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이 그놈이다’, 비혼·성소수자 코드까지 가져왔지만 결국은

[엔터미디어=정덕현] “오늘 전 사랑하는 부모님과 친구들 앞에서 평생의 반려자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제가 죽는 날까지 믿고 사랑하기로 한 평생의 반려자는 서현주 저 자신입니다.” KBS 월화드라마 <그놈이 그놈이다>에서 서현주(황정음)는 결혼식 당일 홀로 연단에 올라 그렇게 선언한다. 비혼주의자 선언이다.

그가 그런 선언을 하게 된 건 겉으로는 바람이 났거나 뻔뻔하게 돈을 요구하는 등의 이상한 남자들 때문인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결혼 프러포즈를 받았던 남자 앞에서 그는 갑자기 깨닫는다. 자신이 그를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는 걸. “그 때 안 거 같애. 진짜 문제는 남자들이 아니라 나한테 있었구나. 생각해보니까 한 번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본 적이 없더라고.”

즉 서현주의 비혼주의 선언은 그가 지금껏 어떤 남자에게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감정을 가져보지 못했다는 것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조금 엉뚱하지만 그가 어린 시절 보게 됐다는 몇 차례의 전생에 대한 기억이 그 이유로 제시되어 있다. 여러 전생에서 서현주는 아픈 이별을 계속해서 경험한다. 그 상대는 바로 황지우(윤현민)이다. 그는 계속 서현주를 사랑하게 만들고는 떠나버린다. 그래서 이 아이는 깨자마자 세 번에 걸친 전생에서 맘 고생한 걸 부모에게 토로한 후 자신의 꿈으로 비혼을 말한다.

물론 다소 코미디적인 설정으로 처리되어 있지만, <그놈이 그놈이다>가 담는 비혼주의는 그 이유가 다소 단순하다. 결혼을 지상과제처럼 생각하며 모든 멜로드라마의 엔딩이 결혼이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결혼은 하나의 선택이라고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비혼주의는 기혼주의의 억압에 대항해 나온 개념이다.

<그놈이 그놈이다>가 굳이 서현주의 비혼주의자 선언으로 드라마를 열고 있는 건 아무래도 지금의 달라진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담기 위함일 게다. 그런데 멜로드라마의 시작에서 선언되는 비혼은 어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다시 멜로로 회귀할 것 같은 기시감을 주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벌써부터 서현주 주변에는 갑자기 나타나 그의 새로운 일자리를 제안하고 동시에 호감을 드러내는 황지우가 있는데다, 이미 오래 전부터 오누이처럼 친하게 지내오다 갑자기 남자로 들이댈 것 같은 웹툰작가 박도겸(서지훈)이 있다. 전 웹툰 회사에서 잘린 서현주를 따라나온 박도겸이 그와 함께 같은 집에서 지낸다고 하자 황지우가 애써 도겸의 작업실을 제공한다고 나서는 대목에서는 벌써부터 시작된 이들의 애정 경쟁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놈이 그놈이다>는 향후에도 비혼주의자의 당당한 삶을 담아나갈 지가 궁금해진다. 역시 다소 엉뚱하지만 황지우와 박도겸 사이에 성소수자 코드를 집어넣은 것도 조금은 의아한 대목이다. 비혼주의도 성소수자 소재도 결코 가볍지 만은 않지만, 이런 소재를 가져온 드라마가 어쩌면 또다시 삼각멜로의 틀로 들어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기는 이유다. 물론 이제 겨우 2회가 방영된 것이니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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