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극의 눈물’, 절로 숙연해지는 황제펭귄의 삶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흔히 도리를 모르는 사람들을 일컬어 금수만도 못하다느니, 금수와 다름없다느니 한다. 그러나 남극의 진정한 주인 황제펭귄의 삶과 마주한 뒤에야 감히 어느 누가 그런 소리를 할 수 있겠나. MBC 환경 다큐멘터리 <지구의 눈물> 시리즈 완결 편 <남극의 눈물> ‘1부 - 얼음대륙의 황제’ 편을 보고 있노라니 저 혼자 살겠다고 사분오열 상태로 허둥대는 인간들이 오히려 미물처럼 느껴졌다. 호랑이처럼 용맹스럽다, 곰 같이 미련하다, 교활하기가 여우같다, 이처럼 흔히 동물에 비유되곤 하는 인간의 행태지만 ‘황제펭귄스럽다’는 소리를 들을 인간이 과연 이 세상 천지에 존재하기나 할지 모르겠다.

모든 생명체가 숨죽인 극한의 남극, 그 속의 황제펭귄의 ‘허들링’은 경이롭다 못해 존경심이 들기까지 했으니까.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께서 백성들에게 호소하셨다는 ‘단생산사’(團生散死 단합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미국의 계몽주의 사상가인 벤자민 프랭클린이 만들었다는 독립을 위한 구호 '뭉치지 않으면 죽는다'(Join, or Die)를 본능적으로 깨우치고 실천 중인 황제펭귄들이 아닌가. 이기심을 버리고 서로를 배려하며 위기를 견딜 줄 아는 황제펭귄의 지혜에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으리.

일생의 대부분을 바다에서 보내는 황제펭귄. 그들이 극한의 겨울 최대 160km의 거리, 어림잡아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를 되짚어 모든 동물이 추위를 피해 떠나버린 황량한 고향 땅으로 돌아오는 이유는 천적이 없는 안전한 장소에서 새끼를 낳아 기르기 위함이라는데 일단 짝짓기가 이루어지면 한 해 동안 부부의 의를 지킨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또 하나 놀라운 건 황제펭귄 부부는 엄마가 산란을 하면 아빠가 이내 그 알을 넘겨받는다는 점. 눈과 얼음뿐인 영하 50도를 넘나드는 시속 200km의 강풍 속에서 자신의 발등 위에 얹어 새끼를 키우는 아빠 펭귄들, 그 지극한 부성애는 감동을 넘어 눈물겨웠다. 무려 넉 달이라는 긴 시간, 그들이 먹는 건 수분 유지를 위한 눈이 전부라니 어찌 가슴 시린 감동이 아니겠는가.

산고를 마친 아내 펭귄들은 알을 남편에게 맡긴 채 체력 회복을 위해 먹이를 찾아 바다로 떠난다고 한다. 따라서 혹한 속에서 알을 지켜내는 건 온전히 아빠 펭귄의 몫. 그들은 엄마 펭귄이 먹이를 몸에 저장하고 무사히 가족 곁으로 돌아와 교대해줄 때까지 몸무게가 반으로 줄어들면서도 절대로 알을 지키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자식 하나 기르면서도 잘 될 때는 제 공이라며 생색을, 뭔가 어그러질 적엔 상대방 탓이나 하는 우리 인간들로서는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허들링’을 하고 있는 거대한 무리 전체가 아빠 펭귄이고 모두가 동시에 알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어찌나 아름답고 숭고하게 느껴지던지.

그러나 서식지가 배설물로 더러워질라치면 맑고 바람 없는 날을 골라 단체로 이사를 갈 줄도 알고, 눈 폭풍이 몰아닥치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채 허들링을 시작할 줄 아는 영특한 그들이지만 열에 한 둘은 알을 놓쳐 얼어버리는 가슴 아픈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새끼에 대한 집착이 워낙 강하다 보니 잃어버린 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알 대신 얼음덩이를 소중히 끌어안아 품기도 했는데 어느 영화보다, 어느 드라마보다 슬픈 장면이었다.











산란 후 2개월, 드디어 알을 깨고 새끼 펭귄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 때부터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혹한의 추위를 버티지 못하고 몇 분 안에 새끼가 얼어 죽기 때문이다. 몸 안에 저장되어 있던 펭귄밀크를 꺼내 먹여가며, 모든 걸 희생해가며 아내가 돌아올 때까지 아기를 잘 지켜내려 밤낮으로 애쓰는 황제펭귄의 부정, 그리고 그 책임감, 지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서 약속을 지킨 엄마 펭귄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나타내는 순간, 박수가 절로 쳐졌다. 몸에 펭귄밀크를 가득 저장하고 돌아온 엄마 펭귄들. 눈물겨운 귀환, 그리고 극적인 상봉. 용케도 그들은 똑 같이 생긴 수천마리 속에서 자신의 짝을 찾아낸다. 물론 천적 해표에게 가차 없이 사냥을 당해 돌아오지 못한 엄마도 있겠고, 그새 아기를 잃어버린 아빠는 엄마를 마주할 낯이 없겠지만 생존을 위해 함께 똘똘 뭉쳐 사투를 벌였다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

시간이 흘러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털북숭이 아기 펭귄들, 그리고 털갈이를 마치고 부모들이 그래왔듯이 본능적으로 바다를 향하고 있는 그들. 이 기품 있고 아름다운, 강하지는 않지만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줄 아는 펭귄 가족을 우리에게 소개하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애를 써준 <남극의 눈물> 제작진에게 머리 숙여 고마움의 인사를 전한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그림 정덕주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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