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서’ 임시완, 답답한 서민들의 숨통 제대로 틔워줄까

[엔터미디어=정덕현] “여기서는 아무 것도 안하는 게 일이라고. 뭘 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하지마. 희망을 있을 거라고 믿지도 말고. 그냥 가만있어. 그럼 버틸 수 있으니까.” MBC 금토드라마 <트레이서>에서 중앙지청 조세5국 1팀 서혜영(고아성) 조사관의 이 말은 조세5국이 어떤 곳인가를 잘 말해준다. 일을 하는 곳이 아니라 국세청에 무슨 일이 생기면 욕받이 역할을 하는 곳. <트레이서>가 가진 문제의식은 일명 ‘쓰레기 하치장’이라 불리는 조세5국을 통해 보여진다.

가진 자들이 버젓이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국세청 공무원들과도 손을 잡는 현실 속에서, 저들의 세금 탈루 때문에 죽어나가는 서민들이 존재한다. 특히 이런 세금 포탈을 폭로하려는 내부고발자들은 저들의 공적이 되어 심지어 죽을 위기에 내쳐진다. 한때 대기업 돈을 관리하는 세금 먹튀 전문 회계사로 ‘돈튀호테’라고까지 불렸던 황동주(임시완)가 4년 뒤 국세청 조세5국 팀장으로 들어오게 된 건 과거 국세청과 연루된 사건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 때문이다. 그는 복수를 꿈꾸고 있고, 그래서 ‘돈튀호테’에서 이제는 조직의 명령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세금 먹튀하는 이른바 악질 ‘세꾸라지’ 잡는 돈키호테가 되어 등장한다.

고액 체납자 양회장이 집안에 가벽을 세워 숨겨 놓은 돈을 해머로 부숴 찾아내는 장면은 돈키호테 황동주가 앞으로 보여줄 사이다 판타지를 잘 드러낸다. 사실상 양회장이 그렇게 세금을 체납하면서 버틸 수 있었던 건 조세3국 장정일 국장(전배수)의 비호를 받아왔기 때문. 결국 이런 비리들이 벌어지는 이유는 국세청의 몇몇 부패한 인사들 때문이다. 그래서 자리보전하기 위해 ‘아무 것도 안하는 게 일’이었던 이 조직에 돈키호테 같은 황동주가 등장해 악질 세꾸라지들과 부패 공무원들 사이의 고리를 깨는 이야기는 시청자들에게 시원시원한 사이다 판타지를 안긴다.

그런데 황동주의 복수극은 단지 사적 복수의 차원을 넘어 국세청 공무원들이 스스로 갖고 있는 패배의식과 절망감을 극복하게 만드는 과정 또한 담을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그것은 그가 몸담게 된 조세5국 1팀 사람들의 변화를 통해서다. 서혜영은 첫 회에서부터 이처럼 잘못 돌아가고 있는 현실에 ‘사직서’를 던진다. 하지만 팀장으로 새로 온 황동주의 등장으로 서혜영은 어떤 기대감을 갖게 되고 조세5국 1팀에 좀 더 남아 있기로 마음을 바꾼다.

하지만 진짜 변화를 기대하게 되는 인물은 조세5국을 이끌고 있는 오영 과장(박용우)이다. 한 때는 에이스였지만 과거 황동주의 아버지와 연루된 어떤 사건을 겪은 후로 ‘일을 안하는 게 일’이 된 인물. 그럭저럭 자리만 보전하며 살아가는 오영 과장은 그래서 갑자기 나타난 황동주라는 돈키호테 때문에 자꾸만 부딪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부딪침은 스스로 마음을 닫아버린 오영 과장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까.

<트레이서>는 악질 세꾸라지를 추격하는 황동주와 조세5국 1팀의 활약을 사이다로 그리는 드라마지만, 이를 통해 세꾸라지들과 결탁되어 부패되어 버린 공무원 시스템의 혁신을 꿈꾸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물론 현실에서 벌어지기 힘든 이야기지만, 신문지상에서 그토록 많은 세금을 탈루하고도 돈이 없다며 빠져나가는 ‘가진 자’들의 행태를 보며 답답했던 시청자들이라면 황동주 같은 돈키호테의 활약에 잠시라도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이런 행태들이 반복되면서 마치 돈과 권력이 결탁한 부패는 결코 척결될 수 없다는 패배의식이 만연한 현실이다. <트레이서>가 단순한 사적 복수의 차원을 넘어 부패한 조직 시스템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고 이로서 이렇게 팽배한 패배의식을 깨는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다면 어떨까. <트레이서>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감이 높은 지점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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