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 사실 봄밤이 그리 따뜻하지 않고 춥다는 건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MBC 수목드라마 <봄밤>의 초반부 밤 장면은 봄이 아니라 겨울에 가까웠다. 눈이 내리고 쌀쌀했다. 그러면 봄이 오면 봄밤은 따뜻할까? 봄밤은 야박하게도 날씨가 제멋대로다. 바람이 불거나, 미세먼지에 덥히거나, 비가 내린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따뜻한 봄밤을 기다린다. 따뜻한 사랑을 기다리듯.

<봄밤>은 김은 작가와 안판석 PD가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 이어 함께 손을 잡고 만든 두 번째 로맨스물이다. 안판석 PD는 정성주 작가와 함께 상류층과 중산층 사이에 곰팡이처럼 스며있는 천박함을 간파한 작품들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제 안판석 PD는 미니멀리즘 로맨스를 통해 기존의 로맨스극과 다른 리얼리티를 확보하는 동시에, 개인의 연애를 통해 한국사회의 속물스러운 인간군상을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 듯하다. 가족주의 중심인 한국사회에서 연애는 오롯이 개인의 것이 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봄밤>은 남동생 친구와 사랑에 빠진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보다 한발 더 나아간 복잡한 연애사를 그린다. 바로 미혼부인 유지호(정해인)와 그가 아는 선배의 연인이었던 이정인(한지민)과의 사랑을 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 상황이 어떻든 이 두 사람에게 연애란 단순한 감정의 교류처럼 스며든다.

그런 면에서 <봄밤>에서 정인과 지호가 처음 만나는 장면은 생각보다 의미가 깊다. 전날 과음한 정인은 지호가 일하는 약국에서 숙취해소 음료를 달라고 한다. 그러고서 정인은 혹시 고무줄 같은 것 없느냐고 묻는다. 지호는 정인에게 노란 고무줄 밖에 없다고 하지만, 정인은 그거면 충분하다고하고 머리를 묶는다.

정인이 머리를 묶고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 어쩌면 지호는 정인에게 반했는지 모른다. 동시에 정인은 그녀가 생각하는 연애의 감정을 무의식중에 드러냈는지도 모른다. 남들 눈에 보여주기 위한 형식적이고 우아한 연애가 아닌, 고무줄처럼 편안하게 늘어나는 연애. 함께 편안하게 몸을 기대고 웃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연애.



하지만 정인과 오래 사귄 권기석(김준한)은 다르다. 기석에게 연애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무엇이기도하다. 그런 면에서 정인은 아버지 권영국(김창완)에게는 못마땅하지만 기석에게 괜찮은 상대였다. 정인은 미인에다가 남들에게 잘 맞춰주는 타입이다. 그 때문에 후배들의 술자리에서 기석은 으쓱해진다. 하지만 그 술자리에서 정인이 떨어뜨린 젓가락을 챙겨주는 것은 기석이 아니라 기석의 아는 후배인 지호다.

기석의 연애방식이 손가락질 받을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방식으로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하고, 결혼까지 이른다. 연애감정은 위장술이고 실은 현실의 안정을 위해 타인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리고 연애의 배신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어쩌면 그 방식이 가장 안전한 연애인지도 모른다. 다만 기석의 문제는 기석이 바라보는 정인이 아닌 진짜 정인이 어떤 연애감정을 원하는지 몰랐다는 사실이다.



정인은 아버지 이태학(송승환)에게 기석에게 마음이 떠났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울면서 말한다. 그러면서 정인은 “따뜻한 사람”을 원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 대답에 대한 교장선생님 이태학의 대답은 “소설을 많이 읽어서” 운운하며 어이없어 한다.

하지만 따뜻한 사랑 없이 떠밀리듯 결혼한 정인의 언니 이서인(임성언)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 물론 그 사실을 세 자매의 아버지 이태학은 눈치 못 챈다. 그런 면에서 <봄밤>의 이태학은 흥미로운 인물인 동시에 <봄밤>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는 과거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던 가부장적이고 가족에 무관심한 아버지가 아니다. 겉보기에 이태석은 언뜻 딸들에게 관심이 많은 ‘딸바보’ 아버지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태석은 처세에 능한 남자로 나오며, 그에게 딸들은 그의 처세를 돋보기에 만드는 또 다른 장식품에 지나지 않다. 무엇보다 이태석은 딸들의 감정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그에게 울고 웃고 느끼는 감정은 일종의 처세일 뿐, 내면의 진실한 무엇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기석의 아버지인 재단 이사장 권영국(김창완)은 한술 더 뜬다. 그에게 인간이란 모두 사업의 소도구로 이용하기 위한 존재다. 권영국은 정인의 ‘스펙’이 성에 차지 않아 며느리감으로 저어하다 그녀를 만나고 생각이 달라진다. 권영국 앞에서 쫄지 않고 기석과 결혼 안하겠다고 당당하게 선언하는 정인의 똘똘함을 보고, 가족으로 들여 본인의 심복으로 삼으면 좋겠다고 여긴다.



이처럼 캐릭터나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봄밤>은 결코 따뜻한 힐링 멜로가 아니다. 그보다는 자본주의 시대에서 연애와 결혼이 어떻게 자본의 논리를 통해 재구성되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때문에 정인과 지호가 만들어가는 소박하고 따뜻한 로맨스에 미소 짓다가도, 이것이야말로 정말 2019년의 새로운 <가을동화> 같은 로맨스판타지구나 싶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늘 바라지만 봄이 오면 한 며칠 밖에 되지 않는 미세먼지 없고, 매서운 바람 없는, 그런 따뜻한 봄밤처럼.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MBC]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