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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달’ 상고시대와 ‘녹두꽃’ 구한말, 저 야만적 풍경에 대하여
기사입력 :[ 2019-06-23 14:13 ]


‘녹두꽃’과 ‘아스달연대기’, 문명이라 칭하지만 야만인 저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에서 백이현(윤시윤)은 상투를 자르고 양복을 입은 채 ‘개화조선’이라고 혈서를 쓴다. 그리고 자신의 일본식 이름을 오니(도깨비)라 명명한다. 그는 일본 유학을 통해 본 문명의 힘을 실감하고 조선이 개화된 세상을 꿈꾸었지만, 높디높은 신분차별의 벽을 실감하고 절망한다. “조선에 설 곳이 없다”는 걸 깨달은 그는 일제의 앞잡이가 되면서도 스스로는 조선을 ‘개화’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워 자신 잘못된 행동을 합리화한다.

그러면서 그는 구한말의 조선을 ‘야만’이라 칭한다. 즉 일본이 들어와 개화하려는 것이 ‘문명화’된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라는 것. 그의 이런 변명과 합리화에 송자인(한예리)은 범궐을 해 무차별로 인명을 살상하고 힘으로 조정을 장악해버린 일제의 만행들을 어찌 ‘문명’이라 말할 수 있겠냐고 꾸짖는다. 무엇이 야만이고 무엇이 문명인가를 명확히 꼬집은 일침이다.



백이현이 흔히 말하는 개화니 문명이니 하는 말들은 <녹두꽃>에서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다. 그는 일찍이 전봉준(최무성)과 독대하며 “죽창은 야만이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대신 “개화된 세상의 선진 문물, 문명이 사람을 교화시키고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봉준은 자신이 생각하는 야만 중에 “가장 참담한 것이 문명국이라 자처하는 열강”이라며 “약소국을 쳐들어가 등골을 빼먹고 또 다른 약소국을 놓고 싸우는 짐승”이라 일갈한다.



흥미로운 건 이런 문명과 야만에 대한 담론이 구한말을 다룬 <녹두꽃>만이 아니라 심지어 상고시대를 다루고 있는 tvN 토일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에도 똑같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일찍이 불을 다루고 그것으로 더 강한 칼을 만들고, 정복전쟁으로 약한 종족들을 노예로 만들어 그 노동력을 착취해 세운 아스달 문명. 그 문명의 침범을 막았던 대흑벽조차 그들이 하늘 높이의 사다리로 연결 지으면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와한족은 살 터전을 잃고 아스달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풍요를 외양으로 치장하고 있는 아스달이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실상 야만에 가깝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연맹장에 오르려 하고, 아버지는 딸을 첩자로 이용해 자신의 지위를 지켜내려 한다. 아버지를 죽인 아들, 타곤(장동건)은 나아가 스스로를 신격화하고 아스달을 지배하려는 권력욕을 드러내고, 타곤과 함께 야망을 불태우는 태알하(김옥빈)는 자신을 첩자로 이용하려던 아버지를 배신한다. 그들은 와한족을 ‘두줌생(두 발로 걷는 짐승)’이라 부르며 짐승 취급하지만, 실상 짐승은 무력으로 무고한 생명을 죽이고 노예화하는 그들이다.



<아스달 연대기>가 다루고 있는 건 상고시대부터 시작되었던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야만의 연대기다. 세상을 제 손안에 쥐려는 욕망과 권력에 의해 무수히 많은 이름 모를 생명들의 피로 점철된 끔찍한 인간의 연대기. 그 연대기는 그래서 그 후 계속 지속되어 왔고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수천 년이 지난 구한말을 다루고 있는 <녹두꽃>에서도 똑같은 ‘문명의 야만’을 목도하게 되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그래도 이 잔인한 연대기 속에서 어떤 작은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하게 되는 건, 그 문명의 야만이 침탈해 들어올 때 이를 막기 위해 나선 많은 이들이 있었다는 것일 게다. <아스달 연대기>의 와한족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는 은섬(송중기)과 탄야(김지원) 같은 인물들이 그렇고, <녹두꽃>의 일제와 맞서다 전장에서 스러져간 무수한 백이강(조정석) 같은 동학군 의병들이 그렇다.



그리고 이런 문명의 야만은 지금도 여전하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신 열강들의 힘 대결은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져 오고 있지 않은가. <아스달 연대기>나 <녹두꽃> 같은 과거를 담은 이야기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의미를 갖는 건 그래서다. 그 야만의 역사들을 되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어떤 선택들을 해야하는가가 명확해질 것이니 말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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