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온킹’과 ‘나랏말싸미’ 통해 본 허구와 왜곡 사이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오리지널 <라이온 킹>을 좋아했던 적은 없다. 애니메이션은 정말 좋았고 티몬과 품바라는 멋진 애니메이션 캐릭터도 있었으며 한스 짐머와 엘튼 존의 음악도 끝내줬다. 하지만 사자가, 그것도 수사자가 동물의 왕 취급 받는 설정엔 어이가 없었고 그것이 <햄릿> 플롯을 통해 인간들의 가부장 사회에서 습관화된 스토리텔링과 결합되자 온몸이 오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아. 그리고 난 이 영화가 하이에나를 그린 방식에도 화가 났다. 자연은 인간 세계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식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어느 정도 꾸준한 <동물의 왕국> 시청자라면 당연히 그 사실을 알 수밖에 없는데, 왜 갈기만 멋있게 길렀을 뿐 직접 사냥도 못하고 부계 계승과는 전혀 상관없는 동물이 ‘라이온 킹’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올해 리메이크가 나오면서 이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오리지널이 나왔을 때보다 더 본격적이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뒤로 2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의견이 바뀌었다. 더 이상 인간들의 가부장제도는 의인화된 동물 세계의 이야기라도 당연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에 나온 영화의 사자들은 진짜와 거의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사실적이라 그래도 어느 정도 의인화 과장이 있었던 원작 때와는 달리 관객들에게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이 영화는 암만 보아도 딥페이크를 이용한 가짜 뉴스 같았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평론가 케네스 튜란은 영화 속 사자들이 실제 자연의 생태를 반영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뉴욕 타임즈의 기사를 빈정거리며 “다음엔 저 동물들이 영어 사용자가 아니라고 지적하겠군”하며 빈정거렸지만 사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대중의 지식은 알게 모르게 대중매체의 영향을 받으며 잘못된 정보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편견은 인간 세상과 자연에 영향을 끼친다. 인간들의 가부장제와 계급 사회가 보편적인 무언가라는 사고방식의 유해성은 생각보다 크고 예술작품이 이를 습관적으로 왜곡하고 있다면 언론 매체가 지적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 주에 개봉된 <나랏말싸미>를 보면서 <라이온 킹> 때와 비슷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지 이 영화는 <라이온 킹>과 방향이 반대이다. <나랏말싸미>가 내세우고 있는 것은 몇 년 전부터 불교계에서 돌고 있는 가설, 그러니까 불교 승려 신미가 한글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한글 창제 과정에선 다들 세종대왕이 했다고 생각하는 일을 신미가 한다.



이 가설이 얼마나 그럴싸하고 설득력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 더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뒤늦게 의견을 얹을 입장이 아니다. 자기 능력으로 자신이 지지하는 역사적 해석을 바탕으로 한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도 잘못이 아니다. 그것이 우리가 아는 위인의 영웅적인 이미지를 망치거나 위축시킬 수도 있겠지만 그게 신성모독의 죄는 아니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그렇게 설득력 있지 않다. 이 영화는 소수 가설을 다룬 이야기의 아주 전형적인 패턴을 따른다. 음모론 영화가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영화는 종종 한글 창제의 정치적 의미보다 불교가 이 작업에서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이것이 어떻게 당시 기득권에 의해 은폐가 되었는가에 더 관심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가 ‘그럴듯해 보인다’ 이상의 증거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이것은 창작자가 믿고 있는 종교에 기반을 둔 가설이기 때문에 여러 가설 중 하나를 영화로 만든 것이라는 도입부의 자막과는 달리 타협의 여지가 없다. <나랏말싸미>는 좋지 않는 종교영화의 습관 그러니까 약한 주장을 의미 있는 증거나 근거 없이 큰 목소리로 강요하는 태도를 갖고 있다.



진실과 가설과 주장을 다루는 허구의 힘에 대해 생각한다. 이런 영화들이 이슈가 될 때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댓글이 달린다. 나름 옹호하려고 한 말이겠지만 허구 이야기의 창작자에게 이처럼 공허하고 모욕적인 말은 없다. 창작자는 두 시간 동안 낄낄대다 잊어버리라고 이야기를 만들지 않는다. 그들은 그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세계관과 주장을 전파한다. 창작자들을 옹호하고 싶다면 그들이 만든 이야기를 최대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길밖에 없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라이온 킹><나랏말싸미>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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