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게임’, 지상파의 생존 몸부림...과연 이게 맞는 방향인가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피의 게임은 불공정하고 비합리적인 게임입니다. 정치, 음모, 배신 모두 다 가능합니다. 생존을 위한 어떠한 행동도 가능합니다.” MBC <피의 게임>은 이렇게 이 게임의 성격을 말한다. 생존을 위해 어떤 것도 할 수 있다는 게임의 방식에 긍정의 단어들은 들어 있지 않다. 대신 불공정, 비합리, 정치, 음모, 배신 같은 누군가를 무너뜨리기 위한 부정적 단어들이 제시된다.

최고 3억 원의 상금을 걸고 최후의 1인이 되기 위해 10명의 플레이어들이 참여하는 게임. 전 야구선수, 의대생, 아나운서, 경찰, 대학생, 대학원생, 래퍼, 크레에이터, 스트리머, 한의사 같은 다양한 직업군의 플레이어들이 게임에 참여했다. 첫 만남의 어색함이 가시기도 전에 이 게임이 ‘서바이벌 게임’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실감케 하는 첫 번째 챌린지가 시작된다. 서로를 알아가기도 전에 투표를 통해 탈락자를 정하는 것.

물론 아직 이 게임이 어떤 성격인가를 알지 못하는 플레이어들은 다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모두가 자신에게 투표하거나 바로 오른편에 앉은 사람을 찍어 모두가 한 표씩을 받게 해 다 함께 생존하자는 의견들이 나온 것. 하지만 불안감 또한 슬슬 고개를 든다. 그 중 한 명이라도 배신을 하면 누군가는 바로 탈락할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과연 협력을 통해 모두가 살아남으려는 이런 선의의 행동들은 통할 수 있을까.

다행스럽게 첫 번째 투표에서는 전원이 배신을 하지 않아 한 표씩 받았지만 그건 애초부터 <피의 게임>이라는 서바이벌 판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것이었다. 바로 재투표가 시작됐고 의견들이 갈렸다. 이미 <더 지니어스>에 출연해 이런 게임에 익숙한 플레이어인 한의사 최연승은 이 판이 결국 서바이벌이라는 걸 수긍한다. 선의가 작동하는 세계가 아니고 동맹을 통한 협업을 하긴 하지만, 언제든 배신과 음모가 난무하는 살벌한 판이라는 것. 이처럼 <피의 게임>은 일단 이 게임의 법칙이 무자비한 서바이벌에 있다는 걸 분명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에 판을 흔드는 누군가의 ‘작업’이 시작된다. 또 다시 한 표씩 찍자는 의견에 반대한 최연승이 재투표에서 공적이 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대학생 이나영이 투표를 하러 자리를 비운 그 잠깐 사이에 의대생 허준영이 불쑥 이런 말을 꺼낸다. “저는 게임할 때 제일 뭔가 어떻게 할지 모르겠던 사람 뽑았습니다.” 그 말은 가장 말이 없어 속내를 알 수 없던 이나영을 은근히 지목하는 말이었다. 그 한 마디가 상황을 뒤집었다. 누굴 찍어야 할지 난감하고, 또 찍었을 때 죄책감을 가질 플레이어들에게 그 말은 죄책감을 상쇄해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후 몰표를 받은 이나영이 탈락자로 선정됐다.

제 아무리 돈을 두고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이지만, 지상파 예능에서 이처럼 등장하자마자 다짜고짜 투표를 해 탈락시키는 광경은 사실 충격적이다. 저절로 욕 나오는 불편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도 그렇다. 물론 그건 이 게임판이 서바이벌이라는 걸 플레이어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이후 플레이어들은 <피의 게임>의 룰이 매일 머니 챌린지를 통해 우승자를 뽑고 그 우승자를 제외한 나머지의 탈락자 투표가 벌어질 거라는 사실을 알고는 동맹을 찾아 나선다.

겉으로는 모두에게 호의를 갖고 있는 척하면서 뒤에서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손을 내밀고, 심지어 동맹 바깥에도 일종의 보험으로 동맹을 제의하는 상황. 그리고 여기에 <피의 게임>은 <기생충>의 반전 서사를 더해 넣는다. 탈락자인 줄 알았던 이나영이 사실은 지하에서 생활하며 자신을 그렇게 만든 이들을 향해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 것. <피의 게임>의 ‘피’는 순간 <기생충> ‘Parasite’의 ‘P’를 의미한다는 게 드러났다.

<피의 게임>은 웹 콘텐츠로 갖가지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머니게임>을 만든 진용진과 MBC가 합작해 만든 서바이벌 게임 프로그램이다. 시작 전부터 이런 논란 가득한 프로그램을 왜 지상파에서 하는가에 대한 비판 섞인 시선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시작한 첫 회를 보면 그 비판과 논란들이 왜 일찍부터 나오게 됐는가를 실감하게 된다. ‘<오징어 게임>의 실사판’이라는 얘기가 나왔지만, 그렇다고 허구를 통해 경쟁사회의 실체를 고발하고 풍자하는 것과, 실제 피도 눈물도 없는 경쟁 속에서 이기기 위해 뭐든 선택하는 욕망의 밑바닥을 확인하는 건 본질적으로 지향점 자체가 다르다.

물론 <피의 게임>은 어딘가 여기저기에서 시도되곤 했던 서바이벌 게임류 프로그램들을 뒤섞어 놓은 느낌이다. 아직 등장하지 않았지만 매일 벌어질 거라는 머니 챌린지는 tvN <더 지니어스>를 떠올리게 하고, 탈락자 투표는 미국의 <서바이버>를 거의 비슷하게 가져왔던 KBS <도전자> 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의 고정적 장치다. 또 동맹을 찾고 서로 ‘정치질’을 하는 모습은 tvN <소사이어티 게임>을 연상시킨다. 물론 지하층의 존재와 그 곳에서 피자박스를 접어 생존머니를 모으는 이나영의 모습은 대놓고 <기생충>을 오마주한 부분이다.

“역대급 매운맛”이라는 표현을 달고 MBC측은 나름 큰 기대를 한 모습이 역력하다. 지금까지 지상파에서는 시도되지 않았던 수위와 자극의 서바이벌이라는 점 때문이었을 게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 달리 첫 회 시청률은 1.8%(닐슨 코리아)에 머물렀다. 첫 방부터 ‘충격의 도가니’라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지만 어째서 반응은 영 시큰둥할까. 여러 이유들이 작동한 결과겠지만 가장 큰 건 아마도 지상파라는 플랫폼과 웹에 어울릴 것 같은 콘텐츠의 이질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것은 첫 회,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반응이라 향후 어떤 반전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이 격변기에 지상파와 웹 사이에 놓인 정서적 장벽은 여전히 공고해 보인다.

지금의 시청자들은 같은 소재와 내용이라도 다양화된 플랫폼에 어울리는 기대감을 갖게 됐다. 웹이나 케이블에서라면 훨씬 주목될 수 있고 화제가 될 수도 있는 자극적인 콘텐츠지만, MBC라는 지상파와는 어딘가 잘 맞지 않고 심지어 불편함이 시청의 장벽으로까지 느껴질 수 있는 콘텐츠라는 것이다. MBC측도 이런 상황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MBC가 지상파 콘텐츠의 색깔과는 너무나 다른(그것도 자극과 논란을 내포한) 웹 예능 성격의 프로그램을 야심차게 내놓은 이유는 뭘까. 그건 현 지상파 예능들이 처한 살아남기 위해 뭐든 해야 하는 생존상황을 에둘러 말해주는 것만 같다. 그래서 <피의 게임>은 마치 지상파 예능들이 다원화된 콘텐츠들의 경쟁 상황 속에서 벌이는 생존 게임 자체처럼 보인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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