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탐정’, 드라마가 이토록 남김없이 까발릴 수 있다는 건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드라마 찬(贊)△. SBS 드라마 <닥터탐정>은 역학조사를 통해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는 의사들의 활약을 보여주는 메디컬 수사물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궁금한 이야기 Y> 등을 만들었던 박준우 PD가 연출을 맡고,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출신으로 다큐멘터리 <하얀정글>을 찍기도 했던 송윤희 작가가 극본을 썼다. 드라마는 구의역 참사, 수은 중독, 메탄올 중독 등 실제 사건을 재현하며, 주제곡으로 <청계천8가> 등 투쟁가요를 활용할 만큼 사회고발의 의지가 높다.

PD와 작가 모두 드라마를 작업하던 경험이 부족한 탓인지, 이따금 서사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고, 슬픈 감정에 과몰입 하는 등의 미숙함이 느껴진다. 시청자들이 견딜 수 있는 ‘고구마’ 장면의 임계치가 얼마인지 아직 잘 모르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드라마의 주제의식이나 고발의 진정성이 높다보니 이런 단점들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그보다 신선하게 느껴지는 점도 많다. 천재적인 재능과 입체적인 사연을 지닌 도중은(박진희)이 여성이며, 그를 이끄는 멘토도 여성이다. 두 여성의 전문성과 리더십이 조직을 이끌고 문제를 해결해나간다. 남성 동료도 등장하지만, 그는 허세 가득한 인물로 분위기를 이완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동안 전문성이나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주인공을 주로 남성이 맡고, 여성은 그를 보조하거나 분위기를 변화시키는 역할로 등장했던 것을 생각하면 진보적인 구도이다.



◆ 이것은 리얼, 유일한 허구는 UDC일 뿐.

<닥터탐정>은 <특별근로 감독관 조장풍>이 그랬듯이, 현실의 생활현장에서 늘 일어나고 있었으나 굵직한 정치적 이슈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던 노동문제를 높은 싱크로율로 담아낸다. 드라마 속 유일한 허구적 설정이 ‘미확진질병센터(UDC)’의 존재다. UDC는 직원이 10명 안팎의 작은 연구소이지만, 검찰처럼 수사권을 갖는다. 직업병이나 산업재해가 의심될 경우,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을 가지고 사업장에 들이닥쳐 직접 역학조사를 벌일 수 있다.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공일순(박지영)이 20년간 헌신하여, 기존 법의 시행규칙을 바꾸는 꼼수를 통해 활동근거를 마련했다. 그러나 재벌 등의 압력으로 늘 존립에 위협을 느낀다.

이 정도 위상의 UDC 일망정,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이나 활동가들에게는 꿈같은 기관이다. 작업장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원인모를 질병에 시달리고 반복된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는 것을 보아온 이들은 직업병이나 산업재해 입증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산재나 직업병임이 밝혀질 경우, 경제적·법적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에, 개인과실로 돌리거나 서둘러 합의를 보아 조사가 시작되지 않도록 한다. 조사가 이루어져도 증거를 인멸하여 사건을 은폐하기 일쑤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처럼 수사권을 가진 독립된 역학조사 기구가 있어서 현장을 압수수색하며 수사를 벌일 수 있다면 훨씬 많은 사례에서 원인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UDC는 ‘수사권을 갖춘 독립된 역학조사 기구’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판타지적 설정이다.



<닥터탐정>은 UDC 소속 의사들이 노동자들의 질병 원인을 쫓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동안 메디컬 드라마는 많았지만,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의 업무를 보여주는 메디컬 드라마는 없었다. 드라마는 첫 회부터 급식노동자에게 피부질환을 유발한 원인을 찾아내기 위한 과학적 추리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직업환경의학의 지식이 노동자의 편에서 산재 원인을 규명하는데 쓰일 수도 있고, 회사 편에서 산재 원인을 은폐하는데 쓰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드라마는 직업병과 산재가 발생하는 작업현장의 사례들을 에피소드로 녹여내며, UDC 의사들이 증거를 수집하고 단서를 맞추는 작업을 작가의 전문성을 살려 보여준다.



◆ 현실과 드라마 사이

드라마 <닥터탐정>은 산재와 직업병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대기업은 ‘위험의 외주화’를 통해 위험한 작업을 하청기업에 떠넘긴다. 공장은 사용이 금지된 유해물질을 값이 싸다는 이유로 성분을 속여 가며 계속 쓴다. 갓 스무 살의 청년이 정규직화 시켜준다는 말만 믿고 노조에도 가입하지 않은 채 회사가 시키는 대로 일하다 죽는다. 기업은 노동자가 과실이라고 언론 플레이를 하고, 동료 노동자에게 살인 누명을 씌운다. 산업 폐기물을 쌓아놓은 곳에 컨테이너로 노동자 기숙사를 지어 위험물질에 노출시킨다.

그뿐인가.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의 시신을 탈취하려하고, 경찰을 매수해 증거를 조작하고, 유족을 압박해 부검을 못하도록 합의한다. 심지어 과거장면에서는 응급상황임에도 119가 아닌 협력병원 구급차가 오도록 시간을 지체하여 노동자를 죽게 하고, 상황을 은폐한다. 노동자들은 상사의 갑질과 성희롱에 시달리고, 작업 중 유독가스를 흡입해 갑자기 중태에 빠지기도 한다. 그나마 여러 개의 단기 알바를 전전한 노동자의 경우, 위험 작업에 노출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어렵다.



<닥터탐정>은 다큐멘터리 못지않게 고발성이 짙다. 어쩌면 다큐멘터리로 담지 못한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드라마를 만든 것일 수 있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들은 취재를 하다가 알게 된 행간의 진실들이나 아직 결정적인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이야기들, 또는 대상을 적시해 폭로했을 때 입게 될 불이익 등을 생각하여, 차라리 픽션으로 만들면 더 많은 진실을 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닥터 탐정>은 바로 그런 욕구에서 탄생한 고발극으로 보인다.

다만 이럴 경우, 시청자가 이 모든 내용을 허구로 받아들일 위험이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드라마는 에필로그를 활용하여 이것이 실제 사건들임을 분명히 한다. 2회 끝에 구의역 참사의 실제 추모 화면을 보여주고, 6회 끝에 수은중독으로 숨진 문송면 사건의 자료 화면과 유족의 증언을 보여준 것은 드라마가 단지 허구가 아님을 웅변하는 장치이다.



이런 기법이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 지는 영화 <그때 그사람(들)>을 둘러싼 법적 공방을 떠올려보면 금방 이해된다. 영화가 박정희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유족이 낸 상영금지 소송에서 법원은 부분적으로 유족의 손을 들어주었다. 법원은 영화의 에필로그로 들어가 있는 실제 자료 화면을 잘라내고 상영하도록 명령하였는데, 이렇게 하면 앞의 블랙코미디적인 극은 단순한 허구로 간주되어, 고인의 명예가 훼손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닥터탐정>은 이러한 논리를 역으로 활용한다. 실제화면을 담은 에필로그를 첨부함으로써, 앞의 장면들이 허구가 아닌 현실의 재구성으로 감각되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 또 하나의 가족?

<닥터탐정>은 여러 사건을 경유하여 하나의 꼭짓점을 가리킨다. 그것은 ‘가족’을 표방하며 무노조 경영을 고집하는 1등 기업, TL이다. TL그룹은 바이오메디컬 단지 건설을 목전에 두고 있다. 정권이 몇 차례 바뀌든 지난 50년 간 1등 기업의 자리를 굳혀왔다고 자부하는 최회장(박근형)은 TL병원 꼭대기의 VIP실에 누워있다. 아들 최태영(이기우)은 TL 전자를 맡아 신제품 출시에 주력하고 있으며, UDC의 도중은과 이혼한 사이이다. TL 그룹은 오래된 치부를 은폐하기 위해 윗선을 움직여 UDC의 권한을 축소한다. 또한 관련 사건이 터질 때마다 철저하게 언론을 통제한다. 드라마는 특정 인물이나 사건, 단체 등과 무관하다는 자막을 싣지만, 여러 설정들에서 삼성을 떠올리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이것은 단지 우연이 아닐 것이다. 21세기 들어, 산업재해와 직업병 분야에서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이 가장 끈질기게 싸워온 상대가 바로 삼성이다. 2007년 황유미씨의 사망 이후, 유족과 ‘반올림’의 활동가들이 10년이 넘도록 싸워 왔다. 지난 5월에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안전보건공단은 대규모 역학조사를 통해 반도체 노동자의 백혈병·비호지킨림프종 등 발병 위험이 높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하지만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37명의 산재신청자들 중 산재를 인정받은 사람은 43명뿐이다. 지난해 11월에 삼성전자는 반올림과 합의하며 ‘폭넓은 보상’을 약속했지만, 호지킨림프종, 다발성신경병증, 뇌경색, 크론병, 식도암, 침샘암 등에 대해서는 보상대상에서 제외했다. 또한 여기에는 하청노동자나 베트남 등 해외공장의 노동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최근 정부는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제한에 따른 대응책으로, 환경이나 52시간 노동시간 등에 관한 규제를 완화하고, 세금을 감면하여 소재 국산화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 개발과정에 노동자의 안전은 확보되어 있지 않다. 52시간 노동시간 후퇴도 노동자의 건강에 위해가 될 것이다. 그러나 경제 전쟁과 반일의 프레임 속에서, 이런 점들은 부차적으로 취급된다. “세계 시장에서 1등 제품을 많이 수출하는 기업이 슈퍼 애국자”라는 양정철 민주연구소장의 발언처럼, 삼성은 애국의 기수로 추앙 받는다. 삼성을 향해 쏟아지던 ‘살인기업’이라는 지탄과 이재용을 향해 빗발치던 ‘국정농단의 공범’이라는 비판은 잊힌 지 오래다.



전 국민이 삼성을 응원하는 동안 누가 고통과 침묵을 강요당하게 될지 생각해야 한다. ‘무노조 경영’의 원칙은 한갓진 경영철학이 아니라, 지금 고공농성 중인 김용희씨를 죽음으로 내모는 만행이다. 젊은 시절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설립하려했다는 이유로 온갖 회유, 협박, 폭행, 따돌림, 음해 등에 시달리다 해고된 김용희씨는 올해 60세의 몸으로 강남역 앞 철탑에 올랐다. 원직 복직을 요구하며 55일간 단식을 이어가던 그는 7월 27일 단식을 중단했지만 여전히 철탑 위에 있다.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모든 전쟁의 끝은 노동자들이 죽음을 맞고, 자본가들이 돈을 버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드라마가 절규하듯 폭로하는 노동현장의 참상은 결코 드라마 안에 머물지 않는다. 구의역 김군도, 김용균씨도, 황유미씨도 모두 우리의 이웃이었다. 지켜주지 못한.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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