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판사’ 문유석 작가가 그리는 ‘다크히어로 판사’의 명과 암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남지우·이승한·정석희 세 명의 TV평론가가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TV삼분지계]를 통해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스스로 스파이였던 존 르 카레가 일평생 스파이 문학에 매진했고, 법의관이었던 패트리샤 콘웰이 추리소설 작가가 된 것처럼, 판사였던 문유석 작가 또한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분야에 매진한다. 현직 판사 시절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소설 <미스 함무라비>와 동명의 JTBC 드라마 각본을 집필한 문유석 작가가 법복을 벗고 전업 작가로 쓴 첫 작품은, 역시나 또 사법부의 속내를 정면으로 들여다보는 법정극 tvN <악마판사>다. 앞으로도 그가 계속 사법부를 배경으로 한 작품만 쓰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취재만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사법부의 내밀한 속내를 다른 작가들에 비해 월등히 더 잘 알 것이라는 점은 문유석 작가의 ‘사법부’ 드라마를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가상의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전국민이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재판을 시청하며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 재판에 참여해 유무죄를 결정지을 수 있다는 설정을 들고 나온 <악마판사>의 첫 화,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는 어떻게 보았을까? 정석희 평론가는 “처음 청문회가 생중계됐을 때 우리가 얼마나 빠져들었었나.”라는 질문으로 설정의 파격과 영리함을 칭찬하며, 앞으로도 김빠지는 일 없이 속 시원한 전개가 계속되기를 당부했다.

남지우 평론가는 김민정과 지성이 “각각 ‘자본’과 ‘법’이라는 두 세력을 상징하는 역할로 분”해 “서로를 견제함과 동시에 필요할 땐 기묘한 협동을 일삼는” 묘한 광경을 흥미롭게 보며, <악마판사>가 한국의 법이 나아갈 길에 대한 가장 미래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비쳤다.

한편 이승한 평론가는 <악마판사> 속 디스토피아가 오늘날의 대한민국과 그리 멀지 않음을 짚으며, “변변히 견제할 만한 장치도 없는 상태에서 대중의 인기를 등에 업고 뜻한 바대로 결과를 이끌어내는 권력자가, 폭주하지 않고 언제나 공평무사하고 정의로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화두가 <악마판사>가 우리에게 건넬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 국민시범재판이 실제로 열린다면, 누구를 법정에 세울까?

독성폐수 유출사건 피의자에게 금고 235년을 선고한 강요한(지성)이 피의자에게 다가가 속삭인다. “장수하십시오. 부디.” 통쾌하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 아닌 업무상 과실 치사로 몰고 가려는 수작인가? 결국 끼리끼리 담합했구먼!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찰나 통쾌한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눈물까지 보인 강요한이 피해자 가족을 보듬어 안으며 하품을 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배석판사 김가온(진영)과 시청자는 순간 이심전심,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강요한, 대체 속내가 뭔가? 아마 마지막 순간까지 시청자를 들었다 놨다 하지 싶다.

사상 첫 '국민시범재판'에서 강요한 판사는 선언한다. “재판의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의 의견을 경청할 것입니다. 이 법정의 주인은 바로 주권자인 여러분입니다.” 누구든 참여 가능한 라이브 법정 쇼라니! 요즘 말로 신박하달 밖에. 악을 악으로 응징한다? tvN <빈센조>나 SBS <모범택시>처럼 짜릿함을 주지 않을까? 설정만으로도 기대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애초 가상을 앞세운 터라 온갖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영리하다. 스마트 폰으로 투표에 참여하고 마치 총선이나 대선마냥 중간 중간 투표 결과 수치가 생중계된다. 처음 청문회가 생중계됐을 때 우리가 얼마나 빠져들었었나. ‘국민시범재판’이 실제로 열린다면? 누구를 법정에 세울까?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지성, 김민정, 장영남, 안내상, 내로라할 연기자들 사이에 아직 연기력을 채 검증받지 못한 김가온 판사 역의 진영이 있다. 지성과 팽팽한 줄다리기를 할 인물이라서 내심 걱정이었는데 한 마디로 기우였다. 형사 역의 박규영도 믿음직스럽고. 부디 김빠지는 일 없는, 속 시원한 전개가 계속되기를.

정석희 TV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미래에서 온 천사, 악마판사

7월이다. 지난 상반기를 돌아보니, 괜찮은 만듦새와 그에 걸맞은 시청률을 동시에 누린 드라마로는 tvN <빈센조>가 유일했던 것 같다. KBS <오월의 청춘>과 JTBC <괴물>이 좋았지만 흥행이 따라오지 않아 버거웠고, tvN <나빌레라>와 MBC <목표가 생겼다>가 지녔던 장점들은 널리 언급되지 못했다. 한국 텔레비전에 레즈비언 주역들을 상륙시킨 tvN <마인>이 입지전적의 드라마로 기록될 것임은 분명하지만, 개인적으론 이야기에서 큰 재미를 찾을 수 없었다. 기대작으로 꼽혔던 JTBC <로스쿨>이 좋지 못했고, <시지프스>는 거의 모든 것을 배반하는 수준이었다. KBS <달이 뜨는 강>과 SBS <날아라 개천용>, 그리고 <조선구마사>에 불어 닥친 초유의 사태까지 있었으니, 2021년 상반기를 총평하자면 아쉬움을 넘어 모종의 위기감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지난날의 위축과 의기소침을 뒤로하고, tvN <악마판사>가 하반기의 문을 열어젖혔다. 어젯밤 첫 방송에 대한 소감은, 대박 스멜.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두 실습생 홍도(배현성)와 윤복(조이현)이 한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의사로 “지성이랑 김민정”을 꼽았듯,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 MBC <뉴하트>를 사랑했고 당시 모든 10대들의 장래희망은 흉부외과에 있었다. 두 배우는 <악마판사>에서 다시 만나 각각 ‘자본’과 ‘법’이라는 두 세력을 상징하는 역할로 분한다. 서로를 견제함과 동시에 필요할 땐 기묘한 협동을 일삼는 두 힘, 그들이 첨예하게 추동하는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의 모습이 앞으로 어떻게 그려질지가 궁금하다. 특히 MBC <킬미, 힐미>에 이어 다소 만화적인 캐릭터를 다시 한번 맡게 된 지성의 연기력이 기대되는 한편, 최정규 PD의 연출력이 대단히 빛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화에서 얻은 값진 수확이다.

1화에서 <악마판사>가 보여준 최고의 장점으로 ‘시의적절함’을 꼽고 싶다.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들이 2년 넘게 서로 싸워대는데, 이 싸움의 진짜 이유나 의의를 찾은 국민은 아무도 없었지만, 각각은 기어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나라를 구하겠다는 와중에, 이 모든 사태를 촉발한 ‘검찰 개혁’이라는 구호는 산산이 조각나 구천을 떠돌고 있지 않던가. 우리는 이와 같은 지난함 속에서 한국의 법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그것을 손에 쥔 권력을 형성하는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다행히도 tvN <비밀의숲 2>와 JTBC <언더커버>가 각각 검경수사권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라는 최신 법리 이슈들을 다루며 우리에게 잠시 생각할 짬을 내어준 바 있는데, <악마판사>는 그 문제들을 모두 담아낸 종합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와 사법에 대한 가장 미래적인 이야기가 천사처럼 찾아온 것이다.

남지우 칼럼니스트 Instagram @jmbar_jwjw

◆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정말 이것인가?

<악마판사>의 배경은 ‘역병으로 사회적 대혼란을 겪고 난 직후 빈부격차가 극심해진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사법정의를, 내일의 희망을, 정치인들의 약속을 믿지 않는다. 그 틈을 타고 막말로 선동을 하던 유튜버가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고, 광대가 대통령이 된 시대인 만큼 재판도 ‘온 국민이 배심원’이라는 명분으로 전국에 생중계된다. 시민들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투표하듯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 유무죄 투표에 참여하고, 재판의 연극적인 요소가 한껏 강조된 첫 재판은 관중의 열광 속에 성황리에 마친다.

당연히 가상의 디스토피아다. 그럼에도 <악마판사> 속 대한민국은 오늘의 우리와 많이 닮았다. 안 그래도 극심했던 빈부격차는 코로나19로 인해 더 심해지는 추세이고, 정치에 희망을 걸었던 사람들은 서서히 지쳐간다. 사법정의에 대한 불신이 날로 더 심해지는 가운데 네티즌들은 심증만으로 판결을 내려버리고, 스스로 ‘네티즌 수사대’를 만들어 용의자들의 개인 신상 정보를 턴다. 온갖 사회적 갈등과 범죄에 대한 답으로 엄벌주의를 제시하는 이들이 득세하고, 인터넷에서 선동을 일삼는 이들이 대안언론으로 추앙받는다. 판사 출신의 문유석 작가가 그린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은, 우리가 조금만 발을 헛디디면 굴러 떨어질 수 있는 그리 멀지 않은 구렁텅이다.

정계와 긴밀하게 유착한 재벌 기업의 폐수 방출 사건을 다룬 첫 국민시범재판은 얼핏 썩 성공적인 듯 보인다. 그 모든 무대를 마련한 판사 강요한(지성)이 설계한 대로 필요한 증인과 증거들이 속속 등장했고, 가중주의 대신 병과주의를 도입했다는 설정 하에 금고 235년을 선고하는 순간의 통쾌함은 달콤하다. 하지만 한 발 떨어져서 보면 이 통쾌함은 찝찝함으로 가득하다.

재판부가 선출직이 아닌 이유는 대중의 여론으로부터 자유롭게, 오로지 법리적 판단에만 의거해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요한은 자신을 국민이 모아준 권력을 대리집행하는 ‘권력자’로 정의하며, 수상할 정도로 사제복을 닮은 법복을 입고는 재판장에 나와 적극적으로 재판에 개입해 의도한 방향의 결과를 이끌어낸다. 결국 모든 게 원님 마음대로인 ‘원님재판’의 새로운 버전인데, 이는 오로지 원님이 공평무사하고 정의로운 기준을 흔들리지 않고 지켜낼 때에만 성립가능한 제도다.

변변히 견제할 만한 장치도 없는 상태에서 대중의 인기를 등에 업고 뜻한 바대로 결과를 이끌어내는 권력자가, 폭주하지 않고 언제나 공평무사하고 정의로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 유사 파시즘의 위협으로 가득한 세계가 정말 우리가 원하는 미래인가? 극이 진행되는 걸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아마 문유석 작가가 <악마판사>를 통해 묻고자 하는 질문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사진·영상=tvN. 그래픽=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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