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동전투’, 고증 문제보다 심각한 건 태도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원신연 감독의 <봉오동 전투>의 고증 문제 자체를 진지하게 물고 늘어지며 트집 잡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일단 나보다 이에 대해 더 잘 아는 전문가들이 있을 텐데 굳이 내가 나설 필요는 없다. 꼭 시대물이 고증에 맞아야 한다는 절대적인 이유도 없다. 역사적 진실이 허구의 이야기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할 때도 있다. 허구의 인물들이 실제 역사적 인물들을 밀어낸 것도 전혀 문제가 될 게 없다. <전쟁과 평화>에서도 나폴레옹과 쿠투조프는 단역에 불과하지 않은가. ‘정통사극’ 지지자들의 착각과는 달리 위대한 역사소설들은 실존 유명 인물들에게 그렇게 집착하지 않는다. 소설은 허구이고 허구의 이야기는 작가가 보다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허구의 인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구할 수 있는 사료들을 총동원해 봉오동 전투를 객관적으로 재구성한 영화가 나왔다면 좋긴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코닐리어스 라이언의 논픽션들을 각색한 <지상 최대의 작전>과 같은 스타일의 영화 말이다. 나는 이런 영화들에 약간의 향수를 갖고 있고 <명량>도 그런 영화로 나오길 바랐다. 모든 전쟁영화가 그럴 필요는 없겠지만 조직적으로 묻히고 무시된 역사를 발굴하는 영화라면 객관성은 중요한 무기일 것이다. 허구의 인물에 집중한다고 해서 이 객관성을 포기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이 그런 영화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면 그냥 그 사실을 인정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밖에.



그러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보자. <봉오동 전투>에서 나에게 가장 신경 쓰였던 건 고증이 아니라, 태도였다.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제국주의 침략자의 총칼 앞에 이웃과 가족이 죽는다면 증오와 분노로 눈이 돌아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그들이 독립운동을 하는 이유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밖에. 마찬가지로 유해진 캐릭터가 독립군의 입장을, 다른 남자에게 아내와 아이를 빼앗긴 가부장에 비교할 때, 나는 그런 캐릭터가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내가 그 사람에게 공감해야 한다는 이유는 되지 못한다. 그리고 그건 영화가 그런 사람들에게 아무런 저항 없이 몰입해야 한다는 말도 되지 않는다.



<봉오동 전투>의 문제점은 영화의 눈높이가 딱 유해진 캐릭터에 맞추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과몰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영역권을 다른 수컷에게 빼앗긴 수컷 짐승처럼 군다. 이건 종종 비유를 넘어서는데, 이 영화의 남자들은 영역권을 표시라도 하듯 끊임없이 오줌을 갈겨댄다.(심지어 후반에 등장하는 결정적인 인물은 큰일을 보면서 등장한다.)

물론 수컷들의 분노는 전쟁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쟁과 애국심의 전부일까? 전쟁은 언제나 끔찍하고 크고 복잡한 것으로,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만족시키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봉오동 전투>는 전쟁 상황을 순전히 학살의 포르노를 제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 유해진 캐릭터가 칼로 일본군을 난도질하는 장면을, 류준열 캐릭터가 기관총으로 적을 섬멸하는 장면을 보라. 이들은 암만 봐도 2019년이라는 나름 중요한 해에 나온 진지한 전쟁영화의 일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스파게티 웨스턴 그리고 그런 종류의 영향을 받은 타란티노의 영화에 더 가깝다. 스파게티 웨스턴은 장르화된 가짜 공간을 무대로 삼는다. 타란티노는 모든 역사를 페티시의 재료로 삼는다. 원신연의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가 타란티노와 같다면 이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모든 전쟁영화가 반전영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그건 깊은 고민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공허하기 짝이 없는 소리이다) 관객들이 전쟁의 스펙터클을 오락으로 삼는 게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영화가, 창작자가, 관객이 그렇게까지 금욕적이기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와는 별도로 2019년이라는 나름 중요한 해에 나와 역사전쟁의 군인을 자처한 영화가 이렇게 깊은 고민과 계획 없이 무작정 흥분해 날 뛴다면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다. 과연 <봉오동 전투>는 전쟁터에 보내도 믿을 수 있는 군인이 맞는가.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봉오동 전투>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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