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지만 괜찮아’, 사이코 아닌 상처 입은 자들을 위한 동화

[엔터미디어=정덕현] “이렇게 머리끄덩이를 잡는 데 소리 안 지를 사람 있니? ? 당신도 지르네.” 자폐를 가진 상태(오정세)를 미친 놈 취급하는 남자의 머리끄덩이를 잡아채며 고문영(서예지)은 그렇게 쏘아붙인다. 동화작가 고문영의 열성 팬인 상태가 사인회에 왔다가 동생 강태(김수현)가 한 눈을 판 사이 만들어진 작은 소동이었다. 공룡 마니아이기도 한 상태가 부모랑 함께 온 아이가 공룡 옷을 입고 있는 걸 보고 다가가자 부모가 거칠게 상태를 막아서면서 생긴 소동.

tvN 새 토일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가 보여준 이 장면은 이 드라마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 하는가를 명확히 보여준다. 아마도 길거리에서 상태 같은 자폐를 가진 인물이 다가와 자신의 아이에게 이상한 말을 건넨다면 우리의 반응이 달랐을까. 조금은 기피하는 마음이 생기는 게 당연한 일일 게다. 하지만 머리채를 잡거나 아예 미친 놈이라 치부하는 건 말이 다르다. 그건 정신적으로 상처 입은 이들에 대한 지독한 편견이 더해진 행동이니까.

그래서 아이의 엄마가 나서 아니 그러면 웬 미친놈이 애한테 해코지를 하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어?”라고 되묻자 고문영은 어떻게 상태를 그렇게 아냐고 묻는다. 그러자 막상 답변을 던지기가 어려워진다. “그거야 막.. 말을.. 막 주절주절 이상하게 하니까..” 고작 내놓을 수 있는 답변이 이 정도다. 그러자 고문영의 송곳 같은 말이 날아간다. “미친 년.” 그러면서 그 엄마가 한 말을 되쏘아준다. “아니 말을 막 주절주절 하시기에. 미친 년인 줄 알았지.”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이 장면이 말해주는 것처럼, 이 드라마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과연 우리는 우리와 조금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그들을 사이코라 치부하며 비하하고 있는가. 아니면 어떤 마음의 상처를 입은 이들일 뿐이라고 바라보고 있는가.

강태와 문영, 상태는 모두 평범한 인물들이 아니고, 평탄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아니다. 정신병동 보호사로 일하는 강태는 어린 시절 엄마가 살해당한 후 성진시를 떠나 자폐를 가진 형을 지금껏 짊어지고 살아왔다. 1년마다 형이 겪는 나비 악몽때문에 계속 떠도는 삶. 그는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만들지 않으려 한다. 문영 역시 반사회적 인격성향을 가진 인물로 겉보기엔 과시욕에 가득 찬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만큼 자신의 보호본능이 강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들이 평범하지 않게 된 건 이들의 탓이 아니다.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강태는 삶에서 도망 중이고, 상태는 그 아픈 기억으로부터 도망 중이다. 문영은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난 게 자신의 잘못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런 이상한 성격을 좋아해줄 사람은 없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이들을 사이코취급하지만, 이들은 그래서인지 운명적으로 서로에게 끌린다.

자신을 괴롭히는 평론가를 응징한 후 흥분해 있는 문영을 뒤에서 다가가 강태는 보호사로서의 조언을 해준다. “심호흡 해. 더 깊이. 눈 감아. 스스로 통제가 안 될 땐 이렇게 양팔을 엑스자로 교차해서 양쪽 어깨를 번갈아서 토닥여줘. 이러면 격했던 감정이 좀 진정될 거야.” 이른바 나비호흡법을 알려준다. 그러자 문영은 되돌아서서 강태를 똑바로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뒤에서 이러는 건 내 취향 아니야. 트라우마는 이렇게 앞에서 마주 봐야지. 뒤에서 보듬는 게 아니라.”

트라우마 때문에 성진시를 떠나 떠돌다 이제 다시 성진시로 돌아온 강태와 상태. 그리고 강태에 마치 빨간 구두를 신은 것처럼이끌려 성진시를 찾아간 문영. 이들은 과연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트라우마와 마주해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강태와 문영의 멜로는 그래서 아직 드러나지 않은 과거 사건과 함께 이들이 겪는 트라우마가 풀어지는 과정을 통해 진전될 것으로 보인다.

시작부터 잔혹동화 같은 느낌으로 시작한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우리가 알고 있는 착한 공주가 마녀를 물리치고 행복하게 산다는 그런 틀에 박힌 이야기를 거부하고 있다. 대신 마녀가 된 자가 왜 그렇게 됐고, 왜 그런 식으로 불리며 취급당하느냐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사이코? 그렇게 함부로 불러대는 미친 세상에 대한 질문을.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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