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찮은 ‘옷소매’의 상승세, 몰입감 증폭시킨 스토리텔링의 힘

[엔터미디어=정덕현] ‘기다려. 성덕임. 전하께서 네 이야기를 궁금해 하실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거야.’ MBC 금토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덕임(이세영)은 세자 이산(이준호)을 용서해 달라는 말에 대노한 영조(이덕화) 앞에서 뜬금없이 왕이 하사한 동전 한 닢의 일화를 꺼내놓으며 속으로 그렇게 되뇐다. 그 동전 한 닢이 자신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며 지금껏 궁에 들어와 백 냥을 모으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는데 지금껏 아흔아홉 냥을 모았다며 그 한 닢으로 백 냥을 다 모으게 됐다는 이야기다.

세자를 용서해달라는 말 한 마디에 대노해 너를 죽이겠다 엄포를 놓은 영조는 뜬금없는 동전 한 닢 이야기에 성덕임이 의도한 대로 호기심을 느낀다. “왜 백 냥을 모아야 했는데?” 드디어 영조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그렇게 질문하자 성덕임은 대뜸 “이야기가 길어지옵니다”라고 덧붙인다. 궁금증이 앞서는 영조는 노했던 감정이 조금 풀어지면서 “상관없으니 이야기 해보라” 한다. 성덕임은 오라비와 얽힌 아픈 가족사를 조곤조곤 들려준다. 그러면서 그는 살고 싶은 이유를 말한다. 살아서 모은 백 냥을 오라비에게 꼭 전해주고 싶다고.

이 대목은 여러모로 <아라비안 나이트>의 세헤라자데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매일 새 신부를 맞이해 다음날 죽이는 왕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매일 밤 이야기를 들려주는 세헤라자데. 쉽게 이야기를 끝내지 않고 다음 날로 이어 궁금증을 가진 왕이 처형을 연기하다 결국 단념하게 됐다는 이야기 속 주인공이 성덕임에게서는 느껴진다.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평범한 궁녀인 성덕임이 가진 특별함은 바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능력이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궁녀들을 쥐락펴락한다. 호랑이가 궁을 습격해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에 세자는 성덕임에게 궁녀들을 무사히 빠져나가게 하라는 요청을 받고, 성덕임은 그 방법으로 “책을 읽어주는 걸” 선택한다. 궁녀들을 모아놓고 <운영전>을 읽어주겠다면서 간략하게 운영이라는 궁녀가 연모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연모해버리고 마는 이야기라고 소개한다. 궁녀들이 궁금증을 참지 못할 때 성덕임은 이야기를 들려주기 전에 중요한 연습이 있다며 한 사람씩 순서를 맞춰 문 밖으로 나가는 것이라고 요구한다. 한꺼번에 몰려 나갔다가는 큰 사고가 날 것을 그렇게 막은 것.

<옷소매 붉은 끝동>은 이산과 의빈성씨의 사랑을 담은 이야기로 사실 우리에게는 MBC 사극 <이산>으로 익숙하다.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끝없는 위협을 받았던 정조 이산과 그가 사랑했던 의빈성씨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이미 역사 기록에도 나와 있고, 드라마 <이산>이 이미 스토리로 풀어낸 바 있다.

그런데 같은 이야기로도 어떻게 들려주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걸 <옷소매 붉은 끝동>은 그 스토리 전개 방식과 성덕임이라는 인물을 ‘이야기 들려주는’ 능력을 가진 존재로 풀어냄으로써 보여준다. 성덕임과 이산이 만나는 과정 역시 이러한 스토리텔링이 들어가 있다. 스스로를 세자가 아닌 겸사서로 속인 채 성덕임과 만나 여러 일을 겪은 후 드디어 그 정체를 성덕임이 알게 되는 그 과정이 그렇다.

성덕임이 그가 세자라는 걸 알게 되는 장면은 직접적이지 않으면서 극적으로 그려진다. 즉 성덕임이 갑자기 나타나자 급히 부채로 얼굴을 가리지만, 연못에 비친 얼굴을 통해 그 정체가 드러나는 방식이다. 물론 세자라는 걸 몰랐던 성덕임이 그에게 소금을 뿌리는 장면 같은 건 좀 표현이 지나친 면이 있었지만, 전반적인 스토리 전개 과정을 보면 <옷소매 붉은 끝동>은 그래도 너무 과하거나 파격적인 이야기 전개는 피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예를 들어 영조가 그를 죽이겠다고 위협할 때 기지를 발휘해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게 됐지만, 그렇다고 애초 목표였던 세자를 살려달라는 그 목적까지 쉽게 달성하게 만드는 그런 과하게 극적인 스토리는 보여주지 않는다. 이것은 성덕임이 영조 앞에서 스스로에게 왕이 이야기를 궁금해 할 때까지 기다리라 다짐하는 장면을 예사롭지 않게 보게 만드는 이유다. 어쩌면 이것이 <옷소매 붉은 끝동>이 가진 스토리텔링의 힘처럼 느껴져서다. 그저 파격적인 이야기 전개로 작가 홀로 앞장서 뛰어가기보다는 시청자들을 궁금하게 해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만드는 방식의 스토리텔링. 급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몰입감을 만드는 그 방식이 어쩌면 이 익숙한 이야기를 더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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