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세계사’, 정답이 아닌 관점을 담을 수 있어야
‘벌거벗은 세계사’, 어쩌다 강사들의 검증 무대가 됐을까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드디어 큰별쌤최태성이 출연했다. 역사를 전공했고 교사로 근무하면서 EBS 한국사 강사로 인기강사의 반열에 오른 최태성이다. 설민석이 출연했던 이집트편에 제기된 문제들로 비롯되어 시작부터 몇 주 간의 재정비를 거쳐 돌아왔지만, 지난 페스트편역시 박홍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의 지적이 이어졌고 이에 대해 그 편에 출연했던 장항석 교수의 반박 입장문까지 나오게 됐던 tvN <벌거벗은 세계사>. 그래서 최태성에 거는 기대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대만큼 컸던 것이 우려였다. 한국사에 특화되어 있는 최태성이 세계사를 다루는 것이 괜찮을까 싶었던 것. 하지만 최태성이 가져온 주제는 핵폭탄편이었고 그 이야기는 뉴욕의 맨해튼 프로젝트에서부터 시작해 하와이 진주만 폭격, 미드웨이 전투 그리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과 그로 인해 일제의 항복 선언 이후 벌어지게 된 남북 분단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그 연결고리는 충분히 있었다. 이혜성이 언급했던 것처럼, 한국사를 세계사의 흐름 안에서 보니 더 잘 이해될 수 있는 그 지점을 최태성이 잘 설명한 것.

하지만 최태성이 그 일련의 역사적 흐름을 잘 정리했다 여겨지지만 <벌거벗은 세계사>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여전히 날이 서 있다. 무엇보다 핵폭탄이 주제였기 때문에 일제가 마치 피해자처럼 이야기된 오해의 소지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원폭피해자라는 표현이 저들의 전쟁범죄를 정당화해주는 건 아니다. 전범국이라는 건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원폭의 피해자라는 사실은 분명한 것이니. 결국 이 세계사 내용이 강조하려 한 것도 핵폭탄이나 그런 전쟁이 결코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일왕천황이라고 말하는 일부 잘못된 표현들이 주는 불편함은 분명히 존재했다. 게다가 무수한 사망자를 낸 2차 세계대전과 핵폭탄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그 진지함 속에서 일부 게스트들이 엉뚱한 이야기들을 툭툭 던져 넣는 건 맥을 끊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런 비극에 대한 너무 가벼운 태도가 아닌가 하는 면도 분명히 있었다.

중요한 건 이런 문제들보다, 이 프로그램이 서 있는 애매한 위치가 논란을 위한 논란을 야기한다는 점이다. 교양에 대한 예능적인 접근이 나쁜 건 아니다. 그건 그 교양 정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충분히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강사를 심지어 이라 일컬을 정도로 그 한 마디 한 마디를 정답처럼 내놓는 강의 방식이 짧은 시간 안에 정확한 정보를 제대로 담을 수 있는가 하는 점에 있다.

세계사를 하나의 주제로 한 시간 조금 넘는 분량 안에 담겠다는 거대한 포부는 예능 프로그램이 다루는 교양의 수준에서는 과욕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강의형식의 교양 예능들은 그 전적인 책임을 강사들에게 물리는 면이 있다. 하지만 강사가 제대로 정보를 얘기한다고 해도 그 짧은 시간에 모든 다양한 관점들을 정답처럼 제시하긴 어렵다는 점이다. 여기에 편집과정까지 더해지면 이야기는 더 복잡해진다.

<벌거벗은 세계사> 같은 프로그램은 분명 나름의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 교양의 영역이 강의라는 방식으로 그대로 예능에 들어온다면 그 정보를 바라보게 만드는 좀 더 가벼운 형식들이나 안전한 장치 같은 게 필요하다. 물론 지금 같은 방식이 완벽히 검증된 정보들을 적절한 표현까지 검수해 다루는 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한 편을 만드는 데 훨씬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마치 다큐 한 편 만드는데 1년씩 걸리듯이 말이다.

교양 예능의 기능은 정답 제시보다는 관심 제고에 있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특히 세계사 같은 역사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일방적인 관점을 담은 정답 같은 강의보다는 여러 사람의 다양한 시각이 들어간 토론 방식이 더 맞을 수 있다. 또한 예능으로 다루겠다면 좀 더 예능다운 접근방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의 <벌거벗은 세계사>는 겉모습은 그 나라로 비행기를 타고 찾아가는 외형을 띠고 있지만 그 속 내용은 보통의 강의와 다를 바가 없다. 이런 방식으로는 지금처럼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날카로워져 있는 시청자들의 시선 속에서 강사들의 검증 무대가 될 위험성이 있다.

설민석이 최근 ‘벌거벗은세계사’에서 그랜드마스터로 활동하다 역사왜곡을 지적받으며 망신을 당했습니다. 이게 과연 설민석만의 문제인지, 어떻게 하면 재발을 방지할 수 있을지 정덕현 평론가가 짚어봤습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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