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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틀리와 람보르기니의 ‘어리석은’ SUV 최고속도 경쟁
기사입력 :[ 2019-07-03 13:56 ]
더 크고 더 무겁고 더 비싼 SUV 시대, 공존의 해법은

[이완의 독한(獨韓) 이야기] 굳이 뭐하러 저러나 싶었다. 벤틀리와 람보르기니의 SUV 자존심 경쟁 얘기다. 영국 고급 세단 브랜드 벤틀리와 이탈리아 스포츠카 브랜드 람보르기니는 최고속도를 놓고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 시작은 벤틀리였다.



◆ 최고속도 다툼

2016년 벤틀리는 벤테이가를 내놓았다. 벤틀리는 SUV 노하우가 없는 회사였지만 모그룹 폭스바겐은 이미 아우디 Q7과 VW 투아렉, 포르쉐 카이엔 등을 만들고 있었고, 플랫폼 공유를 통해 어렵지 않게 이들의 노하우를 벤틀리 신형 SUV에 담을 수 있었다. 하지만 벤틀리 SUV는 더 화려하고 고급스러워야 했고 더 강력해야 했다.

벤테이가에는 8기통과 12기통 가솔린 엔진이 들어가 있다. 12기통 엔진 경우 최고 608마력이나 됐다. 최대토크 역시 91.8kg.m 수준으로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이다. 0-100km/h는 4.1초로 2.4톤의 무게를 생각하면 강력함이 느껴지는 수치다. 12기통 트윈 터보 엔진이 들어간 벤테이가의 최고속도는 제조사 발표 301km/h였고, 이로써 양산 SUV로는 가장 빠른 차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하지만 타이틀 수성은 2년을 넘지 못했다. 람보르기니가 우루스를 내놓았고, V8 엔진에 650마력, 최대토크 87.5kg.m였던 우루스는 0-100km/h 3.6초, 최고속도 305km/h로 최고속도 타이틀을 가져왔다. 엔진은 상대적으로 작았지만 2.2톤 수준의 가벼운(?) 중량과 공기저항에 유리한 차체 디자인은 속도에 유리했다.

하지만 벤틀리는 올해 벤테이가 SPEED를 내놓으며 다시 ‘세계 최고 속도’ 타이틀을 찾아왔다. 635마력이라는 무지막지한 출력으로 밀어붙였고, 결국 최고속도를 시속 306km/h까지 끌어올렸다. 우루스를 1km/h 차이로 따돌린 것이다. 두 회사의 SUV 속도 경쟁은 여기까지 진행된 상태다. 이쯤 되면 람보르기니의 반격(?)도 예상해 볼 수 있다. 우라칸에 들어가는 10기통 엔진, 또는 아벤타도르에 들어가는 12기통 엔진을 적용한다면 벤테이가 SPEED를 넘어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어리석은 SUV 레이스’

그런데 이 두 회사가 치고받고 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폭스바겐 그룹의 임원들이 자주 깨끗한(친환경적인) 이동성을 언급하지만 자회사인 람보르기니와 벤틀리 SUV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속도 경쟁을 보면 기업 문화의 변화가 그룹 전체에 자리 잡은 거 같진 않다고 비판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독일의 대표적 경제지 한델스블라트는 이 경쟁을 두고 ‘대형 SUV들의 어리석은 레이스’라고 일침을 가했다. 폭스바겐 그룹은 디젤게이트 이후 빠르게 기업 전략을 전환시켰다. 이제는 전기차를 전면에 내세우며 친환경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그런데 자회사 두 곳이 눈치 없이 집안싸움을, 그것도 친환경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유럽 분위기상 욕먹기 딱 좋은 모습이다.



◆ 그칠 줄 모르는 SUV 인기, 그에 비례하는 SUV 비판

그러고 보면 요즘 SUV는 벤테이가와 우루스처럼 속도 경쟁만 하는 것은 아니다. 소형차 시장에서는 해치백 대안으로 소형 SUV가 빠르게 성장했고, 2~3년 전부터는 눈에 띄게 대형 SUV가 속속 등장하며 덩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차의 길이는 5미터를 훌쩍 넘어가고 있으며, 전폭 역시 2미터 전후의 것들이 등장하고 있다. 전고는 말할 것도 없어서 차로 하나를 꽉 채운다. 이처럼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끝없이 SUV가 등장하는 덕에 너나 할 것 없이 빠르게 SUV로 갈아타는 중이다.

SUV 인기를 알 수 있는 시장은 미국이다. 픽업과 SUV가 전체 신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달한다. 중국 역시 SUV 소비가 많은 나라 중 하나로, 이곳에서는 세단이나 SUV가 롱바디가 아니면 안 될 정도로 큰 차는 제조사에 생존 필수 요건이다. 또 해치백과 왜건의 나라로 얘기되는 독일조차 지난해 기준 등록된 신차 3대 중 1대가 SUV였을 정도다. 법인 고객을 제외하면 독일 개인 고객의 SUV 선택 비중은 40%가 넘어간다.



하지만 SUV가 인기를 끌수록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무겁고 덩치 큰 SUV는 그만큼 기름을 많이 소비한다. 미세먼지나 이산화탄소 감축이 중요한 화두가 된 요즘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보행자 충돌 안전성은 상대적으로 작은 차에 비해 여전히 떨어진다.

뒤따르는 차의 운전자는 큰 SUV로 인해 전방 시야를 더 방해받으며 같은 운전을 해도 상대 운전자는 크고 무거운 SUV에 더 위협을 느낄 수 있다. 주차장 이용만 해도 대형 SUV 곁에 차를 세우는 게 보통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독일 등에서는 예전부터 SUV를 이기적인 자동차로 부르며 비판하기도 한다. 독일의 일부 정치인들은 지금의 배기량과 이산화탄소 배출량 기준인 세금 구조에 차의 무게를 반영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 더 크고 더 무겁고 더 비싼 대형 SUV 시대를 맞은 고민과 해법 있어야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는 팔리는 차가 크면 클수록 마진이 높기 때문에 주머니 두둑해지는 SUV 띄우기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전기차 시대가 열리면 지상고 높은 SUV는 더 많아질 것이며 시장에서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만큼 기업들도 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별 도움 안 되는 최고속도나 덩치 비교와 같은 자존심 경쟁보다는,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한, 그리고 보행자와 탑승자 모두를 위한 안전과 편익을 위한 건설적 경쟁이 필요하다. 이윤이 느는 만큼 그 돈을 의미 있게 재투자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대형 SUV를 샀거나 구매 예정인 운전자 역시 작은 차를 위한 배려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어떻게 해야 도로 환경을 쾌적하고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지, 큰 차 시대에 어울리는 공존을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

이완 칼럼니스트 : <모터그래프> 등에 칼럼을 쓰고 있으며 ‘이완의 카폐인’이라는 자동차 동영상 콘텐츠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다. 현재 독일에 살고 있으며, 독일의 자동차 문화와 산업계 소식을 공유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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