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트홈’, 김갑수의 죽음이 특별한 이유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배우 김갑수는 연극판의 베테랑에서 영화 <태백산맥>을 건너 1990년대부터 브라운관에서 대중들과 만났다. 초기 브라운관에서 그는 주로 인상적인 역사 속 인물들을 연기했다. 주인공 연개소문이 어디 갔나 싶을 정도로 존재감을 남긴 조연 수양제가 그의 사극 속 대표적 캐릭터일 것이다. 그 외에도 그는 KBS <태조 왕건>의 종간, <왕과 비>의 권람 등으로 분해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물론 이 배역의 최후는 대부분 비장하거나 비참한 죽음이었다.

2000년대 이후 김갑수는 시대극이나 현대극에서 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악역은 물론 이 배우 특유의 담백한 그레이 로맨스 연기나 아버지 연기 덕에 그는 대중들에게 한발 더 친숙하게 다가왔다. 물론 사극에서부터 이어진 극 중 사망은 현대극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2001TV소설 <새엄마>를 시작으로 그는 다작을 해왔는데 매년 한 편 이상에서 죽음으로 생을 마감했다. 특히 2010년에는 SBS <제중원>KBS <신데렐라 언니>를 포함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들며 대여섯 편에 이르는 작품에서 연달아 죽음을 맞이했다.

이후 김갑수는 드라마에 등장하면 죽는 캐릭터로 각인되었다. 그렇기에 넷플릭스 <스위트홈>에서 김갑수가 그린홈의 거주자인 시환부환자 안길섭 할아버지로 등장했을 때, 이번에도 그의 운명은 마찬가지였다. 웹툰 <스위트홈>의 원작에서 안길섭 할아버지는 괴물에게 처참히 짓뭉개져 최후를 맞이한다. 하지만 웹툰과 달리 드라마 <스위트홈>에서 배우 김갑수가 연기한 캐릭터의 죽음은 다른 방식으로 각색됐다. 괴물의 등장과 더없는 죽음이 난무할 수밖에 없는 드라마에서 안길섭 할아버지의 죽음은 달랐다. 평화롭고 은은하고 의미 있었다.

사실 <스위트홈>에서 가장 의연하고 평화로운 캐릭터가 김갑수가 맡은 안길섭이다. 수많은 악다구니가 등장하는 드라마에서 한때 악역전문으로 불린 이 배우는 인자한 미소를 짓고 사람들을 위로한다. 더구나 안길섭은 시한부의 생으로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는 캐릭터여서 다른 이들에 비해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기에 괴물화 되는 차현수(송강)의 의지처는 물론 공포에 떠는 다른 인물들에게 정신적 지주 역할까지 했다. 그렇다고 얌전한 현자 같은 할아버지는 아니다. 실제 배우 김갑수가 바이크를 좋아했던 것처럼 안길섭 역시 젊은 시절 바이크를 탔던 열혈 사내다. 그리하여 노인 안길섭은 화염방사기를 들고 괴물들에게 당당하게 돌진하기도 했다.

원작과 같다면 안길섭은 차현수를 돕고 살아라고 말하고서 근육 괴물에게 짓이겨져야 했다. 하지만 원작과 달리 안길섭은 그 현장에서 살아남고 마지막회 중반까지 그린홈에서 생존한다.

그린홈에는 괴물에게 살해당한 인물들을 묻어주는 작은 공동묘지가 있다. <스위트홈> 10회에서 안길섭이 공동묘지에 삽을 들고 땅을 파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곳에서 깨진 콘크리트 천장 위로 하늘이 보인다. 그가 서 있는 묘지는 천국과 지옥 사이에 어떤 연옥처럼 느껴진다. 그는 그러다 죽을 수도 있다며 그의 행동을 말리는 간병인 박유리(고윤정)에게 죽는다고? 뭐 그것도 괜찮네. 흙만 덮으면 되니까.” 라고 말한다. 고어 장르물에서 갑자가 장자의 세계로 바뀌는 것 같은 분위기다.

사실 <스위트홈>의 안길섭이 마지막회에 찾던 것은 지하벙커였다. 그는 땅을 파서 지하벙커를 찾은 후, 이후 말다툼 하는 어린 두 남매를 찾아간다. 그리고 남매에게 산타클로스 선물을 이야기하다가 한두식(김상호)이 아이들에게 남겨둔 선물을 찾아 건네준다. 그것은 한두식이 만든 두 개의 작은 훈장이었다.

다음 날 안길섭은 소리 없이 평온하게 잠자듯이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안길섭을 묘지에 묻으려던 그린홈의 생존자들은 안길섭이 찾아둔 탈출로일지도 모를 비밀 지하벙커의 문을 발견한다.

안길섭이 죽음에 이루는 순간들을 묘사한 장면들은 <스위트홈> 안에서도 좀 이질적이다. 잔인하고 자극적이고 긴장감 넘치지 않는다. 차분하고, 사려 깊으며, 그럼에도 강한 울림이 있다. 배우 김갑수의 딕션 좋은 발음과 따스한 미소가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장면이기도 했다.

탈출로와 훈장. <스위트홈>에서 노인 안길섭은 살아남은 생존자들에게 이 두 개를 남겨주고 떠난다. 어쩌면 이것은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꿈꾸는 가치이기도하다. 지금의 괴로운 세월들을 탈출할 수 있기를, 그리고 좀 더 우리에게 인간의 가치를 존중받는 명예로운 미래가 도래하기를.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넷플릭스, MBC,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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