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가 생겼다’, 드라마 공모전에서 길어 올린 따뜻하고 사려 깊은 미래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남지우·이승한·정석희 세 명의 TV평론가가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TV삼분지계]를 통해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비록 필력이 검증된 기성작가들의 작품만큼 많은 관심과 시청률을 거두지는 못해도, 드라마 극본 공모전 수상자들의 작품은 언제나 방송가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한국 드라마 산업의 앞날을 점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KBS <동백꽃 필 무렵>의 임상춘 작가, MBC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의 김반디 작가, SBS <스토브리그>의 이신화 작가가 모두 지난 10여년 사이 드라마 극본 공모전으로 발굴된 신인들이다. 2020 MBC 드라마극본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인 MBC <목표가 생겼다>에 [TV삼분지계]가 주목한 것 또한 같은 이유다. 미래를, 보다 일찍 훔쳐보고 싶었으니까.

정석희 평론가와 남지우 평론가는 각각 영화 <벌새>(2018), <와일드 라이프>(2018)와 <우리집>(2019)를 언급하며, 여성 청소년이 체감하는 불안과 고독, 좌충우돌을 성인의 시선이 아니라 여성 청소년의 관점으로 오롯이 묘사한 <목표가 생겼다>의 성취를 높게 평가했다. “상자 안의 초콜릿 네 개 중 두 개를 이미 꺼내 먹은 기분이라 두렵다”(정석희)거나, “아이 혹은 청소년의 입장을 왜곡없이 전달하는 작품을 만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이걸 또 해내는 어른이 하나 더 나타났다”(남지우)는 평은 극찬에 가깝다.

이승한 평론가는 이 따뜻하고 감각적인 작품이 김환희 배우가 성인 연기자로서 떼는 첫 걸음이자, 심소연 PD의 첫 단독 연출작이고, 류솔아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점을 짚었다. 처음, 처음, 처음이 중첩된 작품이 이렇게 모두의 호평을 사는 일도 흔치 않다. 총 4부작인 <목표가 생겼다>의 나머지 절반은 26일(수), 27일(목)에 방영된다.

◆ 아이 탓이 아니라고 탄원하고 싶다

여자 아이 시점의 드라마, 참 오랜만이다. 아니 본 적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열아홉. 아이보다는 성인에 더 가까운 나이이긴 하다. 어쨌거나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설정에서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다루는 경우는 흔해도 <목표가 생겼다>처럼 청소년기가 오롯이 배경인 드라마는 드물다.

보기에 앞서 막연히 생각했다. 여자 아이가 주인공이니 영화 <벌새> 같은 얘기일까? 비슷한 점은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주인공의 마음이다. <벌새>의 은희(박지후)도 MBC 4부작 드라마 <목표가 생겼다>의 소현(김환희)도 속내를 털어 놓을 곳 없는 처지가 아닌가. 그래서 둘 다 집이 있지만 자꾸 밖으로 떠돈다. 14세 ‘은희’는 영지(김새벽) 선생님을 만났지만 19세 ‘소현’에게는 그조차 없다. 1994년과 2021년, 시대의 간극인가.

 

무겁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가서 그렇지 사실 소현은 소매치기 범죄자다. 지하철에서 주로 휴대폰을 노린다. 판매책에 넘길 때보니 휴대폰이 가방에서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게다가 일단 목표로 삼으면 거침이 없다. 자신의 아빠라고 믿는 재영(류수영)의 열쇠를 훔쳐 집안을 뒤지기도 하고 재영과 교제 중인 복희(이진희)의 신분을 알고자 지갑에 손을 대기도 한다.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윤호(김도훈)의 마음을 쥐락펴락하기도 한다.

필경 피해자가 부지기수일 터, 이 아이를 어쩌면 좋을꼬. 그런데 기묘하다. 소현의 편을 들어주고 싶어진다. 탄원서를 써달라면 기꺼이 동참할 마음이다. 아이 탓이 아니라고, 세상 탓이라고. 그래서 3회가 궁금하지만 한편 두렵기도 하다. 소현의 앞날이 걱정되고 또 하나는 상자 안의 초콜릿 네 개 중 두 개를 이미 꺼내 먹은 기분이라서.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텔레비전은 아이가 될 수 있을까

MBC 극본 공모로 데뷔했다는 신예 작가 류솔아와, 그 극본을 받아든 배우 김환희는 서로 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쩌면 다소 무례하게까지 들리는 이상한 감상이지만, 두 사람은 정말이지 닮았을 것 같다고 나의 확증 편향이 소리치는 중이다. 나는 <와일드 라이프>(2018)와 <우리집>(2019)이라는 영화를 추론의 증거물로 내세우고 싶다. 두 영화는 사이가 좋지 못한 엄마와 아빠의 관계를 바라보며 가족 해체의 불안을 느끼는 아이에 관한 작품이다. 두 영화를 보면 감독이 아이들과 청소년의 시선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연출술에 아주 능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게 된다. 도대체 이런 것이 가능한 어른들은 누구란 말인가? 이들은 바로 배우 겸 감독 폴 다노와 감독 윤가은이다. 폴 다노는 자신과 닮은 배우 에드 옥슨볼드를, 윤가은 역시 자신과 닮은 배우 김나연과 김시아를 캐스팅해 싸우는 부모를 바라보는 아이의 불안을 연기하게 했다. <목표가 생겼다>의 소현 역에 김환희가 캐스팅된 이유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미) 어른이 된 예술가가 자신의 세계에서 아이적의 태도를 유지하고 존중하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인간에겐 과거의 기억, 특히나 유년의 기억을 미화하는 습관이 있어서 그렇다. 미화하는 행위는 곧 왜곡이다. 그렇기에 어른인 창작진이 아이 혹은 청소년의 입장을 왜곡없이 전달하는 작품을 만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목표가 생겼다>를 보니 이걸 또 해내는 어른이 하나 더 나타났음을 알게 되었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의 1인칭 나레이션이라는 연출적 치트키를 자주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이가 좋지 못한 부모에 대한 기억과 엄마라는 존재에 느끼는 양가 감정, 학교 밖 청소년의 삶 등을 열 아홉의 시선으로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이렇게 미성년의 경험과 시선을 지극하게 존중하는 작품을 보고 있자니, 우리의 텔레비전은 지금껏 얼마나 어른들만을 위로하던 매체인가를 돌아보게 된다.

남지우 칼럼니스트 Instagram @jmbar_jwjw

◆ 끝내 모질지 못하고 따뜻해 더 반가운 출사표

소현(김환희)은 갑자기 이타적으로 변한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은 왜 돈 쓰고 시간 쓰고 위험을 감수해가며 윤호(김도훈)를 구한 걸까? 정말 좋아하는 상대도 아니고, 그저 (자신을 버리고 간 아버지라고 추측 중인) 재영(류수영)과 (그런 재영과 사귀고 있는) 복희(이진희)의 뒤를 캐기 위해 얼결에 시작한 가짜 연애에 불과한데, 왜?

소현만 모르고 있는 일이지만, 그건 당연한 일이다. 돌봄의 부재로 생긴 냉소는, 돌봄의 관계 안으로 포섭되는 순간 누그러지는 게 당연하다. 소현에겐 어려서 아버지가 부재했고, 유일한 보호자인 엄마 유미(이영진)는 알코올의존증 환자였다. 집에는 보호자 같은 보호자가 없고, 학교에서는 학원폭력을 당하는 일상을 보내는 소현에게, 선의로 서로를 돌보는 관계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아쉬울 때 기대는 장물아비 희진 언니(김이경)가 있긴 해도, 그 쪽은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라 훔친 휴대폰과 돈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그렇게 냉소할 일만 가득하던 소현은, 재영의 가게에서 일하며 윤호와 사귀는 관계가 되면서 조금씩 이타적인 면모를 발견한다. 비록 소현에겐 이 모든 게 다른 의도를 가지고 들어간 거짓 관계지만, 곁을 내주고 마음을 살피는 재영과 윤호는 진심이니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소현은 서로 돌보고 챙겨주는 관계 안에 포섭된 것이다. 거친 대사와 범죄, 폭력 묘사가 동반된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목표가 생겼다>는 끝내 모질지 못하고 따뜻하다.

MBC <목표가 생겼다>는 여러모로 반가운 작품이다. 학원멜로의 판타지를 걷어낸 청소년 이슈를 청소년 화자의 관점으로 다룬 작품도 매우 오랜만이거니와, 어려운 환경에서도 드라마 극본 공모전을 통해 끊임없이 신인 드라마작가를 발굴해 온 MBC의 노력이 빛을 발한 작품이기도 하다. 데뷔작다운 과감한 접근을 보여준 류솔아 작가의 필력은 흡인력 있고, 이 작품이 첫 단독 연출작인 심소연 PD의 연출은 감각적이며, 성인 연기자로서 첫 발을 뗀 김환희의 연기도 믿음직하다. 젊은 여성 예술가 세 명의 출사표가 이만큼 따뜻하고 사려 깊고 감각적이라니, 조짐이 좋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사진·영상=MBC. 그래픽=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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