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싸미’, 세종대왕 폄훼 아니라고 하지만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영화적으로만 보면 <나랏말싸미>는 꽤 잘 만든 영화다. 그것은 이 영화가 지금까지 세종대왕을 다루는 많은 콘텐츠들이 깊게 들어가 보지 않았던 한글의 창제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어서다. 무에서 유를 창출해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제목에 담긴 것처럼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로 시작하는 ‘훈민정음’의 서문처럼, 우리는 우리말을 하고 있는데 글자는 한자를 쓰는 당대 언어생활의 어려움은 세종대왕이 그 말을 소리 나는 대로 글자로 만들려한 중요한 이유다.

소리글자를 만들기 위해 하나하나 발성을 해가며 그 소리가 입안 어디서 나오는지 알아내기 위해 손가락을 집어넣고 소리를 내는 과정들을 반복하고, 그 일관된 규칙을 찾아내며 나아가 점과 선만으로 다양한 글자의 조합을 만들어내는 그 한글의 창제 과정 속에는 그래서 자연스레 세종대왕의 뜻과 마음이 얹어진다. 그 뜻은 모든 정보들을 민초들도 공유하게 하여 특정권력자들이 정보를 독점해 나라가 망하는 걸 막겠다는 것이고, 그 마음은 좀 더 민초들이 편리하게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애민정신’이다.



그러니 세종대왕이 주도적으로 이 한글 창제를 하는 과정을 온전히 담았다면 박수 받아 마땅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나랏말싸미>는 박수는커녕 역사왜곡 논란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것은 출처도 불분명한 신미 스님의 한글창제설을 덜컥 영화의 중심으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신미는 세종대왕이 홀로 고민해온 연구들을 보고는 한 마디로 ‘헛짓’을 했다고 일갈하고, 소리문자를 만들기 위해 본인이 능숙한 산스크리트어를 참조하며 한글을 만들어나간다.

신미가 한글 창제의 중심부에 서게 되자 자연스럽게 세종대왕은 뒤편으로 물러난다. 물론 이를 지시하고 그 과정들을 검수하는 건 세종대왕의 역할이 되지만, 실제로 우리의 소리를 정리하고 점과 선으로 이어 만든 글자를 만들며, 심지어 그 한글을 쓰는 법을 정리한 것도 모두 신미의 몫이 된다.

물론 <나랏말싸미>가 이처럼 다소 도발적인 시도, 즉 신미가 한글 창제의 중심에 있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게 된 건 왕과 대등한 스님이라는 그 구도가 지금의 대중들에게 어떤 카타르시스를 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일 게다. 과거 <광해> 같은 영화가 광해라는 왕과 광대를 병치시키면서 만들어냈던 카타르시스와 유사한 어떤 것.



하지만 신미가 세종대왕을 ‘주상’이라 부르고, “왕 노릇 똑바로 하란 말입니다!”라고 일갈하는 장면에서 지금의 대중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보다는 어떤 불쾌함을 느끼는 면이 더 컸다. 역사는 세종대왕이 주도적으로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우리의 문화유산인 한글을 창제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어디서 갑자기 스님 한 명이 나타나 그걸 자신이 했다고 주장하고 심지어 세종대왕에게 면박을 주는 대목이 어딘가 잘못됐다 여겨졌기 때문이다.

역사왜곡 논란이 점점 커지자 <나랏말싸미> 조철현 감독은 신미를 세운 일이 역사를 왜곡하려는 의도가 아니라고 밝혔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 가졌을 내면의 갈등과 고민을 ‘외면화’하기 위해 영화적 인물을 만들어냈을 뿐이라는 것. 그리고 신미가 실존인물이며 여러 문헌에 기록이 나와 있어 충분히 ‘역사 공백을 개연성 있는 영화적 서사’로 만들만한 근거가 있는 인물이라고도 했다. 세종대왕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 <나랏말싸미>는 시작부분에 ‘다양한 훈민정음 창제설 중 하나일 뿐이며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고 자막으로 밝히고 있다. 하지만 한 인터뷰에서 “나로서는 넣고 싶지 않은 자막일 수 있다”며 “어째 됐든 그 누구든 역사적인 평가 앞에서 겸허해야 된다는 판단에서 넣게 됐다”고 한 말이 그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만들었다.

세종대왕이 주도적으로 만든 한글을 신미가 주도해서 했다고 하는 영화의 이야기는, 창작물로서의 상상력의 허용을 어느 정도 감안한다 하더라도 대중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다. 외국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특히 일본 같은 나라에서 이 영화의 신미 한글창제설을 보게 된다면 또 엉뚱한 말들을 늘어놓지 않을까 우려된다. 역사왜곡을 의도하려 한 건 아닐 수 있어도 <나랏말싸미>는 지금의 대중들의 정서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것이 이 영화가 끝내 무너지게 된 진짜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나랏말싸미>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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