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정덕현] 마음 편히 웃으며 볼 수 있는 구석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KBS 주말드라마 <오케이 광자매>는 ‘지지고 볶는’ 스토리로 매회를 빈틈없이 채워 놓았다. 이철수(윤주상)의 첫째 딸 광남(홍은희)은 남편 배변호(최대철)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챙겨주지 않고 제 편할 대로 살아온 벌을 혹독하게 받는 중이다. 배변호가 자주 찾아갔던 밥집 마리아(하재숙)와 술에 취해 하룻밤을 보낸 후, 마리아가 떡하니 낳은 ‘복덩이’로 인해 가정이 파탄 났다.

마리아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전혀 없지만 아이에 대한 감정은 애틋한 배변호는 광남에 대한 애증으로 힘겨워 하고, 광남 역시 배신감과 애증, 의심 사이에서 미치기 일보 직전이다. 배변호와 광남은 그래서 매회 지지고 볶는 모습을 보여준다. 문영남 작가의 전매특허가 바로 이런 설정이지만, 이 드라마는 거의 모든 인물들이 지지고 볶는다.

둘째 광식(전혜빈)은 헛 똑똑이다. 결혼식도 치르기 전에 결혼신고를 먼저 했지만 남편이 바람피우는 현장을 목격하고 결혼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마음을 추스르려 고행에 가까운 여행을 떠난 후 돌아왔지만, 남편과 그 진상 가족들은 기생충처럼 광식에게 달라붙어 놓아주질 않는다. 셋째 광태(고원희)는 철이 없는데다 자력으로 무언가를 이루려는 의지도 찾아보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저 돈 많은 놈 하나 잡아 팔자 고치려는 심산인데, 어찌 된 일인지 걸리는 놈마다 사기꾼들이다. 젊어서부터 사채를 쓸 정도로 무개념.

광남, 광식, 광태 이 세 사람의 면면은 그래서 보는 것만으로도 혈압이 올라간다. 그런데 이들이 아버지 이철수에게 하는 짓은 더더욱 목불인견이다. 엄마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이들은 모두 아버지 이철수를 범인으로 의심하고 몰아세우는 패륜의 극치를 보여준다. 사실은 엄마가 바람을 피우다 사고를 당한 걸 알지 못하는 딸들은 아버지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고 쏘아댄다.

이철수의 형 동생하는 사이인 한돌세(이병준)나 그가 사랑하는 오봉자(이보희)의 이야기도 혈압을 높이기는 마찬가지다. 잘못된 결혼으로 마음속에는 오봉자를 품은 채 살아왔던 한돌세는 이제 나이 들어 오봉자에게 살뜰한 마음을 드러내지만, 이제 오봉자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더니 갑자기 이철수의 아내를 죽게 한 용의자로 조사를 받게 되고, 오봉자의 변호사를 선임하기 위해 한돌세는 미친 듯이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 다닌다.

울고 짜고 지지고 볶고 뒷목 잡게 만드는 상황들이 주말드라마 한 시간 내내 채워지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사실 KBS 주말극이 오래도록 그려왔던 ‘가족드라마’의 틀은 이제 유효기간이 다 된 게 사실이다. 1인 가구들이 급증하고 있는 요즘, 여전한 대가족 틀의 이야기가 공감을 주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남아있는 KBS 주말극의 유일한 효용성은 이제는 사라진 가족에 대한 향수, 추억, 판타지일 게다. 단란한 가족의 모습은 시대가 바뀌어도 1인 가구가 급증해도 여전히 보고픈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오케이 광자매>는 도대체 왜 KBS 주말극 시간대에 들어와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파탄난 가족의 끝장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아니면 본래 가족이 그렇게 꿈꾸는 모습과는 다른 지옥도라는 걸 애써 강변하고 있는 것일까.

KBS 주말극을 보는 시청층은 어느 정도 결정되어 있다. 이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주말이 되면 채널을 고정시켜 놓는 이른바 ‘콘크리트 시청층’이다. 그런데 <오케이 광자매>의 답답하고 짜증 가득한 이런 설정들과 이야기 전개는 콘크리트 시청층들까지 흔들고 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막장이 낫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며 ‘조기종영’을 요구하는 목소리들까지 솔솔 피어나고 있다. 비현실적이라고 해도 그나마 편안하게 KBS 주말극을 보며 한 주를 마무리하던 시청자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편안하게 해주던 주말극이 이제 혈압을 잔뜩 높이고 있으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