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가 취향이라는 코미디언, 호주 공영방송 수준이 의심스럽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나는 손흥민도 BTS 노래를 들을 바에 차라리 자신의 성기를 잘라버릴 것이라 확신한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지난 19일 호주 공영방송 채널9의 <20 to one>에서 방탄소년단을 비꼬고 조롱하는 방식으로 방송을 진행해 논란이 되었던 호주 코미디언 알렉스 윌리엄슨은 자신의 SNS에 이렇게 적었다. 그는 전혀 자신이 한 일련의 말들이 잘못됐다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들에 더 심한 혐오의 표현들을 담아 욕설로 대응했다.

문제가 됐던 19일 방송에서 알렉스 윌리엄스는 방탄소년단을 소개하면서 “김정은이 남자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면 한국의 전쟁 문제는 해결할 수 있겠다”는 결코 웃을 수 없는 막말을 농담이랍시고 덧붙였다. 방탄소년단의 ‘방탄’이 담은 의미를 북핵 같은 한반도 정국에 덧대 조롱한 것이다.

그 방송에서 다른 출연진도 영어로 대변되는 백인 우월주의를 드러내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신기하게 방탄소년단 멤버 중에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한 명밖에 없다”라며, 방탄소년단의 유엔 연설 장면이 나오자 “헤어 제품에 관한 내용인 것 같다”고 비하했던 것. 영어가 마치 유일한 언어나 되는 양 뱉어낸 이런 말은 호주의 ‘백호주의’가 아직도 여전한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하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게이 농담까지 덧붙였다. “남자 멤버가 7명이나 있는데 분명 게이가 한 명쯤은 있을 것”이라며 “그것이 수학(It's just math)”이라고 했던 것. 서구의 코미디쇼에서 자주 등장하는 게 게이 농담이긴 하지만 그걸 방탄소년단을 대상으로 한 건 여러모로 인종차별적 논란을 일으킬만한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



결국 논란이 커지고 팬클럽 아미가 나서서 해당 방송사에 출연진 교체와 방송사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Channel9은 “당시 방송은 규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출연진의 발언은 “방탄소년단의 인기를 유머러스하게 강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물론 “불쾌함을 느꼈을 시청자들께 사과한다”고 밝혔지만 자신들은 위반을 하거나 혐오 발언을 한 게 아니라고 공식입장을 보인 것이다.

팬들에게 이런 사과가 사과로 보일 리가 없었다. 게다가 알렉스 윌리엄스는 계속해서 조롱발언을 SNS를 통해 쏟아냈다. “마치 내가 BTS의 8번째 멤버가 된 것 같고 여러분의 뜨거운 성원에 감사한다”며 비아냥거렸고, 인종차별주의자라며 사과하라는 네티즌에게 욕설을 섞어 “닥쳐 ○○놈아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 14살짜리 아이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빼내려고 설계된 보이 밴드에 대해서는 신경도 안쓴다.”며 뜬금없이 “천진우 같은 한국 교수들의 진정한 재능을 즐길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인종차별이 아니라 보이밴드에 대한 혐오를 말하고 있는 것.

그렇다면 혐오는 과연 허용되고 괜찮은 일일까. 호주의 공영방송에서 그러한 혐오의 발언들을 공공연히 농담이랍시고 던지는 게 어째서 괜찮은 일이 될까. 취향이 달라서 자신은 보이밴드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타인의 취향까지 깡그리 뭉개며 혐오의 발언을 쏟아내는 게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일일까.

이건 어쩌면 BTS로 인해 갑자기 수면 위로 올라와버린 호주의 인종차별과 혐오 등에 둔감한 감수성을 말해주는 사건인 지도 모른다. 그런 혐오의 말들이 버젓이 코미디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이를 공영방송이 전혀 잘못된 일이 없다고 말하는 저들의 문화적 수준이라니. 그런 혐오가 차별을 만들고 그 차별이 나아가 무자비한 폭력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저들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는 걸까. 과연 이대로 방치해도 되는 걸까. 호주의 의식 있는 지식인들이라면 이 심각성을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알렉스 윌리엄슨 트위터, 빅히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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