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콘’, 그래도 노력하는 모습이 느껴진다는 건

[엔터미디어=정덕현] KBS <개그콘서트>가 위기라는 건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 게다. 지난 1000회 특집으로 시청률이 8%대(닐슨 코리아)까지 상승했다고 해도 그건 일시적 상황일 뿐이다. 특히 빵빵 터졌던 1000회 특집이 지금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옛 감수성을 재연한 옛 코너들이었다는 점은, 오히려 <개그콘서트>가 직면한 딜레마를 실감하게 만들었다. 저 때는 빵빵 터졌지만 지금은 그런 외모 비하나 가학적인 코드로 웃음을 주기 어려운 시대라는 걸, 그 1000회 특집을 채운 옛 코너들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방영되고 있는 <개그콘서트>의 코너들은 어떨까. 그런 옛날 방식의 자극들을 빼고 그 자리를 채워 넣을 수 있는 새로운 개그 코드들이 과연 등장하고 있을까. 1000회 이전까지만 해도 ‘노잼’이란 이야기가 실감날 정도로 어디서 웃어야 할지 알 수 없던 <개그콘서트>였다. 하지만 1000회를 기점으로 새로 등장하고 있는 코너들은 그래도 지금의 감수성을 염두에 두면서도 웃음의 코드를 찾아내려는 노력이 엿보이고 있다.



새로 선보인 ‘귀생충’은 최근 화제가 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패러디로 가져온 코너. 귀신들이 한 가족에 기생해 살아간다는 콘셉트로 만들어진 ‘귀생충’은 그렇게 기생하게 된 숙주(?)의 삶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거나 불행한 모습을 통해 반전의 웃음을 제공한다. <기생충> 영화 패러디라는 트렌드를 가져오면서 그 웃음 속에 우리네 사회의 모습을 비트는 재치가 엿보이는 코너다.

‘주마등’은 비극을 희극과 병치하고, 스튜디오 무대 개그를 현장 동영상과 엮어 웃음을 만들어내려는 퓨전적 실험이 돋보이는 코너다. 죽기 직전에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과거의 기억들을 짧은 현장 동영상으로 엮어 웃음을 만들어낸다. 와인 잔이 깨지면서 잔이 만들어지기까지를 스스로 회고하는 영상과 엮어지는 그런 웃음은 비극을 뒤틀어 희극으로 보여주는 코미디의 전통에 충실하다 여겨진다.



‘전지적 구경 시점’이나 ‘알래카메라’는 지금의 미디어 현실을 예리하게 짚어낸 코너들이다. 민속촌에서 벌어진 개념 없는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막말들을 하나 둘 모여 듣고 공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전지적 구경 시점’은 현재의 SNS 같은 미디어를 통해 어떤 사안에 몰입하고 공분하기도 하는 대중들의 정서를 재연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막말에 분개하던 ‘구경꾼’들이 마치 자기 일처럼 화를 내고 그 개념 없는 이를 응징하는 내용은 그래서 시원한 웃음이 더해진다.

‘알래카메라’는 이른바 모든 곳에서 카메라를 맞이하는 ‘몰래카메라’ 일상화 시대에 가짜 진정성을 꼬집는 풍자로 웃음을 준다. 이미 몰래카메라인 지 다 알고 그 상황에 들어가지만 ‘연기자들’이 제대로 연기를 하지 못하자 김대희가 마치 감독처럼 그 연기에 자신을 억지로 맞추는 모습이 웃음을 만들어낸다. 상황의 반전이 주는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코너다.



물론 <개그콘서트>는 여전히 채워지고 고쳐야할 부분들이 적지 않다. 이를테면 ‘연애인들’이나 ‘표범, 티라미수 그리고 방울토마토’ 같은 코너는 여전히 외모 비하를 통한 쉽지만 불편한 웃음을 주는 면이 있고, ‘비둘기 마술단’이나 ‘트로트라마’ 같은 코너는 그런 퓨전적 시도는 좋지만 웃음의 강도를 좀 더 채워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래도 몇 주 전, 어디서 웃어야 할지 요령부득이었던 상황과 비교해보면 지금의 <개그콘서트>는 나름의 노력을 한 흔적이 엿보인다. 지금의 감수성에 맞추려 노력하면서 동시에 어떻게 웃음의 강도를 높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지금껏 쉬운 코드로 쉽게 해온 웃음이 헤쳐 나가야할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런 노력들은 충분히 인정할만한 부분이다. 그것이 <개그콘서트>가 앞으로도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수도 있으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