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에 대한 강박을 넘어선 웹예능의 진화
예능이 ‘방송’을 넘어선 플랫폼 전쟁 최전선에 배치됐다는 건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예능의 전선이 옮겨갔다. 2000년대 중반 MBC <무한도전>으로 인해 예능이 평론의 영역으로 들어온 이래 예능은 가성비와 대중성, 파급력 면에서 가장 친밀하고 강력한 TV 콘텐츠로 등극했다. 이후, 나영석 사단의 시즌제 케이블 예능의 등장, 새바람을 일으킨 JTBC와 트롯 열풍을 이끈 TV조선의 종편 예능의 전성기, 오늘날 유튜브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예능의 영역은 드넓게 확대됐고, 우리네 일상에 무척이나 친숙하게 뿌리내렸다.

그리고 이런 변화의 길목에서 늘 반복했던 이야기가 있다. 보다 예전에는 지상파 예능의 암울함이었고, 최근에는 이탈하는 젊은 시청자를 잡기 위한 유튜브 진출이나 숏폼 콘텐츠 실험 등 방송사의 노력과 변화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가 길어지면서 이런 논의 또한 올드해졌다.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온 예능은 이제 ‘방송’을 넘어선 플랫폼 전쟁의 최전선에 배치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인터넷 기반의 동영상 서비스인 OTT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는 중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넷플릭스가 상륙한 2016년과 지난해 시장 규모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성장했다. 젊은 세대를 필두로 많은 사람들이 TV 앞을 떠난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이들이 모두 유튜브로 넘어가 기성콘텐츠인 TV 프로그램과 영화를 아예 안 보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콘텐츠 유통의 중심이 방송에서 OTT로 넘어가면서 그간 넷플릭스의 기세에 짓눌려 있던 토종 OTT들 또한 국내 드라마와 예능을 중심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기록 중이며, 그런 만큼 새로운 주자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방송사들이 연합한 ‘웨이브’와 ‘티빙’ 이외에도 아이돌 팬덤에 특화된 KT의 OTT ‘시즌’과 네이버 ‘나우’, 독자적인 플랫폼을 건설 중인 카카오TV, 새롭게 개국하는 싸이더스HQ를 중심으로 한 ‘IHQ’도 있다. 영화 콘텐츠에 특화된 ‘왓챠’ 또한 지난 5일 첫 제작투자한 예능 <노는 브로>를 내놓으며, 웹예능 <가짜사나이2>, <좋좋소>에 이어 본격적으로 예능 콘텐츠 확보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이 수많은 플랫폼이 내세우는 공통의 목표는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다. 드라마는 비용이 많이 들고 경쟁이 치열한 편이고, 영화는 거대 자본과 콘텐츠가 밀고 들어오는 글로벌 OTT에 열세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국내 OTT 채널들이 찾은 유일한 무기가 바로 예능 콘텐츠다. 기성 방송 인력들이 편성, 재원확보, 심의, 소재 등등 모든 면에서 방송보다 유연한 땅으로 들어오면서 예능의 최첨단이자, 가장 흥미로운 실험과 모색이 펼쳐지는 장이 열린 셈이다.

그러면서 벌어진 재밌는 현상은 스핀오프 전략을 적극 활용하면서 지금까지의 이원화된 고정관념을 벗어나 방송과 인터넷 콘텐츠가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방송과 웹예능 사이에 자신들이 새웠던 경계를 스스로 허물고 기존 브랜드의 시너지를 OTT로 확장해 상호보완의 시너지를 노린다.

나영석 사단의 티빙 오리지널 콘텐츠 <스프링캠프>는 유튜브채널 ‘십오야’에서 전개하는 것과 또 다른 <신서유기>의 스핀오프다. OTT 콘텐츠다보니 방송이라서 하기 힘든 상호명을 마음껏 쓴다(같은 tvN의 <대탈출> 제작진이 만든 티빙 오리지널 콘텐츠 <여고추리반>에서는 욕설이 나오기도 한다). 기존 방송의 치열함에 비하면 뭔가 허술하긴 하지만 그만큼 마음가짐도 더 편해보여서 친숙함은 배가된다. 그렇게 <신서유기>팬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전하는 와중에 한동안 떠나 있던 안재현의 복귀를 알리는 기회로 활용해 다음 시즌을 더욱 기대케 만들었다. 즉, <신서유기> 팬이라면 티빙에 가입해 <스프링캠프>를 즐길 것이고, 안재현의 합류와 변함없는 캐릭터쇼의 앙상블에 충성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처럼 <스프링캠프>가 보여주는 기존 방송의 브랜드를 그대로 가져오는 OTT의 전략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21일 티빙에서 공개된 <놀라운 토요일>의 스핀오프 콘텐츠, <아이돌 받아쓰기 대회>도 비슷하다. 아이돌이 등장하고 받아쓰기로 소재를 바꾼 것만 제외하면 동일한 설정의 콘텐츠다. 왓챠가 투자한 예능 <노는 브로>도 <노는 언니>의 남성판 스핀오프다.

즉, 얼마 전까지 유튜브의 숏폼 콘텐츠, 모바일 친화적 콘텐츠가 TV 콘텐츠의 미래이자 현재 위기의 원인으로 보는 시각과 달리 방송 콘텐츠가 여전히 매력적이라는 가설의 방증인 동시에 새로운 전개다. 티빙의 또다른 오리지널 콘텐츠 예능 <여고추리반> 또한 <대탈출>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사계> 역시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시리즈에서 연속성을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숏폼에 대한 강박을 넘어선 다음 버전의 웹예능이 찾아오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연말 지상파 연예대상 시상식이 점점 더 정말 멋쩍은 자리가 될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 시대의 가장 흥미로운 예능을 논할 때 더 이상 방송 프로그램이 아닌 OTT의 콘텐츠의 이름이 오르내리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티빙, 왓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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