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애의 이미지 변신’ 홍보한 ‘구경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나
‘괴짜 은둔형 외톨이 탐정 구경이’라는 캐릭터와 ‘이영애’라는 스타의 간극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남지우·이승한·정석희 세 명의 TV평론가가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TV삼분지계]를 통해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SBS <사임당, 빛의 일기>(2017) 이후 4년 만의 드라마 컴백. 이영애가 선택한 신작이라는 정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방영을 시작하기도 전에 JTBC <구경이>에 기대를 걸게 만드는 요소였다. 게다가 인생이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진 은둔형 외톨이 탐정과 매혹적인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모두 여성이며, 그들의 조력자나 주변 인물들 중 상당수가 여성이라는 설정은 기획단계에서 ‘한국판 <킬링 이브>’라고 불릴 만큼 매력적인 요소였다.

실제로 오프닝 크레딧 맨 앞을 채우는 네 명의 여성 배우 – 이영애, 김혜준, 곽선영, 김해숙 – 의 이름은,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 배우들이 빚어낼 앙상블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그렇다면 질문은 한 가지로 수렴된다. 과연 단아하고 화사한 스타 아우라의 소유자 이영애는, 심각한 알코올의존증과 게임중독에 시달리는 은둔형 외톨이 ‘구경이’로 얼마만큼 변신할 수 있을까?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의 평은 다소 갈린다. 정석희 평론가는 이영애가 “시작 후 얼마 안 있어 의무를 다했다는 듯이 망가짐의 탈을 벗고 말았”다며, JTBC가 그토록 힘주어 강조한 이영애의 “‘파격 변신’은 그저 홍보를 위한, 화제성을 위한 변신”이었다는 평가를 남겼다. 오히려 이영애보다는 김혜준이나 조현철, 이홍내 등의 젊은 연기자들이 더 흥미롭다는 평이다. 반면 이승한 평론가는 이영애가 앞서 보여줬던 몇 차례의 성공적인 이미지 변주를 언급하며, 스타 아우라와 배역이 지닌 서사 사이의 간극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영애의 이미지 변주가 다시 한번 힘을 발휘했다고 평하며 “과연 영리하다”는 말을 남겼다.

한편 남지우 평론가는 ‘이영애’라는 스타가 아니라 ‘구경이’라는 캐릭터 조형에 조금 더 집중하며 “‘구경이’라는 이상하기 짝이 없는 여성 캐릭터가 탄생하고, 허용되고, 또 받아들여지”는 광경에서 오랫동안 ‘이상한 여성 캐릭터’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그려온 이경미 감독의 자장을 포착했다. 이영애와 구경이 사이의 간극, 세 평론가의 견해 중 여러분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우실지?

◆ 망가진다던 이영애는 안 망가지고

<구경이>가 위기의 JTBC 드라마를 구할까? 그 어느 때보다 시청률이 간절한 JTBC가 아닌가. 전도연, 고현정, 이영애, ‘오랜만의 드라마 복귀’를 앞세운 탑 스타 셋을 차례차례 시청률 배틀에 내보내고 있으나 전작인 <인간실격>의 전도연은 시청률 견인에 실패했고 수목극 <너를 닮은 사람>의 고현정 또한 엇비슷한 길을 가는 추세다. 그런 마당에 마지막 비장의 카드 <구경이>는 과연 어떤 성적표를 받을지 모두가 주목할밖에. 연일 쏟아지는 홍보 기사는 주인공 이영애의 파격 변신, 미친 열연을 예고했다. 단아함의 대명사인 이영애가 술과 게임으로 찌든 은둔형 외톨이를 연기한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파격 변신’은 그저 홍보를 위한, 화제성을 위한 변신이지 싶다. 시작 후 얼마 안 있어 의무를 다했다는 듯이 망가짐의 탈을 벗고 말았으니까. 게다가 1화 마지막 과거 회상 장면에서 우리가 익히 아는 화사하고 단정한, 또랑또랑한 어조의 이영애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미친 열연은? 글쎄다. 언젠가는 보여주겠지.

 

JTBC가 드라마 홍보가 계속 헛발질이다. <인간실격>만 해도 그렇다. 두고두고 회자될 수작이 불륜을 앞세우는 바람에 폄하되지 않았나. 남자 주인공의 치명적 매력 유무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통에 인간의 내면과 사람과 사람의 인연, 관계에 대해 곱씹어 보게 만드는 명대사와 명장면들이 빛을 보지 못했다. 이 얼마나 애통 절통한 노릇인지. <구경이>도 넷플릭스 <D.P>의 조현철, OCN <경이로운 소문>의 이홍내, 넷플릭스 <킹덤>의 김혜준 등 주목해야 마땅할 연기자들이 한 둘이 아니다. 첫 화를 보고 판단하긴 이르나 나를 <구경이>에 붙들어두는 건 이영애가 아니라 이영애를 제외한 다른 연기자들일 게다. 특히 <킹덤>을 통해 한 차례 성장을 입증한 김혜준의 연기 변신이 기대된다.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스타 아우라와 배역의 서사 사이, 격차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

스타의 아우라가 강한 배우들은 종종 자신이 연기하는 배역의 서사와 본연의 스타 아우라가 충돌하는 것을 경험한다. 화면 위에서 아무리 열심히 배역을 연기해도, 평상시 CF나 화보를 통해 쌓아온 셀러브리티로서의 아우라가 너무 강해 배역에 녹아들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영애가 감행한 몇 차례의 이미지 변신은 영리하다. 생계를 위해 술집 종업원이 되어 살아가는 억척스러운 여성 ‘애숙’을 연기한 드라마 <내가 사는 이유>(1997)나, 천진함과 냉혹함 사이를 오가며 복수의 칼날을 가는 ‘이금자’를 연기한 영화 <친절한 금자씨>(2005)에서 보여준 이미지 변신은, CF 스타이자 당대의 셀러브리티로서 이영애가 지닌 아우라를 지우는 대신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수행됐다.

화장품 마몽드 CF에서 보여줬던 ‘산소 같은 여자’ 이미지가 채 가시기 전에 그 이미지를 끌어안은 채 ‘애숙’을 연기하고, 드라마 <대장금>(2003~2004)에서 보여준 단아한 이미지가 사라지기 전에 아예 그 단아함을 적극적으로 역이용해 ‘이금자’를 표현해 내는 방식. 기존에 배우가 지닌 이미지와 배역이 지닌 서사가 충돌하고 어긋나는 위화감을 통해 인물의 속을 알 수 없게 만들고, 그로 인해 캐릭터에 깊이를 더하고 보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영애의 이미지 변신은 매번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지난 30일 첫 방송된 JTBC <구경이>의 첫 화 또한, 스타 고유의 아우라와 배역이 지닌 서사 사이의 격차를 활용하는 방식을 택한다.

“사회생활을 잘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은둔형 외톨이” 캐릭터라고 홍보된 구경이(이영애)는, 1화 중반을 넘어가는 시점에서부터 적극적으로 통영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활달하게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김민규(김강현)를 추적하며 “김민규, 이제 다 끝났어.”라고 외치는 대목에선 말투와 행동을 통해 구경이가 전직 형사, 그것도 현장을 본격적으로 뛰는 형사였다는 걸 짐작케 만든다.

‘망가짐’은 생각보다 일찍 수습되고, 대신 “저렇게 유능한 사람이 왜 저러고 살지” 하는 궁금증을 시청자의 발치에 툭 하고 던진다. 서술트릭을 통해 5년 전 경이의 삶을 망가뜨린 사이코패스 살인마 ‘K/송이경’(김혜준)과의 첫 만남을 마치 동일시점인 것처럼 편집해 둔 1화는, 그렇게 단정하고 빈틈없었던 형사 구경이의 삶이 어쩌다가 지금처럼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걸까 하는 궁금증으로 마무리된다. 이미지 변신에 집중하는 대신, 기존의 이미지를 어떻게 잘 활용하는가에 집중한 첫 화. 과연 영리하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 이경미 없는 이경미 월드

기회가 왔다. 공효진과 손예진, 그리고 정유미를 거쳐온 기회가 드디어 이영애에게도 온 것이다. 동시대 최고의 연기자들에게만 허락된 것. 때로는 피하고 싶어도 결국은 피할 수 없는 것. 연기 인생에서 언젠가는 수행해야 하는 과업. 그것은 바로 ‘이경미적 캐릭터’의 주인이 되는 일이다. 영화에서나 드라마에서나, 언제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여성 캐릭터들은 감독 이경미의 펜 끝에서부터 태어났다. 영화 <미쓰 홍당무>(2008)의 양미숙, <비밀은 없다>(2015)의 김연홍, 그리고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2020)의 안은영과 나란히 놓이게 될 이름. JTBC의 새 드라마 <구경이>는 이경미가 없는 이경미의 세계이며, 그 세계의 히어로 ‘구경이’는 30년 경력의 배우 이영애에 주어진 절호의 기회다.

이정흠 감독은 첫 화에서부터 일필휘지의 연출력을 보여줬다. 특히, ‘구경이’(이영애)의 세계와, 동명이인 ‘케이’(김혜준)가 사는 세상이 서로에 시차를 두고 연결되어 있음을 채도 변화 하나로 보여낸 엔딩 씬. 나도 모르게 ‘헉’ 소리를 내버리고 말았다. 성초이 작가의 필력 역시 이 작품이 입봉작임을 의심하게 될 정도다(“이거, 의심스러운데”). 알콜중독자에 히키코모리, 게임중독에 빠진 여주인공이 만들어가는 익숙지 않은 상황들에도, 시청자가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데 그 어떤 어려움도 없었던 이유는 대사 한 줄 한 줄에 녹여낸 디테일 덕분이었다.

이정흠, 성초이. 두 창작자의 재능과 노력이 절대적으로 빛났던 첫 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감독, 이경미의 이름을 굳이 언급하는 건 실례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2021년에 ‘구경이’라는 이상하기 짝이 없는 여성 캐릭터가 탄생하고, 허용되고, 또 받아들여지기까지. 척박한 한국 땅에 그 토양을 일궈낸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하면 딱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오직 이경미, 구경이는 아마 이경미로부터 온 여인이 아닐까를 생각하게 된 이유다.

남지우 칼럼니스트 Instagram @jmbar_jwjw

[사진·영상=JTBC. 그래픽=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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