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강 에이스 잃은 ‘런닝맨’, 실험대에 놓이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SBS <런닝맨>은 이광수의 예능이었다. 물론 유재석의 지휘 아래 김종국, 송지효, 지석진, 하하 등의 원년멤버들이 자기 자리에서 제몫을 꾸준히 해왔고, 새로운 에너지 양세찬과 전소미가 가세해 신구조화를 이룬 보기 드문 리얼 버라이어티의 성공 사례지만 이 게임쇼의 시작과 끝에는 언제나 이광수가 있었다. 그는 오랜 기간 예능을 했지만 예능인이라고 분류하기는 조금 애매하다. <나 혼자 산다>의 기안84와 마찬가지로 게스트 활동조차 하지 않고(유재석의 부름에 따라 <놀면 뭐하니?>에 지석진과 함께 등장한 적은 있다) 오로지 <런닝맨> 단 한편에만 출연했기 때문이다. 허나 그 단 한 편에서 무려 11년이나 지속한 활약으로 인해 아시아의 프린스로 거듭났다.

박명수가 캐릭터쇼의 가능성을 열어준 리얼 버라이어티의 개국공신이라면 이광수는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부문의 능력치를 최고 수준으로 갖춘 육각형 예능 플레이어다. 그만큼 파괴적이고 매력도가 높았다. 이광수는 스스로 웃음을 이끌어내는 최전방 공격수이면서 웃음에 이용되는 메인 샌드백이기도 했고, 게임쇼의 스토리를 풀어가는 실타래이자, 분위기를 책임지는 리액션 장인이기도 했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역사에 개성 강한 캐릭터들은 늘 있어왔지만 이런 그의 캐릭터에 견줄만한 올라운드 플레이어는 단 한 명도 없다. 그것도 무려 11년간 지치지 않고 한 프로그램 내에서 똑같은 에너지레벨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다시 말해, 이광수는 지금까지 그 어떤 예능인도 보여주지 못한 지속가능한 내구성과 에너지를 보여준 유일한 캐릭터다. 공개 연애 이후 그의 초기 대표 콘셉트였던 ‘금사빠’ 캐릭터를 잃었지만, 여전히 다른 출연진의 뒤통수를 가장 잘 치면서도 가장 많이 당하는 샌드백 캐릭터로 최고의 활약을 했다. 그의 말대로 떡만 썰어도 웃음을 터트릴 수 있는, 현존하는 최고의 예능 하드펀처다.

그런 그가 지난 13일 ‘굿바이, 나의 특별한 형제’ 레이스를 끝으로 2010년 7월 원년 멤버로 11년 동안 함께한 <런닝맨>을 떠났다. 마지막까지 유재석, 김종국 등에게 닦달을 당하고, 하차하는 상황까지 캐릭터 플레이로 승화했지만, 인간적인 눈물과 아쉬움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이광수를 배웅하는 이날 유독 ‘우린 가족이니까’ ‘또 하나의 가족’ 등 ‘가족’이란 단어가 많이 언급됐다. 그래서인지 최근 흥행한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연상하게 한다. 무려 20년째, 가족주의를 외치며 오랜 기간 연기자와 제작진이 실제 영화 스토리처럼 함께 뭉치는 이 블록버스터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런닝맨>의 출연자들이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가족’은 그간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믿으며 이룩해온 지난 11년간의 진정성이 담겨 있는 표현이다.

이 ‘가족’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런닝맨>의 캐릭터쇼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이자 10년 이상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이 바로 높은 수준의 사적 친밀도를 자랑하는 캐릭터쇼라는 데 있다. 메인MC인 유재석의 리드 하에 멤버들이 모두 열심히 할뿐만 아니라, 빈자리를 찾아가 서로 서로 부족한 부분을 메운다. 일상과 사적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웃음이나 이야기의 소재로 적절히 활용하고, 차를 산 내역, 멤버 아버지의 성함, 자전거의 도색, 현재 촬영하는 드라마, 갖고 싶은 물건 등에 관해 속속들이 알고 있다. 제작진은 이런 성향을 십분 활용해 이광수와의 작별에 멤버들과 그간 얼마나 인간적 관계를 두텁게 맺어왔는지 보여줬다.

일반적인 캐릭터쇼 기반 예능은 한 사이클이 돌고나면 패턴이 고착화되고 스토리텔링이 뻔해진다.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장르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반복되는 어려움을 겪으며 사장됐다. 그러나 게임 버라이어티로 시작한 프로그램이라 확장성의 한계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런닝맨>은 출연자들이 유기적인 조합과 파이팅, 그리고 사적 친밀도로 극복해왔다.

부상으로 인해 이광수가 2주간 빠진 적이 있었다. 그때 한때 필촉크로스의 이지브라더스로 활약한 지석진이 간만에 튀어나와 맹활약을 펼치며 빈자리를 메웠다. 허나 하차는 다른 상황이다. 유재석이 푸념했듯 ‘누구 말을 끊고, 누구 뒤에서 목마를 타야 할지’ 시청자 입장에서도 염려가 된다. 지금까지 이런 캐릭터도 없었지만,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에이스가 빠지고도 지속한 경우도 없었기 때문에 이 또한 새로운 국면일 뿐 아니라 실험이다.

이광수가 없는 첫 <런닝맨>은 모처럼의 초호화 스케일의 세트장에 동호회 콘셉트의 색다른 심리전 미션으로 심기일전했다. 이광수는 설정, 이름, 개그의 소재, 전화상의 목소리로 등장해 여전히 웃음을 주며 세계관의 한축으로 남아 있음을 보여줬다. 함께 모여 으쌰으쌰 하고 양세찬이 그의 몫을 충실히 수행했지만 순간순간 등장하는 그의 이름에서 느껴지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다. “너 때문에 안 심심했어.” 유재석이 남긴 마지막 말은 시청자의 마음이기도 하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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