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썹 K-할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할머니와의 소통
‘와썹 K-할매’가 선보인 뻔한 장르의 기묘한 변주, 그 결과는?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남지우·이승한·정석희 세 명의 TV평론가가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TV삼분지계]를 통해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요새 <미나리> 때문에 할머니에 대한 정서, 푸근한 할머니의 정서를 그리워하는 거야. 할머니 냄새도 있고. 그런 게 그리운 거야.”, “그렇다면 우리 프로그램도 약간 <미나리>에 편승해 가는...?”, “그러려고 이 얘기를 하는 거야.” 시원시원한 장윤정과 눈치 빠른 장도연의 조합은 거칠 것이 없다. 초장부터 <미나리>의 대대적인 성공에 편승한 예능판 <미나리>’라고 자신들을 정의한 JTBC 새 예능 <와썹 K-할매>, 한국어를 못하는 외국인 손주와 외국어를 못하는 한국인 할머니를 붙여 놓고,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는 소통이 가능한지를 관찰하는 관찰 예능이다. 뻔한 장르에 뜬금없는 변주. 노림수가 안 보이는 건 아니지만,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를 멈춰 세울 만큼은 흥미로웠다.

속는 셈 치고 볼까 접근했던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들의 평은, 의외로 신선했다는 평이다. 정석희 평론가는 최근의 관찰 예능 트렌드와 달리 영상을 관찰하는 패널수도 적고, 여러 개의 에피소드를 교차 편집하며 살을 불리지 않고, 억지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 군더더기 없는 구성이 깔끔했다고 평했다. 이승한 평론가는 예능에 등장하는 노인들이 종종 대상화되느라 발언권을 제약당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언어의 장벽이 의외로 어차피 말이 안 통하니 내 하고 싶은 언행을 다 하는기묘한 자유를 할머니에게 선사한 것이 신선하다고 평했다. 남지우 평론가는 외국인 예능이라는 장르 자체가 외국인내국인의 개념 구분이 강한 한국 사회의 특성에 기반한 것이었는데, 외국인을 타자화하는 경향이 강했던 시절의 한계를 점차 극복하는 흐름의 정점에 <와썹 K-할매>가 있다고 평했다.

◆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던진 직구

단출해서 좋다. 관찰 영상 하나 보겠다고 대여섯 명이 우르르 몰려나오는 여느 프로그램들과는 차별된다. 장윤정, 장도연. 공감대 높고 눈치 빠른 둘만으로도 부족함이 없었으니까.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관찰 프로그램들이 몇 개의 영상을 교차 편집해 보여주는 반면 <와썹 K-할매>는 시작부터 끝까지 에피소드 하나다. 누군가는 단조롭게 느꼈을지 몰라도 나는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듯이, 옛날이야기를 듣듯이 몰입할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영화 <미나리>의 대 성공에 묻어 갈 심산이라며 선수부터 치지 뭔가. 그러나 굳이 <미나리>를 끌어 들이지 않아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어르신들과 소통하는 기획은 대체로 성적이 좋은 편이었다. KBS <12>의 경우 인기가 주춤할 때마다 한번 씩 멤버들이 제각기 지역 어르신들과 하룻밤을 함께 보내는 에피소드를 선보여 난국을 돌파하지 않았나.

 

요즘은 연세 높다고 무턱대고 할머니라고 칭하지는 않는다. 실례가 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첫 화의 김추월(86) 님은 명실공히 할머님이셨다. 이름과 나이 가늠하기 벅차지 싶게 손자가 열 넷, 증손자가 열 넷이란다. 요즘 보기 드문 스케일, 그러니 내공이 남다르실 밖에. 영화 <미나리>에서 손자들이 할머니 순자(윤여정)에게 자신이 아는 할머니와 다르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그런 순자 씨와 달리 김추월 님은 우리네 전형적인 할머니다. 뭐 하나라도 자식이며 손자 입에 넣어주고 싶고 바리바리 싸서 들려 보내고 싶어 하는 품 넉넉한 할머니. 솔직히 예고 영상에서 장도연 씨가 눈물 바람을 하는 통에 혹여 감동을 강요할 생각인가? 선입견을 갖고 보기 시작했다. 결론은 이 프로그램,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말이 안 통하니까 오히려 이해하려 노력하게 되는 역설

예능이 노인들을 전면에 내세울 때, 제일 먼저 걱정하게 되는 것은 대상화다. 도시에 사는 젊은이들이 시골에 사는 독거노인들을 떠올릴 때 뻔히 생각하는 일련의 이미지들, 그러니까 푸근한 인심이나, ‘뭐든 품어주는 따뜻함’, ‘따스한 감동’, ‘오랫동안 고생하면서 얻어온 삶의 지혜같은 스테레오타입을 재현하기 위해 상대를 대상화하고, 그 과정에서 상대의 발언권을 제약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와썹 K-할매>의 기획안도 처음엔 사실 좀 미심쩍었다. 할머니의 따뜻한 품, 뭐든 다 내어주는 희생 같은 것들이 전면으로 부각되는 건 아닐까? 뚜껑을 열어본 <와썹 K-할매>, 좀 다르다. 손주에게 뭐든 다 내어주는 푸근한 인심이 있는 건 맞는데, 그게 좀 일방통행이다. 미국에서 온 손자 케빈은 어떻게든 김추월 할머니와 대화하고 싶고 할머니의 삶을 이해하고 싶어하는데, 케빈은 한국어가 서툴고 김추월 할머니는 영어를 모른다.

가만히 케빈의 말을 듣던 할머니는, 어느 순간 더 긴 대화를 포기하고 일단 먹인다. 케빈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일단 딸기와 포도를 먹이고, 얼추 배가 찰 무렵 비빔국수를 양푼 가득 비벼 와서 숨이 차게 먹이고. 말이 안 통하기에 김추월 할머니는 언어 대신 일단 그냥 행동으로 부딪히고, 오히려 케빈이 그런 할머니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언어로 소통이 안 되는 통에,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자기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한가득 할 수 있는 공간을 얻고, 정서적으로는 현대 한국의 젊은 도시인에 더 가까울 외국인 케빈이 할머니를 이해하고 경청하려는 기묘한 균형이 잡힌 셈이다.

물론 누군가는 결과적으로는 할머니로부터 푸근한 인심이나 도시문물에 서툰 어르신들의 예상치 못한 귀여움같은 스테레오타입을 뽑아낸 것이 아니냐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도착지점이 같다고 해서 그 과정의 차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언어의 제약이 오히려 할머니에게 마음껏 행동할 공간을 열어준 이 기묘한 시도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한번 지켜볼 가치는 있을 듯 하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 ‘비외국인’ 관객의 자격

한국에 사는 외국인 친구들을 보다 보면, ‘외국인이라는 단어를 그 어떤 말보다 먼저 배우는 것 같다. 한국에서 태어난 아기들이 엄마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깨우치는 이유와도 같은 셈이다.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귀에 흘러오는 말. 이는 동북아시아 특유의 민족적 동질함이 만들어내는 현상으로, 우리 한국인들은 스스럼없이 외국인이라는 단어를 뱉어내고 그들은 이 새로운 신분을 받아들이게 된다.

다인종, 다문화가 사회의 주요한 구성요소로 자리 잡은 북미와 서유럽에서는, ‘외국인은 어느덧 내뱉기가 조심스러운 단어가 됐다. 인종과 외양으로는 사실상 타인의 국적성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고, 쉬이 상대에 외국인이냐물었다가는 결례를 넘어 차별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국인 예능이라는 장르가 탄생하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나라는 개중 극히 소수이고, 그중에서도 단단한 소프트파워를 지닌 한국이 잘 만들 수 있고, 또 잘 만들어야만 하는 콘텐츠가 바로 이것이다.

MBC every1<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대한외국인>, KBS<이웃집 찰스>같은 프로들이 나름대로 롱런하고 있는 상황에서, JTBC의 새 예능 <와썹 K-할매>가 외국인 예능에 대한 재검토에 불을 지폈다. 첫 화를 총평하자면, 장르 특유의 타자화나 대상화를 싹 다 걷어내고 이 분야 세련됨의 정점에 서게 될 프로라고 예측하고 싶다. 물론 푸른 눈의 외국인~’과 같은 클리셰 자막까지를 모두 걷어내진 못했지만(모든 백인의 눈동자가 파랗고 머리가 노란 것은 아니다), 할머니 김추월과 손자 케빈의 우정만은 그 어떤 강요도 없이 담백하게 전달됐다. 두 사람의 밝고 개방적인 퍼스널리티 자체가 큰 연출적인 노력 없이도 스토리텔링을 가능케 했다는 것 역시 분명하게 감지되는바. 매 회차 비연예인 캐스팅의 리스크와 그에 따른 재미 유발의 차이를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앞으로 있을 테지만 말이다.

JTBC 창사 초반에 방영되었던 예능 <비정상회담>과 스핀오프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외국인 예능이라는 장르에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를 통해 배출된 외국인 스타들이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대중의 호감을 사고 있기도 하다. 그런 JTBC가 새로 내놓은 외국인 예능이니만큼 <와썹 K-할매>는 좋은 프로그램이 될 수밖에 없을 터. 단 하나 마음이 쓰이는 점이 있다면, 이 방송국을 통해 배출된 또 다른 스타 샘 오취리의 활동이 중단된 상태라는 것이다. 가나인인 그는 한국 학생들의 흑인 코스프레, ‘블랙 페이스(black face)’를 비판했다가 대중의 역풍을 맞고 고정 프로에서 하차했다. 그의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채널에는 깜둥이라는 댓글이 아직도 넘쳐난다. 외국인 예능의 수준은 점점 더 좋아지는 상황에서, 과연 비외국인인 우리가 그것을 웃으며 즐길 자격이 있는지를 묻게 되는 이유다.

남지우 칼럼니스트 Instagram @jmbar_jwjw

[사진·영상=JTBC. 그래픽=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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