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맛 예능으로 전락한 ‘아는 형님’, 근본적인 변화 절실한 시점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300회라는 기념일을 앞두고 <아는 형님>에 근심이 생겼다. 최근 JTBC가 콘텐츠 강화 전략의 일환으로 주말 편성에 변화를 주면서 2015년 12월부터 지금까지 토요일 오후 9시에 시청자들을 찾아갔던 JTBC 최장수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이 오후 7시 40분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결과 시청률이 반 토막 났다. 달라진 주말 저녁 생활 패턴을 반영해 변화를 추구했다고 하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편성이 문제였다면 다시 바꾸면 될 일이다. 그러나 문제의 근본은 안이함에 있다. 편성 변화라는 외부 자극은 방아쇠를 당긴 것이었을 뿐, 짧게 잡아도 몇 달 전부터 <아형>은 1990년대 코미디영화 <사랑의 블랙홀>처럼 매주 똑같은 방송을 반복해서 보는 듯했다. 이런 기분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지난 8월에는 갤럽의 예능선호도 조사에서 처음으로 10위권 밖으로 밀려나갔고, 시청률도 꾸준히 하락해 3~4%대로 침전 중이었다. 그러다 편성 변경 후 1.9%, 2.0%, 2.6%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그나마 나름 수치가 좋아지곤 있으니 회복세라 해석할 수 있을까. 2015년부터 봐온 충성 팬들이 다시 편성을 따라온 결과일 수도 있고, 게스트의 영향력에 따라 흔들리는 모양새일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리얼버라이어티의 심박이라 할 수 있는 에너지레벨이 떨어졌다는 점이다. 각 코너의 호흡은 너무 길고, 게스트에 대한 리액션의 비중이 점점 더 늘어났다. 관찰예능의 시대에 런칭해서 자리 잡은 유일한 리얼버라이어티라는 정체성과 <아형> 특유의 캐미스트리와 게스트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독보적 감성으로 사랑받아온 이 쇼는 마찬가지로 센세이션하게 나타나 현재는 가장 평범하고 전형적인 토크쇼가 된 <라디오스타>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학교 콘셉트의 콩트 설정, 노래, 춤 등으로 펼쳐지는 게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토크쇼 코너인 ‘나를 맞춰봐’ 등 같은 포맷이 수년 째 반복되고 있고 그 안에서 웃음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암기한 공식처럼 되풀이된다. 몸치이자 눈치 보지 않는 민경훈, 드립에 특화된 김희철, 짠내 나는 이상민, 짜증 많은 서장훈, 귀여움을 담당하는 강호동 등 맡은 역할과 이수근과 서장훈처럼 웃음을 만드는 관계망은 너무나 고착화되었다. 그래서 엔진오일의 교체시기를 놓친 자동차처럼 똑같이 페달을 밟는데 퍼포먼스는 예전만 못하다.

물론, 도전이 없었던 건 아니다. 게임을 계속 개발하고 있고, 블랙핑크 리사가 출연한 장면은 유튜브에서 기록적인 조회 수를 기록했다. 신동과 함께하는 2교시를 통해 몸으로 하는 활동을 추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콩트를 기반으로 스튜디오에서 노래, 춤, 장기자랑을 펼치는 바운더리를 고수한다. 드립의 김희철, ‘돌아이’과의 민경훈, 샌드백 김영철 등 포지션부터 2000년대 융성했던 중년 남자들의 리얼버라이어티 시대 그대로인데, 가장 어린 민경훈조차 40대를 바라볼 만큼 세월이 흘러서 그런 것일까. 결국은 같은 패턴에 게스트만 끼워 넣다보니 <해투>나 <라스>처럼 게스트 의존도가 높아진 토크쇼가 됐다. 그러면서 <아형>은 이슈를 주도하던 플레이어에서 <놀면 뭐하니?>, <골때녀>, <미스터트롯>, 도쿄 올림픽 등 당대 이슈나 타 프로그램의 인지도에 숟가락을 얻는 ‘예능 순회 코스’ 중 일부가 되고 말았다.

한때 <아형>은 이번 주는 무슨 웃음과 이야기가 나올지 기대가 되는 예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화제를 만들 만한 특별한 스토리라인이 없고, 웃음을 만들기에는 차려내는 밥상이 너무나 아는 맛이다. 게스트에 따라 시청률이 들쑥날쑥한 것은 게스트 의존성이 높아지고 있단 뜻이다. 거꾸로 말하면 높은 출연료를 받는 고정 출연진의 활약은 상수로서 의미가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다.

300회에서는 트로트코인을 한 번 더 노린다. 하지만 게스트 섭외에 의존하는 임기응변으로 흐름 자체를 바꿀 수 없다. 누가 나오든 익숙한 관성이 지배하는 분위기가 스튜디오를 감돈다. 당대 최고 MC중 한 명인 강호동의 새 캐릭터 정착, 김희철의 발견, 이수근의 재발견 등으로 이뤄낸 성과는 점점 과거의 영광으로 빛이 바래고 있다. 즉, 지금 <아는 형님>에 필요한 것은 편성전략이 아니라 근본적인 리뉴얼이다. 인적 변화 내지 콘셉트의 변화가 절실하다.

어떻게 보면 <아는 형님>의 제작진과 출연자는 억울할 수도 있다. 늘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자부해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변한 게 하나도 없을지라도 환경과 시대가 변하면서 뒤처지게 됐다. 예능은 공연이 아니다. 오늘날 같이 빅뱅이 일어나듯 하루하루 변화하는 방송가에서 다질 만큼 다져진 캐릭터쇼, 엇비슷한 장기자랑과 토크쇼가 비슷비슷하게 반복되는 스튜디오 버라이어티를 매주 1시간 반이나 지켜볼 충성 시청자는 많지 않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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