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탐정’,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치는 탐정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SBS 수목드라마 <닥터탐정>은 배우 박진희와 봉태규가 출연했던 2018년 SBS <리턴>과는 그 결이 상당히 다르다. 봉태규가 연기한 <리턴>의 김학범과 <닥터탐정>의 허민기의 느낌이 하늘과 땅 차이인 것처럼 말이다. 둘 다 ‘날라리’ 기질이 충만한 캐릭터지만 김학범은 추악하고, 광적이고, 불편해서 자극적이었다. 한편 허민기는 똘끼 넘치고 막무가내지만 건강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 봉태규 캐릭터의 극단적인 대비는 두 드라마의 지향점과도 맞닿아 있다. <리턴>이 우리 내면의 추악함을 끌어올린다면 <닥터탐정>은 인간에게 아직 남아 있는 건강한 정신을 지향한다.

맞다. <닥터탐정>은 과하게 계몽적이지는 않지만, 어떤 깨달음을 주는 면이 있다.

<닥터탐정>은 한국 사회의 부조리와, 그 부조리 때문에 맥없이 쓰러지는 힘없는 이들을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주인공 도중은(박진희)과 허민기 모두 의사라는 건 흥미로운 지점이다. 이들은 바로 건강함을 잃은 한국사회에 메스를 들이대는 존재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닥터탐정>은 그렇다고 정의에 무작정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작품은 아니다. 물론 2회 후반부 과도하게 최루성 장면들이 이어지긴 했다. 하지만 이것은 하랑(곽동연)의 모친을 연기한 배우 황정민의 절절한 연기 때문이지, 이것이 이 드라마의 본질적인 성격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닥터탐정>은 상당히 드라이하게 한국사회의 부조리한 사건들을 분석해낸다. 정의로움에 호소하는 수많은 사회고발류 드라마와 차이점은 이 지점에 있다. 주먹으로 나쁜 놈을 깨부수는 영웅은 없다. 다만 한국 사회의 부조리 부위를 메스로 도려내고 수술하는 의사들이 있을 따름이다.

<닥터탐정>은 <그것이 알고 싶다>와 <궁금한 이야기 Y>의 연출자가 만들어낸 드라마답게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치는 데 집중한다. 도중은, 허민기, 공일순(박지영)이 속한 미확진질환센터의 멤버들은 그 역할을 맡는다. <닥터탐정>은 부조리한 구조 안에서 힘없고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는지를 충실하게 묘사한다.



<닥터탐정> 1,2회인 지하철 비정규직 노동자인 정하랑(곽동연)의 죽음을 다룬 에피소드는 이 드라마의 이런 성격을 잘 드러낸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에피소드에서 정하랑은 정규직 전환만을 바라보며 과잉근무와 산업재해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기침, 피부병 등으로 정하랑의 건강은 나날이 나빠지고 직업병처럼 스크린도어를 매번 잡고 있는 손을 떤다.

<닥터탐정>은 뜬금없는 로맨스나 과도한 CG 대신 정하랑의 삶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화학약품이 그의 건강을 갉아먹고, 위험한 환경의 과도한 업무는 그를 사고의 위험 앞에 늘 세워놓는다. 그리고 <닥터탐정>은 정하랑의 스크린도어 사고 이후 대기업에서 보여주는 부조리한 처리 방식 역시 그대로 보여준다. 대기업은 그의 죽음을 음주로 인한 개인의 사고로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미확진질환센터는 이에 맞서기 위해 우격다짐으로 달려들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거대한 손길이 위장한 진짜 증거들을 찾아내는 방법으로 대처한다. 강자를 위해 증거를 만들어내는 이들은 많다. 하지만 약자를 위해 감춰진 증거를 찾아내 세상에 알려주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미확진질환센터 ‘닥터탐정’은 바로 이런 역할을 하는 햇빛 같은 존재들이다. 이 드라마에 믿음이 가는 건 그런 이유에서이다.

우리는 알고 싶다. 왜 힘없는 사람들이 언제나 가장 먼저 사고의 위험에 노출되는지. 그들이 위험에 노출되는 환경의 위험은 항상 은폐되기 마련인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닥터탐정>이 기대되는 건 그래서다. 환상의 충족이나 스릴 넘치는 짜릿함을 주는 이야기는 많다. 허나 현실의 부조리를 이성적이고 디테일하게 지적하는 스토리텔링의 힘을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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