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클럽’, 1세대 아이돌 예능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결성 21주년을 맞이한 핑클이 함께 캠핑을 떠나 기념 콘서트와 앨범 등을 구상하며 오랜만에 호흡을 맞춘다.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만큼 그 내용이 선명한 JTBC 예능 <캠핑클럽>은, 그 간략한 내용만으로도 방영 전부터 많은 사람의 관심을 한 몸에 모은 프로그램이다. 핑클이 가요계 최정상을 지키고 있던 시절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 또한 <효리네 민박> 시리즈를 제작했던 제작진에 대한 신뢰와 완전체 핑클에 대한 기대치가 섞인 마음으로 방영을 기다렸다.

김선영 평론가는 걸그룹을 영원히 ‘소녀’로 박제하곤 하는 한국 연예계의 풍토에서 40대 전후 여성들이 함께 나이 먹어가는 과정에 주목한 <캠핑클럽>의 성취가 희귀하다고 평했고, 이승한 평론가는 여타 1세대 아이돌들이 출연한 예능과는 달리 쇼가 ‘좋았던 과거’에만 묶여 있지 않다는 점을 언급하며 그런 특징이 한번도 해체나 탈퇴를 경험한 적 없는 핑클이라는 그룹 자체의 특수성에 기인한다고 평했다. 정석희 평론가는 핑클의 여행이 ‘세대를 초월하는 공감’을 선사했다 평하며, 그들의 여행에서 다음 여행에 대한 영감을 받았노라 고백했다. 다음은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들의 상세 평이다. 읽으시는 동안 독자 여러분들도 오랜만에 함께 여행을 가면 좋을 법한 친구들이 있는지 떠올려 보시면 어떨까?



◆ 저이들처럼 떠나보고 싶다

넷이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얘기 나누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명절 날 대청마루에서 벌어지는 소란에 귀 기울이며 미소 짓는 사랑방 노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냥 수다 떠는 소리만으로도 정겨웠다. 그들이 한참 인기 정점이었을 때 이미 중년인지라 편인 적도 적인 적도 없지만 넷의 목소리가 구분된다는 게 신기했다. 새소리, 풀벌레 소리와 맞는 싱그러운 아침 풍경을 보고 있자니 그 자리를 함께 하고 싶어졌고 모닥불에 끓여내는 차 맛도 느끼고 싶어졌다. “금세 코골던데?”는 내가 얼마 전 여행 때 친구들에게 들은 말이고 남들과 달리 먹는 것에 큰 감흥이 없다는 이효리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세대를 초월한 공감이다. JTBC <효리네 민박>에서 예능 프로그램 최초로 ‘생리’를 언급한 바 있는 이효리. 이번 ‘배란일’도 아마 처음일 게다, 역시 이효리다.



앞서 말했듯이 올해 우연히 각기 다른 구성의 네 사람의 여행이 두 차례 있었다. 큰 맘 먹고 어렵게 시간 맞춰 떠났으나 유명 맛집 찾아가 먹고, 구경하고, 쉬고, 자고, <캠핑클럽>과 견주면 소박하다 못해 지루한 일정이었다. 다들 밥하기에 치인 상태인지라 라면 한번 끓여먹은 적이 없고 도전과 모험을 두려워하는 나이이다 보니 지나치다 싶게 평탄하고 무난했다. 따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서로 다른 책을 뒤적였던 것도 후회가 된다. 같이 신나게 노래를 따라 부르며 어깨를 들썩여도 좋았을 텐데. 같이 글 한편, 작가 한 사람을 두고 열띤 토론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캠핑클럽> 이후에 떠나는 여정이라면 떼 지어 교복 차림이든 경성 스타일이든 도전해보지 않을까? 당장 단톡방에 제안을 했다. “<캠핑클럽>처럼 떠나보지 않을래?”

정석희 방송 칼럼니스트 soyow59@daum.net



◆ <캠핑클럽>의 가장 중요한 성취

<캠핑클럽>은 정말이지 희귀한 예능이다. 멀리는 여행예능의 붐을 일으킨 나영석 PD의 tvN ‘꽃보다’ 시리즈부터, 가까이는 여행예능과 아이돌그룹의 추억 콘텐츠를 결합한 JTBC <같이 걸을까>까지, <캠핑클럽>에 영향을 미친 프로그램은 많다. 하지만 그 주인공이 오랜 시간 끈끈한 관계를 이어가는 40대 전후 여성들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나영석 PD의 ‘꽃보다’ 시리즈만 보더라도 남성들은 노년에 들어서도 영원한 청춘과 브로맨스 코드로 소비되며 예능의 중심이 되는 데 비해, 서서히 나이 들어가는 여성들의 역사와 관계에 주목한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게다가 그 대상이 대중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소녀’로 박제되길 바라는 ‘걸그룹’이라면 더욱 어려운 일이다. MBC <무한도전> ‘토토가’ 시리즈가 불러일으킨 복고 열풍의 수혜자가 젝스키스, H.O.T. 같은 보이그룹에 한정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캠핑클럽>에서는 이처럼 기존의 국내 예능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보석 같은 순간들이 데뷔 21주년을 맞은 ‘전직 걸그룹’ 핑클 멤버들의 여정을 따라 편안하게 흘러간다. 굳이 우정을 강조하지 않아도, 반대로 이효리와 이진이 ‘어색한 사이’임을 강조해도, 20년 넘는 세월 동안 관계를 유지해온 유대감이 정박지 외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여정을 가득 채운다. 가령 휴게소에서 한 끼 식사를 나누는 동안 예전보다 관심의 범위가 좁아졌다고 말하는 이효리와 이제야 사람에 관심이 생긴다고 답하는 성유리의 대화 안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오랜 시간의 흐름이 녹아 들어가 있다.

가장 재미있는 장면들은 ‘루비’ 가사 성토 대화 장면처럼 ‘국민요정’ 이미지에 충실히 부응해야 했던 걸그룹 시절에 대한 객관적 자의식이 드러나는 순간들이다. 그룹 활동을 중단한 14년 동안 그들을 추억의 국민요정으로만 소환해왔던 사람들에게, 핑클은 과거와 거리를 두면서 자연스럽게 변화한 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세월을 거스른 미모’나 ‘이제는 한 남자의 아내’ 등의 수식어를 붙이지 않는 프로그램의 태도도 그 자연스러움에 일조한다. 여성들이 함께 나이 들어가는 이야기를 삭제하는 예능계에서 <캠핑클럽>은 그 희소성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 자연스레 쓰기 시작한 다음 챕터

20여년 전에 활동을 시작한 1세대 아이돌 그룹들이 TV에서 보여주는 모습들은 대체로 방점이 과거에 찍혀 있다. 프로그램은 그들이 최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을 회고하고, 전성기의 기량과 호흡을 회복하고, 시청자들과 멤버들이 그 때 그 마음을 떠올리며 잠시나마 당시로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을 누리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곤 한다.

그러나 <캠핑클럽>은 방점이 다소 다른 지점에 찍혀 있다. 물론 핑카를 타고 전국을 누비며 캠핑에 나선 핑클 또한 활동 당시를 회고하기도 하고, 공연을 염두에 두고 옛 노래들을 부르고 호흡을 맞추기도 한다. 그러나 멤버들과 프로그램 모두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그 때와 비교해 지금은 어떤 것들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인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10대의 끝자락에 데뷔해 활동하던 그 시절과 비교하면,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 된 멤버들의 삶이 훨씬 더 풍성해지고 그 품이 넉넉해졌기 때문이다.



예전이라면 쉽게 카메라 앞에서 나누지 못했을 가족계획 이야기나 화장실 농담, 멤버들 간의 불화설 이야기, 사소한 잠버릇과 서로를 향한 애정 섞인 디스 등이 거침없이 화면에 담긴다. 여타 다른 1세대 아이돌 예능의 테마가 결국 “좋았던 그 때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캠핑클럽>은 세월이 지나고 성숙해진 멤버들이 자연스레 “다음 챕터”를 이어서 써 내려가는 것을 테마로 삼는 것이다.

이는 그들보다 한 발 앞서 비슷한 행보를 밟은 여타 다른 1세대 아이돌들과 달리, 핑클은 공식적인 해체(H.O.T., 젝스키스, S.E.S.)나 멤버의 탈퇴(god)를 경험한 적이 없으며, 그렇다고 활동을 꾸준히 계속해 온 것(신화)도 아닌, 아주 긴 개인활동 기간을 가진 그룹이라는 차이점에 기인하는 부분이 클 것이다. 신화처럼 언제 모여도 늘 한결 같은 그림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어서 오랜만에 봤다는 반가움은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그룹들처럼 애써 역사를 복원하는 과정을 거칠 필요까지는 없는 핑클만의 특수성 덕분에, <캠핑클럽>은 과거의 향수와 넉넉해 진 현재, 같이 써 내려갈 미래의 황금비율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참 영리한 프로그램이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영상·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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