서도 영풍을 향해 그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하는 참담한 처지인 셈이다.

자신들 말고는 다른 경제 기반이 빈약한 봉화군의 경제적 특성을 악용한 영풍과, 봉화군이 다른 수를 택하지 못할 만큼 고립되도록 내버려 둔 한국사회의 무관심이 빚어낸 인질극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인질을 구출해야 할 일이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 50년의 오염, 50년의 소외

‘PD수첩- 책과 독, 영풍의 두 얼굴’은 시작부터 충격적이었다. 그 유명한 공해병인 ‘이타이이타이병’ 때문에 일본에서 버틸 수 없게 된 아연 제련소 시설을 끌어와 지은 것이 영풍 석포제련소라는 사실은 이 문제의 출발에 지역의 경제적, 문화적 격차가 작용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영풍 석포제련소 제3공장이 건설 허가도 받지 않은 채 불법으로 건축됐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제작진이 던진 질문과도 연결된다. “만약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 인근이라면 제련소가 들어설 수 있었을까요?” 지난 6년여 동안 환경 당국이 석포제련소를 지도 점검한 횟수만 40여 차례에 이르고, 지역 사회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의혹을 제기해왔는데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크게 공론화되지 못한 핵심 원인을 단적으로 알려준 질문이다.



방송이 진행될수록 영풍 석포제련소의 불법 행위에 제일 큰 피해를 입어온 이들은 결국 사회에서 가장 주변화된 존재들이라는 사실이 뚜렷이 드러난다. 필터도 지급되지 않는 3~4만원대 방독면을 착용하고 독한 가스를 들이마시면서 공장에서 일하는 ‘나이 든’ 하청업체 노동자들, 오염된 운동장에서 아무런 사실도 알지 못한 채 뛰어노는 어린이들, 이유도 모르고 생업에 제약을 받아야 하는 농민들, 마지막으로 아무 죄도 없이 말라 죽어가는 동물들과 나무들. 영풍 석포제련소의 50년은 우리 사회의 차별과 소외의 역사이기도 하다.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로서 단순히 환경 문제를 넘어 다층적인 이슈를 제기한 [PD수첩]의 폭넓은 시야에 박수를 보내고, 석포제련소 문제 해결을 위한 영풍그룹의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한다.

김선영 칼럼니스트 herland@naver.com

[영상·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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