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봐도 예쁘다’, 반려동물 담론이 성장해 온 흔적을 담는 예능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지난 20-30년 사이,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을 부르는 명칭은 숨가쁜 속도로 변했다. 가축에서 집 지키는 개로, 애완견에서 반려견, 반려묘로. 그만큼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인구 수가 증가하며 동물들의 위상과 관련 담론이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관심을 가질 만한 이들이 많으니, 동물을 다루는 프로그램 또한 비슷한 속도로 증가했다. SBS <티브이 동물농장> 하나 정도에 불과했던 동물 프로그램들은, 이제 EBS <고양이를 부탁해>,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와 같은 본격적인 행동교정 프로그램부터 해피독, 스카이펫파크 등의 반려동물 전문 채널에 이르기까지 그 전문성과 다양성에서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성장했다.

몇 차례 동물 관련 프로그램들을 만들었으나 큰 성과를 내지 못했던 MBC가 새로 선보인 반려동물 파일럿 예능 <오래봐도 예쁘다> 또한 이와 같은 담론의 성장에 포커스를 맞춘 프로그램이다. 단순히 귀여운 동물들을 보는 재미를 추구하거나 동물을 호기심의 대상으로 소비하던 시절을 벗어나 “반려동물을 키우는 데에도 자격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건네는 프로그램인 셈이다.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 또한 MBC가 앞서 선보인 일련의 반려동물 프로그램에 대한 기억과 기대가 뒤섞인 마음으로 <오래봐도 예쁘다>를 봤다. 결론만 말하자면, 그 가능성과 주제의식 면에서 오래봐도 좋을 프로그램이 나왔다.



◆ 사람과 동물이 오래오래 잘 살 방법을 고민하다

몇 년 전만 해도 동물이라면 질색이었다. 그냥 싫었다. 교양의 탈을 쓴 덕에 내놓고 티를 내지는 않았으나 남들이 아무리 예쁘다며 난리 법석이어도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다. 늘 피하기만 했다. 그러다 우연히 개를 키우게 된 2012년 이후부터 사람 달라졌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아마 예전이었다면 JTBC <효리네 민박>의 동물들과 어우러져 침식을 같이 하는 장면에 거부감을 느끼고 남았을 게다. 그래서 MBC <오래봐도 예쁘다>의 박재정처럼 개를 두려워하는 마음도 잘 알고, 자신의 반려견을 생각하며 눈물짓는 이영진이나 이연복 셰프의 절절한 심정도 잘 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동물 관련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치가 점점 높아질 밖에. 스타견, 모델견을 뽑는 애견 오디션 KBS2 <슈퍼독>(2013) 때문에 한동안 속을 끓이기도 했고, tvN <삼시세끼> 방영 후 장모 치와와가 수없이 버려지고 있다는 소식에 울화가 치밀기도 했다.

동물을 인기 도구로 이용하는 차원이 아니라 사람과 동물이 서로 정을 나누며 오래오래 잘 살 방법을 소상히 알려줄 프로그램을 기다려왔다. <일밤-애니멀즈>(2015)며 <하하랜드>(2017~2018) 등 그간 MBC에서 방송된 동물 관련 프로그램들이 성에 차지 않았던지라 기대 반 우려 반이었던 <오래봐도 예쁘다>. 반려 동물을 마음 놓고 맡길 곳이 없는 이들과 반려 동물과 친해지고 싶은 이들의 연결 고리 역할이 이 프로그램의 시작이지만 출연자들은 물론 제작진까지, 모두가 동물에 대한 이해와 배려, 수준 높은 상식을 갖추고 있어서 보기 좋았다. 첫 회만으로 칭찬과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혹시 <가시나들> 모양 시청률을 이유로 정규 편성이 되지 않으면 어쩌나, 벌써부터 걱정이다.

정석희 방송 칼럼니스트 soyow59@daum.net



◆ 반려동물과의 시간을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보여주다

지난해 방영된 SBS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는 이혼한 뒤 반려견과 살고 있는 남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졌다. 남자의 반려견은 암에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 않는 상태였다. 드라마는 이 반려견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남자와 함께 보내는 마지막 나날들을 꽤 긴 에피소드에 걸쳐 오래도록 보여준다. 기존 드라마 속 반려동물 묘사와는 전혀 다른 접근이어서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많은 드라마에서 반려동물을 주요 인물의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는 ‘그림’으로서 필요한 순간에만 귀엽고 사랑스럽게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으로 그려왔다면, 이 작품은 반려동물과 인간이 공유하는 시간을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보여준다. 기쁨, 사랑만이 아니라 슬픔, 고통, 우울, 분노 등 어두운 감정의 시간들까지 포함한.



한 가족이 15년간 함께 해 온 반려견과 작별하는 모습으로 프로그램의 문을 연 <오래봐도 예쁘다>를 보면서도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반려동물과의 오랜 공존’을 고민하는 이 프로그램은 우리가 삶 속에서 감내해야 하는 많은 경험 속에 반려동물이 함께 존재하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특히 이영진 배우와 반려견 크림이, 그리고 펫시터로 나선 이연복 셰프의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다. 크림이는 암으로 다리를 하나 잃었고, 항암치료 뒤에는 식욕 부진으로 고생을 하는 중이다. 이연복 셰프는 크림이의 입맛을 되찾아주기 위해 레시피 개발에 도전한다.

많은 동물 프로그램에서 아픈 동물들의 이야기는 구조나 응원의 대상으로 그려지는 데 비해, 이 프로그램은 크림이가 지닌 문제를 그저 일상 속의 고민으로 그려냈다. 반려동물 프로그램이 반려인들이 겪을 수 있는 어려움과 문제점도 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지만, 그 메시지를 이렇게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보여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직 첫 회일 뿐이지만 <오래봐도 예쁘다>가 지닌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다.

김선영 칼럼니스트 herland@naver.com



◆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무게감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 두 마리는 모두 성묘가 된 후에 우리 집에 왔다. 아이들이 처음 사회화 과정을 거치는 시기를 함께 할 수 없었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예쁘고 애틋한 아이들이다. 그러다 보니 간혹 의아할 때가 있다. 강아지든 고양이든 나이를 먹는 게 당연한 일인데, 사람들이 환호하는 반려동물들은 대체로 어린 개체다. 작고 어린 개체만 귀여워하다 보니, 그 어린 시절 잠깐 예뻐해주다가 아이가 성장해 성견이나 성묘가 되고 나면 더 이상 예쁘지 않다며 싫증을 내고 파양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단다. 반려동물 구조어플 ‘포인핸드’에는 날마다 새로 구조된 아이들이 입양의 손길을 기다린다. 성묘나 성견은 좀처럼 입양이 안 된다는 건 슬픈 상식이 되어 버렸다.

세간의 인식이 이렇게 굳어진 것에는 미디어의 원죄도 있을 것이다. 반려동물을 다루는 미디어의 시선이 아이들을 마냥 귀엽고 예쁘고 어린 개체로 바라보는 일에 익숙해 있으니, 동물과 함께 사는데 필요한 심적, 물질적 준비가 하나도 안 된 이들이 “어려우면 뭐가 얼마나 어렵겠나”하는 마음으로 다마고찌 사듯 아이를 덜컥 입양하는 일이 더 잦아지는 게 아닐까.

그런 점에서 <오래봐도 예쁘다>가 내건 모토는 인상적이다. 반려동물을 좋아는 하지만 아직 키우지는 않고 있는 이들에게, 펫시팅 체험을 통해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기회를 준다는 접근은 시청자들에게도 여러 가지 마음가짐을 점검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특히나 화면 위에 등장하는 개체들이 한 차례 파양을 경험한 뒤 트라우마를 벗지 못 하고 있는 아이나, 골육종 수술과 오랜 항암치료로 식욕을 잃은 아이라는 점 또한 바람직하다. 한 생명을 집안에 들이는 일은 단지 밥을 챙겨주고 예뻐해주면 끝나는 일이 아니다. 나이 먹어 노쇠해지고 병들고 다치고 상처 입는 그 모든 순간을 함께 지켜주는 일이다.



물론 눈에 밟히는 부분도 없지 않다. 박재정처럼 아예 동물을 어떻게 대하면 좋은지 알지 못 하는 출연자가 펫시터로 온다면, 인간의 체험을 위해 동물이 스트레스를 감수하는 꼴이 되는 게 아닌가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스튜디오 토크로 조언을 주는 전문가들이 현장에도 같이 나가 이런 초보자들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오래봐도 예쁘다>가 정규 편성이 되어 이런 부분까지 보완이 된다면, 더 많은 이들에게 동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무게를 다시 한번 일깨워 줄 수 있는 프로가 될 수 있을 듯 보인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영상·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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