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달’ 2부, 역사 벗어버리자 생긴 태고 판타지의 몰입감

[엔터미디어=정덕현] tvN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2부가 끝을 맺었다. <아스달 연대기>는 총 3부 각 6회로, 1부 ‘예언의 아이들’, 2부 ‘뒤집히는 하늘, 일어나는 땅’ 그리고 3부 ‘아스, 그 모든 전설의 서곡’으로 나뉘어있다. 2부를 마친 <아스달 연대기>는 오는 9월 7일 3부로 돌아온다.

2부까지 진행된 <아스달 연대기>를 보면 굳이 이 드라마가 그 시작점에 단군신화를 연상시키는 곰족과 호랑이족 그리고 쑥과 마늘에 대한 이야기를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고조선의 단군왕검이 도읍으로 정했다는 아사달을 끌어와 ‘아스달’로 바꾼 데는 역사와 이야기 사이에서 갈등했을 작가들의 고민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아스달 연대기>는 애초부터 역사 이전의 선사시대를 다루는 것이고, 따라서 전설과 민담이 얽혀진 이야기의 세계를 담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그러니 애써 역사의 흔적들을 그 안에 담아 넣는 일은 자칫 역사와 상상력 사이에 애매한 괴리를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아스달 연대기>의 1부 1회에서는 단군신화와 아사달을 연상시키는 아스달이라는 지명이 더해져, 뇌안탈, 이그트, 와한족 같은 문화인류학에서 끌어온 상상력의 세계와 부딪치는 지점들이 생겨났다.



그렇지만 2부까지 지나오면서 이야기는 역사와는 상관없는 아스달에서 신권을 내세우는 아사론(이도경)과 왕권을 세우려는 타곤(장동건)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신의 입지를 위해 끊임없이 저울질을 해대는 미홀(조성하)과 태알하(김옥빈) 사이에서 벌어지는 권력 암투와 여기에 변수로 등장한 은섬의 쌍둥이 사야(송중기)의 치열한 두뇌싸움이 펼쳐졌다. 게다가 노예로 끌려왔다 그 문명의 세계가 가진 욕망의 시스템 속에서 점점 각성해가는 은섬(송중기)과 탄야(김지원) 같은 인물의 성장 또한 흥미진진하게 펼쳐졌다.

이 과정은 단군신화와는 상관없는 문명화 과정에 가깝다. 제사장이 가장 큰 권력을 쥐고 있던 시대에서 타곤이라는 연맹장이 왕권으로 이를 뒤집으려는 시도는 국가의 탄생 과정이기도 하다. 그 국가의 탄생 과정에는 또한 판타지적 설정으로서의 신화들이 들어가 있다. 아사신의 신탁이 그렇고, 아라문 헤슬라에 대한 예언이 그렇다. 2부는 이 신탁과 신화들을 넣어 아사신의 곧쪽(직계)임을 증명하며 아스달의 새로운 신권을 쥐게 될 탄야와 돌담불 깃바닥에서 지상으로 올라와 이제 아스달로 돌아올 아라문 헤슬라의 현신 은섬의 각성과 성장을 담았다.



사실 생각해보면 <아스달 연대기>는 결코 쉬운 드라마가 아니다. 일단 여기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용어들이 모두 낯설다. 뇌안탈, 이그트, 해족 등등의 다양한 종족들의 이름이 그렇고, 신화적 존재들의 이름이 그러하며 당시 사용하는 깃바닥이니 돌담불이나 곧쪽 같은 낯선 용어들이 그렇다. 하지만 이런 낯선 세계와 용어들이 2부 정도를 지난 후에 어느 정도 익숙하게 들려오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만큼 <아스달 연대기>는 그 스스로 만들어낸 세계관을 이야기의 몰입감을 통해 어느 정도는 시청자들에게 각인시키고 있다는 뜻이다.

<아스달 연대기>는 굳이 단군 조선이라는 우리네 신화와 역사를 꺼내놓지 않았어도 충분했을 드라마다. 그저 오래된 태곳적 시공간 정도를 상정하고, 그 문명화 과정을 판타지로 풀어낸 이야기로 본다면 <아스달 연대기>는 훨씬 더 그 의미가 풍부해지는 드라마다. 2부를 끝낸 <아스달 연대기>는 이제 인물들의 욕망과 갈등이 부딪치는 것만을 들여다봐도 충분히 몰입감이 느껴질 정도로 그 자체적인 세계관이 명확해졌다. 굳이 단군조선이니 아사달을 떠올리지 않아도 될 만큼.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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