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기’를 권력욕과 예술의 대결로 읽어 보면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하람(안효섭)과 홍천기(김유정)의 운명적인 사랑? SBS 월화드라마 <홍천기>가 다루고 있는 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청춘 멜로 사극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서로 번갈아 앞을 보지 못하게 되는 운명에 처한 두 사람이지만, 그래도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하게 되는 마음은 이보다 더 애틋할 수 없으니.

하지만 그렇게만 보면 <홍천기>를 너무 앙상하게 감상하는 것일 테다. <홍천기>가 갖고 있는 또 다른 문제의식은 예술이 정치, 그것도 엇나간 권력욕을 가진 자들과 어떻게 맞서 싸우는가에 대한 이야기 또한 담고 있어서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갖는 문제의식은 악역에서 드러나는 경향이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악이란 그 사회가 갖는 문제를 표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홍천기>에 등장하는 마왕이 무엇을 상징하는가 하는 건 중요하다. 그저 ‘악마’나 ‘괴물’ 같은 것으로 마왕을 해석한다면 다소 유아적인 선악구도 정도로 보일 테지만, 이 사극은 선대 왕이 단 왕조를 세우는데 마왕의 힘이 작용했다는 걸 밑그림으로 깔고 있다. 왕조를 세우는데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렀을까. 그 피 위에 나라가 세워졌다.

하지만 그렇게 권좌를 얻은 자는 더 이상의 욕망에 휘둘려서는 왕좌를 유지할 수가 없다. 그래서 드라마는 초반에 마왕을 영종어용에 봉인하는 판타지적 설정을 통해 그 욕망을 빼내는 광경을 보여준다. 하지만 선대 왕의 몸에서 빼낸 마왕을 다시 끄집어내는 이는 둘째로 태어나 권좌에 오를 수 없어 그 욕망이 타오르는 주향대군(곽시양)이다. 그는 마왕을 얻고 싶어 한다. 선대 왕이 그러했듯이 그 마왕을 제 몸에 받아들여 권좌에 앉고 싶은 것이다.

어린 주향대군이 영종어용에 깃든 마왕의 유혹에 저도 모르게 다가가 불을 붙이고, 타버린 그림 속에서 마왕은 튀어 나온다. 하지만 그 마왕은 주향대군에 깃들지 않고 하람의 몸에 깃들고 이를 알게 된 삼신은 그의 눈을 빼앗음으로써 마왕을 그 안에 봉인시킨다. 이 설정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욕망이 어떻게 무고한 이들(하람으로 대변되는)을 희생 제물로 삼고 그들을 비극 속에 빠뜨리는가를 그려낸다.

하람은 이로써 아버지를 잃고 자신 또한 눈을 잃는다. 하람의 몸에 마왕이 깃들었다는 건 그 역시 어떤 욕망을 갖게 됐다는 걸 뜻한다. 그건 바로 복수심이다. 그는 단 왕조에 복수하려 한다. 하지만 그의 눈이 일찍이 마왕의 저주로 눈을 잃었던 홍천기의 눈이 되었다는 설정은(그래서 홍천기가 앞을 보게 됐다) 그 복수심을 억누르게 해주는 좋은 기억과 사랑이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래서 하람은 두 욕망 사이에서 갈등한다. 홍천기의 눈을 빼앗으려는 마왕의 욕망이 드러나다가도 그에 대한 사랑이 이를 억누른다.

정치가 권력을 향한 이전투구로 이뤄질 때 민초들이 갖는 감정은 저 마왕이 깃든 하람 같지 않을까. 본래는 평범했지만, 정치인들의 욕망에 그저 이용되거나 희생되어 왔다는 걸 깨닫게 된 민초들은 분노하고 저들을 어떻게든 무너뜨리고픈 욕망을 갖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저들이 해왔던 그 방식 그대로라는 것을 깨달으며 그 분노를 눌러 다른 방식의 해결책을 찾기도 한다.

홍천기의 그림은 그래서 그 대안처럼 보인다. ‘신령한 그림’을 그려 그 속에 마왕을 봉인한다는 건, 그 욕망을 끄집어내 객관화하는 과정이 아닐까. 여기서 욕망에 눈먼 세상과 싸우는 예술가들의 방식이 등장한다. 이들의 그림은 그냥 사물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거기 담겨진 욕망들을 끄집어내고 객관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욕망의 승화라고나 할까. 그렇게 관조하는 시선을 줌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욕망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때론 이를 절제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그 예술의 과정은 예술가를 미쳐버리게 만들거나 죽음에 이르게까지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하는 이유를 <홍천기>는 두 가지로 제시한다. 화차를 보게 되면 최고의 그림을 그리지만 미쳐버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들은 자기 예술에 대한 욕망 때문에 그렇게 한다. 하지만 홍천기가 그 위험을 무릅쓰고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다르다. 사랑하는 이를 구하기 위함이다. 하람이 도탄에 빠진(마왕이 깃든) 민초를 상징한다면, 홍천기의 그림은 그들을 구원해내기 위한 숭고한 선택이 된다.

<홍천기>는 물론 하람과 홍천기의 달달하고 절절한 멜로의 외피를 갖고 있지만, 그 안에 권력에 눈 먼 자들과 그들에 의해 도탄에 빠지는 민초들의 이야기를 담으면서 예술이 어떻게 저들과 대결하는가를 그려낸다. 과연 홍천기는 자신까지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하람을(민초를) 구원해낼 수 있을까. 또 권력에 눈 멀어 마왕을 제 몸 속으로 받아들이려는 자들의 욕망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까. 하나의 해석일 뿐이지만, 이런 관점으로 바라보면 <홍천기>가 훨씬 더 흥미진진해진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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