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블유’ 매력적인 임수정·이다희·전혜진, 그런데 장기용은 왜?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tvN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이하 <검블유>)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모두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이들은 서로와 이치에 맞는 대화가 가능하다.

의견 일치는 쉽지 않다. 각자 가치관과 우선순위, 목표가 모두 다르니까.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논점을 논리적으로 전개할 줄 알고 상대방도 이를 완벽하게 알아듣는다. 그리고 이들의 입장은 상대방에 대한 감정과 별 상관이 없다. 차현(이다희)은 배타미(임수정)가 ‘진짜 나쁜 년’이라고 생각해도 여전히 팀원인 배타미를 보호할 것이다. 같은 팀원이기도 하지만 그게 원칙적으로 옳은 일이기 때문에. 반대로 브라이언(권해효)은 배타미에게 호감을 갖고 있지만 자신의 위치에서는 배타미를 보호하는 것보다 회사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역시 이해가 가능한 일이라 울분이 터지고 동의하지 않더라도 다들 납득을 한다.



대부분 토론이 이렇게 맑은 정신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이들의 토론은 생산적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대화는 이들이 일하는 회사 바로를 넘어가도 가능하다. 차현이 이전 남자친구의 여자친구인 윤동주(조혜주)와 나누는 대화는 철저하게 기싸움이지만 여전히 이들은 이치에 맞는 대화를 하면서 자신이 사과하고 사과를 받을 선을 정확하게 긋는다. 굳이 누군가를 패면서 끝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덕택에 이들의 인간관계는 종종 부러울 정도로 매력적이다. 특히 차현은 거의 판타지에 가까운 이상적인 직장 동료이다. 굳이 인간적인 호감을 사려고 ‘사회생활’을 하지 않아도 차현은 원칙에 맞고 옳은 일이라고 생각된다면 동료를 돕고 지지할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모두가 좋은 분위기’에서 일이 진행된다고 해도 원칙에 어긋나거나 이런 분위기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차현은 막을 것이다. 차현과 우선순위와 작업 방식이 전혀 다르긴 하지만 배타미에게도 비슷한 기본 원칙이 있다. 그리고 이런 관계는 한국 드라마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것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들의 토론이 충분히 발전될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러닝타임 전체를 커버해도 모자라는 주제가 에피소드마다 하나씩 던져지는데, 이들을 다룰 수 있는 시간은 절반에 불과하다. 차라리 25분으로 압축한다면 같은 내용으로도 더 치밀한 이야기가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검블유> 에피소드에는 거의 완벽하게 구성된 25분짜리 오피스 코미디가 숨어 있다.

나머지 절반의 러닝타임 동안 이들은 무엇을 하는가? 연애를 하거나 유사연애를 하거나 그들 사이에 있는 뭔가를 한다. 이들이 아무리 일벌레라고 해도 개인생활이 없는 건 아닐 테니 직장 밖 이야기가 나오는 건 자연스러운데 <검블유>는 이 영역에서 계속 덜컹거린다.



여기서 이 드라마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건 주인공인 세 여자, 배타미, 차현, 송가경(전혜진)의 유사 연애 관계이다. 겉보기엔 철저하게 업무 관계로 엮여 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대놓고 삼각관계 치정극이다. 고등학교 시절 송가경과 차현은 거의 <여고괴담> 수준 커플이고, 유니콘에서 같이 일하던 시절 배타미와 송가경은 선물로 반지를 주는 사이다. 배타미가 유니콘을 떠나 바로로 간 현재로 넘어오면 이들은 전여친들과 현여친들의 배배 꼬이는 감정 관계에 빠지는데 이 전형성은 거의 아이돌 팬픽 수준이다.

개인적으로 여성 캐릭터의 모든 인간관계가 유성애적으로 해석되는 습관은 숨 막힌다. 한국 드라마에서 이런 퀴어 베이팅의 끝이 어떤지 여러 차례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에 기대치도 낮다. 하지만 적어도 이들의 이야기는 스토리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이들의 삼각관계 이야기는 모두 유니콘과 바로의 경쟁이라는 기본 스토리의 일부이다. 종종 손발이 사라질 정도로 오글거리고 그 뻔뻔스러움에 어이가 사라져도 이들 관계가 스토리에 방해가 되는 일은 없다. 반대로 이들의 관계는 계속 위치를 바꾸어가며 스토리에 끊임없이 동력을 넣어준다. 민망하지만 재미있다. 무엇보다 이들은 계속 의미 있는 대화를 한다.



문제는 드라마가 이성애로 넘어갈 때 발생한다. 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배타미와 박모건(장기용)의 관계가 그렇다. 종종 한국 드라마가 이성애를 지나치게 대충 여긴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이들의 관계가 그 대표적인 예가 아닌가 싶다.

배타미와 박모건의 드라마에서 가장 문제인 건, 이 이야기가 전혀 필요 없다는 것이다. 일과 사랑을 이야기한다고 했으니 일 따로 사랑 따로를 다룰 수도 있겠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좀 심하게 따로 논다. 어느 정도냐면 박모건이 등장하는 모든 장면을 잘라내도 메인 스토리 전개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을 정도이다.



오피스 코미디와 별개로 놓고 보아도 이 이야기는 별로 좋지 않다. 우선 이들의 이야기에는 다른 부분에는 있는 명쾌한 논리와 유머, 캐릭터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에 들어가기만 하면 배타미 캐릭터는 생기를 잃고 박모건은 오로지 규격화된 연속극 대사만을 말한다. 당연히 대화의 재미와 역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들의 이야기는 쓸데없이 길다. 어떤 때는 거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데, 배타미가 세 주인공 중 한 명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 비율은 여러모로 비정상이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건 이런 드라마에 반드시 이성애 로맨스가 들어가야 한다는 강박의 결과라는 것이다. <검블유>는 그게 무의미하다는 사례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것이 일종의 미러링이라는 것인데, 그렇게 보기엔 비중이 너무 크고 배타미 캐릭터에 끼치는 악영향이 만만치 않다. 미러링 역할을 못하는 것이다. 또다른 가설은 작가가 원래 쓰고 싶은 것이 세 여자의 관계이고 박모건 파트는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억지로 넣었다는 것인데...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정말 그렇다면 슬픈 일이다.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여기는 막연한 허상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진짜 재미있는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니.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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