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구역의 미친X’, 로코가 아픈 현대인들을 만났을 때
[엔터미디어=정덕현] 일단 웃기다. 하지만 계속 들여다보면 어딘가 슬퍼진다. 카카오TV 드라마 <이 구역의 미친X>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로 시작한다. 어딘가 상극일 수밖에 없는 남녀가 우연히 마주치고 싸우고 그러면서 조금씩 관계를 맺어가는 그 멜로의 공식으로 시작하니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부딪치는 그 과정은 ‘화장실 유머’까지 동원된 코미디다. 비 오는 날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분노를 참지 못하는 노휘오(정우)와, 뭐가 그리 두려운 지 피해망상에 가까운 모습으로 노휘오를 스토커 취급하는 이민경(오연서)은 사사건건 부딪친다. 자신을 좇는 스토커인 줄 착각해 엘리베이터에 타려는 노휘오를 우산으로 때리고 밀어내는 광경이나, 화장실이 급해 가까스로 집까지 왔지만 결국 바지에 싸게 되는 노휘오의 모습은 이 드라마가 코미디라는 걸 분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이 같은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고 있고, 노휘오는 분노조절장애를 이민경은 피해망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이 웃기는 코미디 이면에 놓인 이들의 아픔이나 상처 같은 것들을 공감하게 만든다. 알고 보면 노휘오는 강력계 형사지만, 열정만으로 정의를 구현할 수 없는 현실들을 맞닥뜨린다. 마약범을 검거하러 룸살롱을 갔지만, 저들에 의해 형사가 룸살롱을 출입했다는 누명이 씌워지고 결국 파면까지 당하게 된 것. 이러니 터져 나오는 분노가 조절될 수가 없다.
이민경은 깊게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유부남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그 아내가 찾아와 머리에 음료수를 부어버린 것. 이민경은 남자친구와 결별을 선언했지만 그렇게 관계가 쉽게 끝나지는 못했다. 그가 찍어놓은 동영상으로 이민경을 협박했던 것이다. 이런 사건을 겪었으니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갖게 되고 그 증상으로서 피해망상을 겪는 게 당연할 수밖에 없다.
<이 구역의 미친 X>는 분노조절장애를 갖게 된 노휘오와 피해망상으로 분노를 유발하는 이민경의 티격태격 코미디로 시작하지만, 차츰 서로가 가진 상처를 알게 되면서 이를 공감하게 되는 상황을 그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과정은 당연히 두 사람 사이에 만들어지는 멜로가 되지 않을까.
단순해 보이지만 이런 설정은 멜로를 남녀 간의 사랑의 차원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서 서로를 이해해가는 휴머니즘의 차원으로 보게 만든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 깔아 놓은 건 ‘아픈 현대인’들의 자화상이다. 더 많은 트라우마와 상처들 그리고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아픈 모습이 등장하고, 그걸 이해해가는 과정의 휴먼 드라마가 기대되는 건 이런 밑그림 덕분이다. 웃기는 코미디에서부터 먹먹해지는 공감대까지 이어주는 정우와 오연서의 연기 케미 또한 이런 기대감을 높이는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지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카카오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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