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애중계’, 스쳐지나가는 ‘아저씨 예능’으로 남지 않으려면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지난주 말 MBC를 통해 흥미로운 파일럿 예능 <편애중계>가 첫 선을 보였다. 스포츠선수 출신 방송인 서장훈, 안정환, 김병현이 해설의원 역할을 맡고 순서대로 붐, 김성주, 김제동이 캐스터가 짝을 이뤄 세 팀의 중계진이 편성됐다. 이들은 무언가 도전을 앞둔 사람을 찾아가 오롯이 그 입장에서 편애의 마음으로 도전 과정을 중계하고 응원한다. 일종의 편파 중계와 비슷한 설정이다.

이들의 첫 번째 중계는 평균나이 47.6세인 거제도 섬총각 3인방의 3대 3미팅 현장. 1회에서는 프로그램 소개와 함께 선수 분석 차원에서 일상 VCR을 돌려보며 외모, 성향, 스타일 등을 파악하는 시간을 가졌고, 다음 주 방영될 2회부터는 본격적인 소개팅 중계가 펼쳐질 예정이다.

왠지 모르겠지만 최근 옛 스포츠 영웅들이 TV앞에 모이고 있다. 올림픽이나 각 종목 원톱을 찍은 레전드 선수들이 조기축구를 하겠다고 뭉친 JTBC <뭉쳐야 찬다>에 이어서 MBC 2부작 파일럿 예능 <편애중계>에서 방송인으로 활발히 활약 중인 서장훈, 안정환과 함께 최근 해설위원으로 방송을 시작한 김병현이 가세해 또 하나의 레전드 모임이 결성됐다. 종목을 대표하는 선수로서 갖는 라이벌 의식과 친분은 아저씨 입담의 꽃을 피우는 기름진 양분으로 작용했다.



각 중계팀 간의 견제와 친분 있는 출연자들이기에 가능한 절묘한 티키타카는 최근 등장한 그 어떤 예능에서도 보기 힘든 수위와 밀도였다. 종목간의 견제와 디스는 기본이었다. 에어컨과 히터를 틀고 경기하는 실내운동 종목을 무시하는가 하면, 야구는 모자 쓰고 나와서 중간 중간 먹을 거도 챙겨먹는 피크닉이라고 한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개구진 얼굴로 대화를 주도한 서장훈과 안정환은 서로 ‘왜 긁냐’며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서장훈은 안정환이 다혈질인 것 같다는 김제동의 말을 바로 이어받아 다혈질인데다 욱하는 게 있어서 관중석에 난입했던 이야기를 예능에서 최초로 꺼내고 깔깔거렸고, 김성주조차 당황해하는 가운데 안정환은 결혼 이야기로 역공을 펼쳤다(여기서 김제동이 결혼식 사회를 봤다는 사실이 환기되기도 했다).



서장훈과 붐은 안정환의 극장골에 대해 실은 골을 넣었는지 모르고 두리번거렸다는 의혹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과연 두 해설위원의 위상이 자신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인지 의문을 품었다. 그러자 김병현은 국내무대에서 활약한 기록이라며 콕 집으며 반격을 했고, 안정환은 여권은 있냐고 물어봤다.

이런 식의 대화는 잠잠해질 만하면 어김없이 반복됐다. 월드시리즈 우승반지와 키스 세리머니로 유명한 안정환의 결혼반지, 아시안게임 금메달 등을 걸고 승부를 펼치자는 의견에 김병현이 어렵겠다는 말을 조심스레 꺼내자 안정환은 야구선수들은 배포가 없다고 묵직한 한방을 먹였다. 그러자 김병현은 결혼반지 내놓으면 집에서 괜찮게냐는 질문을 받은 안정환 옆에서 나지막이 ‘또 하면 되죠 뭐’라고 말하며 조용히 복수했다. 결혼반지를 내놓는다는 건 굉장히 큰 의미를 담고 있다는 말에 안정환은 대뜸 기수를 돌려 서장훈에게 “형은 전에 거 어쨌어. 팔았어?”라고 물어보는 난장의 연속이었다.



이처럼 <편애중계>는 안정환과 김성주 콤비나 붐, 서장훈 등 익숙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김제동이 8년 만에 예능에 복귀했지만 뻔히 본듯한 익숙함이나 서걱거리는 연습경기 없이 바로 본 게임으로 들어갔다. 다만, 문제는 볼만 한 부분이 오프닝 토크뿐이라는 점이다. 가장 자신 있게 뽑아든 카드(파일럿이니 최선의 카드)가 일반인, 그것도 시골 중년 노총각들의 소개팅이란 점에서 신선함을 대폭 깎아먹는다. 일반인의 일회성 소개팅은 예능사에 획을 그은 ‘아바타 소개팅’과 하나의 장르가 된 연애 예능의 역사적 경험에 비춰볼 때 흥미가 대폭 감소될만한 아이템인데다, 섬마을 시골 노총각들의 단체 소개팅은 의도가 너무 뻔하다.

게다가 결혼을 목적으로 하는 진지한 소개팅인데 심판도 있고, 타이머도 있다. 중계진이 선수를 택하는 방식도 그냥 사다리로 정할 뿐이다. 출연진의 상황은 진지한데 방송에서 풀어가는 설정은 장난스럽다는 데서 시청자들이 몰입할 만한 진정성이 흐릿하다. 오프닝 토크와 그 이후 VCR 지켜보는 코너 사이의 온도차가 확연하게 나타나는 이유다.



서장훈과 안정환, 붐, 김성주, 김제동, 김병현 등 ‘아저씨’로 묶을 만한 이들이 모여서 옛 이야기를 안주 삼아 떠들고 허세를 부리는 것까지는 마이너하긴 하지만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소개팅과 접목은 시대정신을 읽지 못한 패착이다. 익숙함으로 보나, 젠더 감수성으로 보나 웃음폭탄이 터질 가능성으로 보나 예능을 어느 정도 본 시청자라면 자연스레 큰 기대가 생기지 않는 소재다.

그래서 요즘 분위기에 맞는 캐스팅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정규방송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사람을 모으는 것에서 기획이 끝나선 안 된다. ‘서장훈, 안정환, 김병현’이 모였다가 아니라 이들이 모여서 ‘무엇을 한다’는 데 방점이 찍혀야 한다. 이 파일럿이 안착하기 위해서는 모험이 필요해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인생과 도전을 논하던 최초 기획의도와 달리 남초 사이트에서 몇 차례 언급되고 스쳐지나가는 ‘아저씨 예능’의 하나로 남게 될지 모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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