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생존자’ 범생이 정치인 지진희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엔터미디어=정덕현] 시작부터 파격적이다. tvN 새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는 국회의사당이 폭탄 테러로 폭파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대통령과 국가의 중책을 맡은 정치인들이 대부분 희생되면서 마침 경질될 처지로 그 자리에 가지 않았던 박무진(지진희) 환경부 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남은 60일 임기동안 국정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과연 그는 이 중차대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낼 수 있을까.

<60일, 지정생존자>의 파격적인 오프닝은 드잡이에 방탄국회 같은 신물 나는 정치판의 풍경을 봐온 시청자들에게는 기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물론 폭탄 테러라는 일이 벌어지면 안 되겠지만 그 지긋지긋한 풍경에 한번쯤 그런 상상을 해본 적은 있지 않던가.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고 말하지만 자신들의 권력 기반을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국민’을 호명하던 저들의 끝장.



하지만 이건 상상일 뿐이고, <60일, 지정생존자>는 그것이 실제로 벌어졌을 때 생겨날 수 있는 엄청난 혼돈을 예고한다. 한미 FTA에서 엉터리 환경평가서를 내밀며 디젤차 수입을 종용하는 미국 측 앞에서 그것이 야기할 환경오염에 대해 뜻을 굽히지 않는 박무진은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멋진 사이다 캐릭터일지 모르지만 현실정치에서는 순진 혹은 순수 사이에 놓여 호락호락하지 않은 정치판에서 제대로 버텨낼 수 있을까가 의심되는 인물이다.

환경부 장관 임명식에 운동화를 신고 나타난 박무진에게 대통령이 자신의 구두를 내주며 불편해도 신으라고 권하는 장면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거기에는 향후 폭탄 테러에 의해 그가 느닷없는 권한대행을 맡게 되는 정치 신데렐라가 될 거라는 복선이 깔려 있고, 하지만 그 길이 마치 맞지 않는 구두를 신은 것처럼 피가 나고 굳은살이 배기는 길이라는 걸 암시한다.



한미 FTA 같은 국가 간 경제협상의 문제에, 지지율이 뚝뚝 떨어져 한 자릿수가 된 대통령이 그런 문제를 반등시키기 위해 비밀리에 진행해온 남북 정상회담 카드가 폭탄 테러로 인해 잠정 중단되게 된 상황. 권한대행이 된 박무진은 국내는 물론이고 대외 정치까지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 실타래를 풀어나가야 하는 중차대한 미션을 부여받았다. 과연 그는 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해낼 수 있을까.

여기서 궁금해지는 건 박무진이라는 이 캐릭터가 가진 ‘소신’이 그가 마주한 현실 정치 앞에서 과연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그는 한미 FTA에서 미국 측이 내놓은 엉터리 환경평가서를 두고 정치적 타협을 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만큼 자신이 가진 생각에 대해 뜻을 굽히지 않는다. 심지어 장관 자리를 내주게 되는 상황에서도 불구하고.



하지만 그건 장관의 위치에 있을 때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막상 국가 전체를 책임져야 하는 선택 앞에 놓인 대통령의 권한대행이라는 자리는 소신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되지 않는 현실 정치가 있기 마련일 테니 말이다. 바로 이 지점은 <60일, 지정생존자>가 흥미로워지는 부분이다. 국회가 폭파되는 장면에서 막연히 느꼈던 카타르시스가 우리가 평소 정치에 대해 갖고 있던 혐오와 불신 그리고 무관심에서 비롯된 어떤 감정이었다면, 이로써 야기되는 국정공백의 상황 속에서 고군분투라는 한 정치인의 고뇌와 선택들은 의외로 정치라는 세계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정치는 우리에게 어쩌면 너무 지긋지긋해 방관해온 세계였을 수 있다. 그래서 저 국회가 폭탄 테러로 무너지는 장면이 처음에는 하나의 스펙터클로 다가왔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맞지 않는 구두지만 어쩔 수 없이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구두를 신게 된 박무진이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는 그 방관했던 정치의 세계를 좀 더 몰입해서 들여다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되는 지점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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