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 앤 크레이지’, 이동욱과 위하준의 대결 혹은 공조의 흥미로움

[엔터미디어=정덕현] 헬멧남 K(위하준)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화재가 난 옥탑방에서 오경태(차학연)를 데리고 차 위로 뛰어내려 간신히 위기를 탈출한 류수열(이동욱) 앞에 마치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슈퍼히어로처럼 차 위로 내려앉은 K의 모습은 비현실적이다. 그가 입은 가죽점퍼 양 어깨로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고 있는 모습. K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양손으로 불을 꺼버리고, 헬멧을 벗고는 류수열을 보고 웃는다. 그 위로 K의 내레이션이 더해진다. ‘반갑다. 류수열.’

tvN 금토드라마 <배드 앤 크레이지>에서 헬멧남 K는 그렇게 현실감이 별로 없다. 하지만 류수열에게만은 지독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술에 취해 대리기사가 몰아주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류수열은 이상하게 흔들리는 차에 구토를 느끼며 깨어난다. 하지만 대리기사는 없고 대신 밖에서 차를 흔들고 있는 K가 등장한다. K는 다짜고짜 류수열을 끌고 오경태가 사는 옥탑방으로 가고, 문을 열자마자 화재 폭발이 일어난다.

불 속에서 정신을 잃고 있는 오경태를 안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류수열에게 K는 창을 부수고 뛰어내리라고 한다. 제정신이라면 그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일이 엄두에도 나지 않았을 테지만 가스에 불이 붙어 폭발하는 순간 류수열은 오경태를 안고 창밖으로 뛰어내린다. 이 모든 일들은 마치 K에 의해 벌어진 일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류수열의 환영일 수도 있다. K는 어쩌면 류수열의 마지막 남은 양심이 만들어낸 가상의 존재일 수도 있으니.

<배드 앤 크레이지>에서 류수열이 반부패수사계 팀장이라는 점은 그가 가진 양면을 잘 드러낸다. 고졸 출신으로 이렇다 할 줄도 백도 없는 그는 승진하기 위해 어떻게든 실적을 올리려 혈안이다. 마약반 에이스 김계식(이화룡) 경감이 동료 형사 탁민수(이주현)를 죽인 범인에게 총을 쏜 사실로 내사를 하는 류수열은 그래서 형사로서의 동료의식보다는 자신의 승진이 더 목적이다.

그는 심지어 차기 당선이 유력한 도유곤(임기홍) 의원의 끈이라도 잡으려 한다. 그의 사촌동생이자 문양청 강력계 형사 도인범(이상홍)의 오경태 폭행 사건을 무마해달라는 청탁을 받아들인 것. 류수열은 그러나 오경태가 실종된 정윤아(이서안)를 조사하다 그런 일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점점 이 사건의 수상함을 감지하게 됐다. 류수열은 승진을 꿈꾸며 나쁜 짓도 마다않는 그런 일을 벌이는 인물이지만, 그럼에도 도인범 같은 진짜 나쁜 놈 앞에서 구토를 느끼는 최후의 양심을 가진 인물처럼 보인다.

<배드 앤 크레이지>가 흥미로운 건 부패와 양심 사이에서의 갈등과 대결을 류수열과 K라는 캐릭터로 구현해 놓았다는 점이다. 나쁜 놈 류수열에게 미친 놈 K는 자꾸만 나타나 그가 외면하려던 진실을 보게 만들고 행동하게 만든다. 그들은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찌 보면 공조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세상에 제 아무리 나빠졌다고 해도 그래도 남은 한 가닥의 양심이라는 게 있어 작은 희망이라도 갖게 되는 공조.

아마도 K는 그래도 양심의 가책을 갖는 류수열이 만든 환영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게 아니라도 이 두 존재의 부딪침은 우리에게 주는 울림이 충분하다. 류수열의 양심을 건드린 건 K 이전에 이미 오경태라는 착한 경찰이었으니 말이다. 오경태에게 왜 이렇게까지 정윤아 실종사건에 열심인가를 묻자 오경태한 한 마디는 그의 마음에 가시처럼 박힌다. “제가 경찰이니까.” 그래서 나쁜 형사 류수열 안에 존재하는 K라는 ‘미친 존재’는 마치 나쁜 세상 안에서도 여전히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그래서 미쳤다고 불리기도 하는) 이들이 있다는 위로를 준다.

<배드 앤 크레이지>는 OCN <경이로운 소문>의 유선동 감독과 김새봄 작가가 만든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경이로운 소문>이 가진 선명한 선악구도와 이를 드라마틱하게 그려내는 판타지 액션의 색깔이 <배드 앤 크레이지>에도 묻어난다. 이번 작품에서의 판타지는 류수열이라는 인물이 만들어낸 K라는 가상의 존재를 실체처럼 연출하는 부분에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배드 앤 크레이지>는 의외로 작금의 현실에 주는 카타르시스가 적지 않다. 성공을 위한 목적을 위해서는 나쁜 짓도 정당화하는 현실이 정계, 재계,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재가 아닌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양심에 눈 감으며 하루하루를 살다가도, 어느 순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최후의 양심이 불쑥 튀어나와 현실적으로 보면 도저히 해서는 안 될 ‘미친 짓’을 벌일 때 갖게 되는 의외의 카타르시스. 그걸 <배드 앤 크레이지>는 액션을 통해 우리 앞에 펼쳐 놓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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