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라차차 만수로’, 아무 준비 없이 누군가의 인생에 들어간다는 건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또 한편의 축구예능 KBS <으라차차 만수로>는 지난해 10월 김수로가 축구 종가인 영국에서 축구 구단을 인수한 것을 계기로 기획됐다. 김수로는 극단 일로 자주 찾던 런던에서 평소 품었던 축구 구단주의 꿈을 이룰 방법을 찾았고, 런던 서부 템스강가의 치즈윅을 연고지로 둔 13부 리그 구단 첼시 로버스를 한화 2000만원에 인수했다. 그래서 축구는 축구인데 <청춘FC>나 <뭉쳐야 찬다>와 달리 직접 공을 차지 않는다. 그보단 구단을 운영하는 이야기, 저마다 품고 사는 꿈을 들여다보는 이야기에 가깝다.

예능 콘텐츠 차원으로 봤을 때도 축구를 소재로 하고 있긴 하지만 좋은 사람들이 함께 합심해서 무언가를 이루는 성장 스토리가 골격이다. 특히 연예인들이 낯선 공간에서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아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면서 무에서 유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최근 유행하는 일종의 ‘팝업숍 예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카이를 앞세우고, 갓과 휴지를 집들이 선물로 주는 것에서 보듯이 한류 문화 전파 코드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스페인하숙>이나 <윤식당>처럼 제작진이 사전에 준비를 해놓은 울타리 안에서 대략 2주 안팎으로 촬영하고 사라지는 일반적인 팝업숍 예능과 달리 <으라차차 만수로>는 첼시 로버스 선수들의 실제 삶과 꿈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방송이 끝나도 삶은 끝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런 만큼 방송이 선한 영향력과 기회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하게 만들지만 <으라차차 만수로>는 잠깐의 역할극을 하는 팝업숍 예능보다도 훨씬 준비가 덜 된 상태로, 사실상 아무런 준비가 없는 상태로 누군가의 진짜 인생에 들어간다.

우선 출연자 중 축구와 관련된 인물은 해설가 박문성이 유일하다. 김수로부터, 이시영, 카이, 럭키, 3회까진 출연하지 않은 백호까지 실제로 팀의 발전을 위해 뛰어주거나 원포인트 레슨 혹은 매뉴얼이라도 줄 수 있는 축구 선수 출신이나 지도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없다. 구단 운영이라고 하면 더욱 심각해진다. 구단 운영을 경험했거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가급은 아예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이 김수로를 제외하고 이 일에 대해 고민은커녕 사전에 알았던 인물도 없다. 런던으로 무작정 날아가, 숙소에서 동고동락하며 팀과 선수들의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진정성에는 추호의 의심이 없지만, <으라차차 만수로>는 누군가의 삶을 일회성 예능 소재로 소비하는 것 같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부족하다.



3회까지 방송은 특별한 전개가 없이 우왕좌왕 진행되었고 발전적인 방향성을 찾는 건 물론이고 팀과의 거리도 전혀 좁히지 못했다. 대부분의 분량을 책임지는 것은 열악한 환경과 부족한 재정을 부각하고 유일하게 가진 것이 꿈과 열정의 소중함과 같은 모범 답안과 같은 나이브한 접근의 반복이다. 강등 여부가 달린 마지막 게임을 앞둔 절체절명의 시점인데, 그제야 선수 정보를 파악하고 감독을 한번 만나보고 경기 전날 몇몇 선수들 집을 방문해 이야기를 듣는다.

새로 맞춘 유니폼을 깜짝 선물한다든가 하는 경기력에 도움이 될 만한 사기 진작성 이벤트도 없다. 구단이 더 나아지기 위해 이들이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3회까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손흥민을 만나러 토트넘 훈련장 앞에서 진을 치고 기다렸다가 허탕치고 돌아오고, 선수들 가정방문 등의 에피소드 등은 이 프로그램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고, 정말 진지한 프로젝트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한다.



1년 치 구단 예산 2~3000 만원은 물론 큰돈이다. 그러나 구단 운영에 들어가는 필수 비용을 생각한다면 또, 방송 예산으로 따져봤을 때도 그렇게 큰 금액인가 설득이 잘 되지 않는데, 열악한 현실과 애잔함을 드러내는 데 계속 초점을 맞추면서 몰입을 방해한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달려야 할 소재인데 사설이 너무 지나치게 긴 셈이다.

팀과 더욱 가까워지는 에피소드라든지, 발전적인 미래를 위한 포트폴리오를 구상하든지, 재정 확충을 위한 활동이 미션인지 도드라지지 않은 채 계속해 꿈을 지원한다는 이야기를 반복한다. 카이부터 박문성까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출연자들이 모여서 잘 어울리고 열심히 하는 예상 밖의 그림은 좋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를 생각했을 때는 런던에서 벌이는 이들의 활동이 너무 제한적이라 답답함마저 든다.



김수로는 40대가 넘어서 꿈이 달라졌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큰 나무가 되고 싶다고 했다. 13부라는 아마추어리그 구단주가 되어 기회를 제공하려는 뜻도 꿈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런데 첼리 로버스의 존재 자체도 몰랐던 이사진의 꿈은 무엇이고, 시청자들은 누구의 꿈에 몰입의 초점을 맞춰야 할지 헷갈린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자신의 꿈을 실현한 김수로인가,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위해 담금질하는 주경야독하는 선수들의 꿈인가? 이사진은 과연 자신의 인생에서 얼마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첼시 로버스를 위해 내줄 수 있을까?

이야기가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으니 관점이 흔들리고, 시청률은 회를 거듭할수록 떨어지고 있다. 제작진이 짜놓은 울타리도 없고, 준비도 없고, 기대를 품기에 어떤 방향으로 이야기가 펼쳐질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더딘 전개다. 그러니 꿈을 지원하는 것이 이사진으로 합류한 출연자들의 목표라면, 보다 명확한 역할을 맡아서 수행하는 모습을 하루 빨리 보여줘야 할 것이다. 오늘도 열심히 뛰는 첼시 로버스 선수와 감독의 인생을 먼 나라에서 한번 와서 담아가는 정도의 소재로 끝내질 않길 바란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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