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종’은 어쩌다 공포가 아닌 엽기가 됐을까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곡성>은 애들 장난이다? 나홍진 감독이 프로듀서를 맡고 <셔터>로 유명한 태국의 반종 파산다니쿤이 감독한 영화 <랑종>은 개봉 전부터 이런 이야기들이 나돌았다. 얼마나 무섭길래 <곡성>을 애들 장난이라 할까. 공포의 수위를 떠나서 <랑종>이 <곡성>과 비교되면서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신과 믿음에 대한 또 하나의 문제작이 나온 것 아닌가 하는 기대감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한 이야기들이었다.

이른바 ‘겁쟁이 상영회’라는 불 켜고 영화 보는 이벤트는 이런 소문을 더욱 부풀려 놓았다. 도대체 얼마나 무서우면 불을 켜고 영화를 볼까. 시시 때때로 관객들이 옆에 있다는 걸 확인하면서 영화 속으로 너무 깊숙이 빠져들지 않는 안전함을 추구하는 시사라니. 이 정도면 코로나시국에도 어쩐지 이 영화는 극장에 가야 제 맛일 것 같은 생각까지 갖게 만든다. 영화 전에 이 정도의 입소문이 터졌다는 건 사실 흥행이 어느 정도 보증됐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영화 개봉 첫날 이런 입소문의 효과는 톡톡했다. 무려 13만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공포 장르 영화 중 <박쥐>의 첫 날 관객 수 18만 명을 잇는 두 번째 기록이라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마침 개봉한 마블의 <블랙 위도우>마저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는 기사까지. 이러니 코로나 시국에 <랑종>은 순식간에 화제작이 됐고, 그 궁금증 때문에 관객들이 찾는 영화가 됐다.

하지만 이러한 화제와 기대감은 영화 개봉 후 그 양상이 양분됐다. 무섭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하나도 안 무섭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이렇게 반응은 양분되지만 한 가지 공통된 감상평들이 나온다. 그건 ‘불편하고’,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또 <곡성>이 훨씬 수준 높은 영화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어째서 이런 반응들이 쏟아진 걸까.

<랑종>은 태국의 산골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무당과 신내림 그리고 빙의를 소재로 하는 영화다. 영화는 그 곳에서 조상신인 바얀 신을 모시는 랑종(무당) 님을 취재하는 다큐멘터리로 시작한다. 페이크 다큐 형식을 가진 이 영화는 그래서 촬영팀이 님을 취재하다가 그의 조카 밍이 어딘가 심상찮은 상태를 보이기 시작하자 그가 신내림을 받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그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

<랑종>의 공포는 그저 평범하고 풋풋해 보였던 밍이라는 소녀가 점점 무언가에 빙의되어 이상행동을 보이고, 억눌렸던 욕망들을 마구 끄집어내는 그 일련의 광경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런 밍을 구해내려는 님의 고군분투와, 그가 도움을 요청한 퇴마사가 밍의 몸에 빙의된 악귀들과 충격적인 대결을 벌이는 그 일련의 과정들은 <랑종>의 후반부에 엄청난 에너지의 공포를 안긴다. 초반 잔잔한 다큐멘터리처럼 보였던 영화가 끝부분에 이르러 상상을 초월하는 초현실적인 광경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건 실로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영화 후반부에는 눈을 뜨고 있기가 힘겨울 정도다. 어디서 또 어떤 장면이 튀어나올까 하는 불안감이 가득 채워지고 그 상상은 역시나 현실로 재현된다. 그런데 뒤로 가면서 이러한 장면들이 반복되고 중첩되면서 영화가 주는 이 감정들이 공포라기보다는 엽기에 가깝고 그래서 무섭다기보다는 불편함과 불쾌함이 더 크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 이유는 밍이라는 소녀에 갖가지 악귀들이 빙의됐다는 설정 하나를 통해 영화가 근친상간부터 존속살해는 물론이고 보기 불편한 엽기적 행위들까지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 상황이나 장면 자체가 너무나 끔찍하기 때문에 보기 힘겨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랑종>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높은 수위의 장면들은 다소 ‘악취미’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특히 퇴마 의식을 치르기 일주일 전부터 집안 곳곳에 관찰카메라를 설치해두고 밍이 하는 엽기적인 행동들을 들여다보는 광경은 섬뜩하면서도 불편하다. 빙의라는 설정을 통해 한 여성이 모든 욕망들을 끌어내고 그래서 너덜너덜해지는 그 과정을 보는 건 보는 이들의 관점에 따라서는 ‘여혐’의 불편함으로 다가오기에 충분하다.

언론배급시사회에서 이 영화를 프로듀싱한 나홍진 감독은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을 말리는 입장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이 봐도 수위가 너무 높아 “낮춰보자”고 했고, 감독은 더 높은 수위를 넣고 싶어 했지만 자신이 그걸 막아서 그나마 청소년관람불가로 영화 상영이 가능하게 됐다고도 했다. 여러모로 그 역시 이 영화가 만들어낼 논란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한편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서 나홍진 감독에 대한 자신의 존경심을 표한 바 있다. 공포영화를 잘 보지 않지만 나홍진 감독의 <곡성>을 본 후 생각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도 했고, 나홍진 감독이 이 영화를 제안했을 때 “꿈 같았다”는 마음도 전한 바 있다. 그래서 관객들은 나홍진에 빙의된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의 영화라고 <랑종>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처럼 <랑종>은 나홍진과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조금씩 서로에 빙의되어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중요한 건 이러한 빙의를 소재로 해 풀어낸 일련의 사건들과 보여지는 충격적인 광경들이 무얼 말하려 하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곡성>은 훨씬 더 신과 믿음에 대한 많은 질문들이 담겨진 영화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랑종>은 그런 메시지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엔딩에 이르러 님의 인터뷰 한 대목이 주는 여운은 분명하지만 그 보다는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장면들의 노출이 더욱 도드라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 불쾌함과 불편함은 때론 공포감까지 상쇄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랑종>이 영화 시작 전부터 호들갑 가득한 무서움을 강조했지만 막상 영화를 본 이들이 불쾌함을 토로하게 된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랑종>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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