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2020년 엄정화는 MBC 예능 <놀면 뭐하니?> 환불원정대의 만옥 ‘부캐’로 큰 사랑을 받았다. 그녀는 천옥, 은비, 실비와 함께 부른 <Don’t Touch me>에서 후배들의 강하고 허스키한 보컬 사이에서 또 다른 보석처럼 반짝였다. 다른 멤버들의 보컬이 다이몬드처럼 단단하다면, 만옥의 음색은 진주처럼 연약한 듯 섬세하고 은은하게 빛났다. 뿐만 아니라 여린 듯하다가도 날카롭게 도드라지면서 드라마틱한 느낌을 전달해주기도 했다. 만옥은 엄정화의 재발견이었다.

30여년의 경력이 말해주듯 그간 엄정화를 표현하는 수식들은 다양했다. 일단 한국의 마돈나는 이제 좀 촌스러우니 치우자. 마돈나라는 팝 아이콘이 아니어도 한국 대중문화에서 엄정화를 설명할 수 있는 수식은 다양하니까. 1990년대 한국 나이트 댄스 음악계의 중심, 영화배우와 가수를 넘나드는 만능 엔터테이너, 한국 일렉트릭 뮤직의 트렌드세터, 그리고 큰 눈망울을 깜빡이며 마음껏 행복해하는 이웃집 언니나 누나 같은 친숙함도 그녀를 설명할 수 있는 기호다.

하지만 환불원정대 활동은 엄정화의 ‘음색’이 주는 가치를 기존의 팬층은 물론 대중들에게 새롭게 알려준 계기가 됐다. 만옥만으로도 2020년의 엄정화는 오랜만에 무대에서 성공을 거둔 셈이다. 다만 예능프로의 프로젝트이다 보니 안무나 의상에서 엄정화 특유의 매력을 느끼기는 힘들었지만 말이다.

이 때문일까? 엄정화는 2020년이 끝나가는 이 시점에서 본인의 매력을 고스란히 담은 신곡을 발표했다. 2017년 겨울 발표한 <구운몽> 앨범 PART2에 수록된 <Ending Credit>이후 3년만이다. 당시 미디엄 템포의 달곰씁쓸한 매력이 담긴 <Ending Credit>은 단순히 이별 이후의 담담한 심정을 담은 이별 노래만이 아닌, 엄정화의 작별인사 같은 곡으로 다가왔다. 엄정화와 그녀의 음악, 엄정화와 그녀의 팬들, 그리고 엄정화와 화려했던 1990년대와 2000년대의 무대와의 작별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3년만의 신곡 <호피무늬>에서 엄정화는 이 노래의 가사처럼 ‘또각또각’ 다시 대중들에게 다가온다. <호피무늬>는 환불원정대 활동 연장하기 위한 홍보용의 밋밋하고 빤한 싱글이 아니다. 또 엄정화가 주력해 온 1990년대의 나이트댄스나 2000년대의 일레트릭 뮤직과도 거리가 멀다.

<호피무늬>는 지금 2020년 힙스터들의 감성에 맞는 세련된 음악이다. 1980년대의 레트로 감성과 2020년에 걸맞은 그루비한 비트, 거기에 DPR LIVE의 래핑과 화사의 소울풀한 목소리가 듣는 맛을 돋우는 소스처럼 뿌려져 있다. 여기에는 인디부터 메이저까지 한국 힙합의 긴 역사에서 살아남은 개코의 프로듀싱 감각도 한 몫 한다. 하지만 역시 이 모두를 어우르며 자기만의 뮤직으로 표현해낸 건 엄정화의 힘이다.

특히 엄정화는 <호피무늬>에서 지난 앨범부터 도드라진 그녀의 음색을 맘껏 뽐낸다. 엄정화는 <호피무늬>의 도입부에서 날카롭게 던지듯이 철벽과 절벽, 시멘트색의 도회적 단어들을 내뱉는다. 이후 ‘호피’를 길게 끌고 ‘무늬 옷’을 간결하게 연결하면서 반전의 맛을 준다. 그리고 바로 ‘또각또각’을 읊조린다. 또각또각이란 단어는 사실 엄정화의 음악을 대표하는 느낌이기도 하다. <포이즌>의 도입부의 느낌부터 시작해서 그녀의 노래에서는 하이힐을 신고 당당하게 걷는 <워킹걸>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호피무늬>에서 엄정화는 아예 대놓고 이 ‘또각또각’을 나직하게 읊조리는 것이다. 이후 엄정화의 보컬은 그루브한 분위기 그리고 DPR LIVE의 래핑과 어우러지면 매력적인 호피무늬의 세계로 듣는 이를 인도한다.

또한 <호피무늬> 뮤직비디오를 통해서는 환불원정대에서 보여주지 못한 다양한 춤과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엄정화는 <호피무늬> 뮤직비디오에서 호피무늬 보디슈트에 망사스타킹, 포니테일 헤어스타일로 고급스럽고 우아한 섹시 무드의 강렬한 표범으로 변신한다. 그리고 역시나 엄정화의 뮤직비디오 퍼포먼스는 감탄을 자아낸다. 엄정화는 노출이 눈요기가 아닌 예술이 되는 지점을 감각적으로 알고 표현할 줄 아는 흔치않은 엔터테이너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아메바 컬처,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