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동’, 무엇이 죽을 때까지 할머니를 외치게 했나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14살의 소녀는 “일본에 가면 군복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며 돈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그리고 8년이 지나 22살에 기적적으로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 긴 기간 동안 일본군에 의해 이역만리 타향에서 유린당했던 그 기억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90세가 훌쩍 넘은 연세에도 김복동 할머니는 너무나 그 기억이 선명하다 했다.

<김복동>은 지난 1월 별세한 여성인권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였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1992년부터 세상을 떠난 올해까지 일본의 사죄를 받아내기 위해 투쟁해온 27년 간의 여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는 시작부터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어린 소녀 시절의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는 할머니의 담담해진 목소리와, 연실 손을 닦고 머리를 단정하게 매만지는 그 손길이 병치되면서다.



그 장면은 故 김복동 할머니가 여전히 그 기억을 씻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걸 에둘러 보여주면서, 동시에 이토록 단정한 할머니가 그 모진 고초를 겪었을 과거를 더욱 아프게 담아내고 있다. 결혼해 남편과 사별하기까지 그 과거사를 꺼내놓지 않고 혼자 감당하며 살았던 할머니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걸 모두가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자신만은 그 이유를 확실히 알고 있었다고 했다. 남편에 대한 미안함을 토로하는 할머니는 남편이 먼저 떠난 후 세상으로 나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은 그 아픈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는 고통은 물론이고, 자신이 키우다시피 한 조카들의 왕래가 끊어질 정도로 자신에게도 힘겨운 일이었다. 하지만 김복동 할머니는 당당하고 결코 굽히지 않는 기개가 넘쳤다. 1992년 1월부터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작한 수요집회에 나가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오는 8월 14일이면 무려 1400회째를 맞게 되는 수요집회. 27년간이나 이어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외침은 일관되게 이어졌다.



김복동 할머니가 치른 투쟁은 아베와의 투쟁이나 다름없었다. 1급 전범의 후예인 아베는 2012년 내각을 출범한 후 노골적인 과거사 왜곡에 나섰다. 일본 우익들이 목소리를 더했다. 오사카 시장 하시모토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망언을 일삼았다. 김복동 할머니는 오사카 시청을 찾아가 “내가 살아있는 증거”라며 시장 나오라고 외쳤다. 결국 꼬리를 감춘 시장에 대해서 할머니는 나타났으면 뺨이라도 한 대 올려 부칠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김복동 할머니의 투쟁은 위안부 피해자의 목소리에서 점점 나아가 인권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의 목소리로 확장되었다. 이 과거사를 덮으려는 아베 정권의 책략 앞에서 할머니는 90세의 노령의 몸을 이끌고 일본은 물론이고 전 세계를 순회하며 일본이 저지른 끔찍한 과거사를 알렸고, 그런 일들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인권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지난 박근혜 정부는 이런 할머니들이 수십 년 간 해온 투쟁에 대한 참혹한 배신을 저질렀다. 할머니들에게 아무런 사전 이야기도 없이 2015년 12월 28일 ‘한일합의’로 위안부 문제 종결을 선언한 것. 아베는 공식 사과를 끝내 거부했다. 이미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사과를 한 것으로 모든 건 종결됐다는 것. 할머니들은 당시 그들을 찾은 박근혜 정부의 공직자들에게 “니들이 뭔데 우릴 두 번 죽이냐”며 오열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끝내 사과를 듣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영화는 할머니의 장례를 보여주지 않았다. 다만 끝까지 싸워 “아베를 꼭 꺾으라”는 그 말을 남겨 놓았다. 그리고 기억을 제안했다. 자꾸만 기억이 사라져간다는 남은 피해자 할머니의 증언과 함께, 여러분들이 이 기억을 함께 해주지 않겠냐고 묻는다. <김복동>이라는 영화가 그 기억을 결코 잊지 않기 위한 기록이라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몸이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싸웠던 할머니들에 대한 기억이 어쩌면 아베를 끝내 꺾을 수 있는 길이라는.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김복동>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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