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생존자’, 우리식 해석은 이해되지만 허술한 전개는 아쉽다

[엔터미디어=정덕현] 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가 이제 최종회 한 편만을 남기고 있다. 누가 테러의 배후인가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상황으로, 결말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하다. 어찌 보면 이 드라마는 바로 이 끝까지 풀리지 않는 배후의 중심에 서 있는 VIP라 불리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의 힘으로 지금껏 흘러오지 않았나 싶다.

종영에 즈음해 <60일, 지정생존자>를 다시금 되새겨보면, 이 드라마는 미드 원작을 우리네 한반도 상황에 맞게 재해석하려 애썼다는 걸 알 수 있다. 미드에서는 테러 후 지정생존자로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 훨씬 더 능동적이고 파워풀한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우리 식으로 해석한 <지정생존자>에서 박무진 권한대행(지진희)은 모든 일에 있어서 먼저 행동하기보다는 심사숙고하고 고민하는 인물이다.

이것은 미국의 헌법이 정한 지정생존자가 대통령이 되어 그 권한을 그대로 받는 것과 달리, 우리네 헌법은 권한대행으로 다음 대통령까지 그 공석을 채워주는 정도라는 점이 다르다는 것에서부터 기인한다. 대통령령 하나를 내리는 것에도 그것이 ‘현상유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내릴 수 없는 권한의 한계가 그것이다.



또한 한반도라는 상황은 남북관계와 한일, 한미 관계 등이 겹쳐져 있어 훨씬 더 복잡하다. 미국처럼 테러가 벌어져도 전쟁을 자국에서 치르는 게 아니라 타국에서 치를 수 있는 상황하고는 다를 수밖에 없다. 권한대행으로 있는 인물이 어떤 하나의 선택을 잘못하게 되면 자국 내에서 전쟁이 벌어질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 그 선택들은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박무진은 끊임없이 갈등하고, 조바심을 느끼며, 때론 지나치게 심사숙고하는 느낌을 준다. 미드 원작 <지정생존자>가 단 몇 회 만에 테러범을 잡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과 달리, 우리네 <60일, 지정생존자>는 그 16부작에 걸쳐 테러범과 그 배후를 잡는 이야기로 풀어진 건 그래서 이해되는 면이 있다.

하지만 그런 면들을 이해하면서도, 액션드라마로서의 너무 느릿한 전개가 가져오는 지지부진함이나, 정치드라마로서 허술한 이야기 전개는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특히 마지막에 와서는 박무진편으로 모든 이들이 쉽게 돌아서고, 모욕을 주었던 군 장성이 쿠데타를 진압한 후 경례를 올리고, 정적이라 할 수 있는 야당대표와 손을 잡고 테러범을 잡으며, 돌아섰던 언론이 공식 브리핑 하나로 박수까지 치는 모습들로 처리되는 건 다소 오글거리는 느낌마저 준다. 그건 이야기의 개연성 부족을 리액션으로 채워 넣는 듯한 장면들이다.



사실상 드라마를 악역의 힘으로 이끌어온 오영석 의원(이준혁)이 다소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도 이 드라마가 인물을 쓰는 소모적인 방식을 드러낸다. 즉 극성을 위해 인물을 쓸 데까지 쓰지만 어느 순간 불필요해지면 인물은 폐기되듯 사라져버린다. 오영석 의원이 그렇고 최강연(김규리)이나 그 아들이 그러하며, 심지어 한주승(허준호)이나 차영진(손석구) 그리고 정수정(최윤영)도 박무진을 위한 포석 정도로 활용되며 그 이상의 존재감을 만들지 못한 부분도 그렇다.

사실 다양한 인물들을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다루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게다. 하지만 드라마는 아쉽게도 박무진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세우고 다른 인물들은 그 주변에 배치해 그를 부각시키는 존재들로만 그려냈다. 대신 이 드라마는 박무진의 고민과 선택에 상당한 시간을 투입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앙상하게 만든 면이 있다.

테러 배후 세력과 연관된 김실장(전박찬)이 박무진에게 “당신이 이 테러를 완성시켰다”며 “처음과 끝에 박무진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다른 의미로 들리기도 한다. 결국 이 드라마는 박무진이라는 한 인물에 집중해왔다는 것. 그래서 지진희라는 배우의 존재감은 그 무엇보다 빛났지만 그로 인해 다른 주변 인물들은 다소 소모적으로 활용된 면이 있었다.



그나마 지진희가 그 갈등하고 정직한 선택을 하려 애쓰는 박무진이라는 인물을 제대로 살려냈기 때문에 <60일, 지정생존자>는 끝까지 힘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속물적이고 욕망이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선한 선택을 하려는 박무진이라는 인물의 우직한 면모를 지진희는 제대로 연기해냈다. 그 힘이 아니었다면 드라마는 자칫 지리멸렬해질 수도 있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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