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꼴리아’의 대결구도, 아름다운 수학과 천박한 속물주의 사이

[엔터미디어=정덕현] “아빠가 그랬잖아요. 타고 나야 이긴다고요. 걔처럼 타고난 경주마를 어떻게 이겨요?” 성예린(우다비)은 수학천재 백승유(이도현)와 함께 수학올림피아드에 나가게 됐지만 그를 도저히 이길 수 없다며 아버지 성민준(장현성)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러자 성민준은 대놓고 아빠 찬스를 이야기한다. “너도 다른 애들이랑 출발선이 달라. 나 같은 아빠를 만났으니까.”

tvN 수목드라마 <멜랑꼴리아>에서 지윤수(임수정) 선생님과 수학천재 백승유의 앞에 놓인 장벽은 이른바 기득권층의 속물적인 가치관이다. 성민준 의원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딸 예린이 수학올림피아드에 나갈 1인을 뽑는 경시대회에서 우승하게 하기 위해 시험지를 빼돌려 답안을 달달 외우게 만든다. 여기에는 아성고의 노정아(진경) 교무부장도 또 한명진(안상우) 수학교사도 연루되어 있다.

성민준 의원은 혹여나 백승유가 대회에 나와 딸이 우승을 놓치게 될까봐, 노정아를 은밀히 만나 딜을 한다. 노정아는 영재학교 전환심사 유치전에 뛰어든 자사고 15개 중 아성고에 유리하게 최종심사위원회를 꾸려 달라 요구하고, 대신 성민준 의원은 백승유가 대회에 나오지 못하게 해달라 요청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성민준 의원은 경시대회 당일 딸 예린에게 “상황 잘 정리됐다”고 말한다. 딸에게도 대놓고 ‘아빠 찬스’를 썼다는 걸 알린 것.

<멜랑꼴리아>에서 지윤수 선생님을 빼놓고 대부분의 어른들은 교육에 대한 속물적인 욕망들을 갖고 있다. 예린의 엄마 유혜미(변정수)도 그렇고, 장규영(최우성)의 엄마 유선아(박성연)도 그렇다. 하지만 백승유의 부모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백승유의 아버지 백민식(김호진)은 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수학에는 없는 노벨상 하나 타라고 하고 나사(NASA) 가서 로케트를 띄우거나 캠브릿지, MIT 교수도 하고 그의 이름을 딴 연구소도 하나 하라고 말한다. 그에게 수학은 성공의 발판일 뿐이다.

이러니 아이들이 정상적일 수 없다. 천재적인 백승유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장규영은 그와 지윤수 선생님의 성희롱이 담긴 악의적인 합성사진을 유포하고 마치 그들이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인 양 근거 없는 소문을 퍼트린다. 그리고 갑자기 두각을 나타내는 백승유를 시기 질투하는 다른 아이들의 부모들 역시 노골적으로 이 소문을 스캔들화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백승유는 장규영에게 주먹을 날리고 싸움을 벌이지만 왜 그랬냐는 선생님들의 추궁에 입을 다문다.

백승유가 수학을 하는 건 그것이 좋아서다. 그에게 수학은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관점이다. 건물 하나도 나무도 하늘의 별도 그에게는 수와 도형의 나열로 그려진다. 그래서 그의 수학은 아름답다. 하지만 부모 찬수를 대놓고 써서라도 무조건 1등을 해야 한다 생각하는 성예린이 수학을 하는 건 “잘 해야” 되기 때문이다. 속물적인 부모의 가치관이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투영된다. 백승유 역시 어려서 그 길을 걸었지만 그건 결코 행복할 수 없고 나아가 자신을 파괴하는 일이라는 걸 깨닫고 평범한 척 살아간다. 그런 그에게 지윤수 선생님은 다시금 속물적인 목적을 위한 수학이 아닌 아름답고 행복한 수학을 펼쳐놓는다.

<멜랑꼴리아>는 이처럼 아름다운 수학과 천박한 속물주의를 대결구도로 세워 놓는다. 눈에 띠는 건 교육이 배우는 즐거움이 아니라 성공을 위한 수단처럼 취급되는 현실이다. ‘부모 찬스’라는 지금 현재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슈가 이 드라마에서 유독 주목되는 건 그래서다. 과연 백승유와 지윤수 선생님은 ‘부모 찬스’까지 내세우며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 따윈 가리지 않는 저들의 속물주의를 찢어버릴 수 있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