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열광하는 ‘지우학’을 통해 살펴본 K-좀비물의 특질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한국식 좀비 서사의 시조는 1980년대 방영되고 1990년대 리메이크 된 KBS <전설의 고향-덕대골>이 아닐까? 이 덕대골은 특히 “내 다리 내놔.”라는 대사로 잘 알려져 이다. 덕대는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뜬 자식의 시체를 대충 수습한 무덤을 말한다. <덕대골>에서 주인공 아내는 도사의 말을 듣고 병든 남편의 병을 고치기 위해 덕대골에서 죽은 지 얼마 안 된 사체의 다리를 잘라온다. 그리고 다리 잘린 사체가 아내의 뒤를 쫓아오며 “내 다리 내놔.”라고 고함친다. 아내의 남편은 도사의 말처럼 사체 우린 물을 먹고 쾌차한다.

<덕대골>의 쫓아오는 사체는 정확하게 말하면 좀비는 아니다. 하지만 머리를 풀어헤친 거동 불편 사체가 달려오는 장면은 좀비물과 거의 흡사한 공포 심리를 자극한다. 또한 <덕대골>은 단순 공포물만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희생을 바탕으로 휴머니즘이 짙게 깔려 있다. 여기에 오컬트적인 요소와 권선징악의 교훈적인 요소들이 골고루 섞여 있다.

2000년대 이후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K 좀비물의 특질의 바탕도 비슷하다. 서양 좀비물의 공포를 끌어와 한국식 드라마의 양념을 버무린다. 한국의 대표적인 좀비영화 <부산행> 또한 마찬가지다. <부산행>은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좀비떼가 나타나 KTX에 침투하는 이야기다. <부산행>은 전형적인 좀비물의 플롯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부산행>은 석우(공유)가 딸 수안(김수안)을 지켜내는 아버지의 서사이기도하다. 여기에 임산부 성경(정유미)과 남편 윤상화(마동석)의 가족드라마이기도하다. 또한 이들 타인들이 하나의 대안 가족처럼 변해가는 구성이기도하다. 이처럼 <부산행> 역시 전형적인 좀비 서사에 한국식 권선징악과 휴머니즘이 섞여 있다. 하지만 이런 요소는 좀비 마니아들에게 한국식 신파라고 놀림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K 좀비 서사물이 늘어날수록 신파의 요소들은 이제 다른 의미를 드러낸다. 사실 전형적인 할리우드 좀비물은 좀비는 비이성적,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라는 구도를 따른다. 좀비의 습격으로 인간도 비이성적으로 변하면서 공포에 발이 묶인다.

허나 한국식 좀비물에서 좀비에 대항하는 주인공들은 딱히 이성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한국식 좀비물에서 인간들은 굉장히 감정적이다. 가족 서사와 휴머니즘 때문에 주인공들은 종종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위기에 빠질 때도 여러 차례다. 또한 계급의 차이나 따돌림의 방식으로 서로를 혐오하기도 한다. 반면 좀비들은 인간을 물어뜯겠다는 하나의 목표 아래 비록 걸음은 비틀거려도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직진한다. 마치 주식이나 비트코인 시세 그래프처럼 등락을 반복하면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 역시 이런 한국 좀비 서사의 특질이 모인 최신판이다. <지우학>은 좀비물에 한국 이야기들의 수많은 서사방식을 버무린 종합선물이다. 그 때문에 좀비물이라는 큰 줄기 아래 학원물과 가족드라마, 군사드라마가 섞여 있다.

가족서사는 이청산(윤찬영)과 남온조(박지후)의 이야기에 스며들어 있다. 이청산은 청산치킨을 하는 엄마와의 관계를 통해, 남온조는 소방구조원 아버지를 통해 그 드라마를 그려낸다. 특히 온조의 아버지 남소주(전배수)는 딸을 구하는 전형적인 아버지 서사의 인물이다.

한편 <지우학>은 좀비 바이러스를 해결하는 봉쇄와 작전 계획 등을 통해 군사드라마의 모습도 드러낸다. 사실 <지우학>만이 아니라 영화 <부산행>과 드라마 <스위트홈>에서도 군대는 꽤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은 대중문화 강국인 동시에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국이다. 그 때문에 한국인에게 군대와 전쟁의 이미지는 서양에 비해 좀 더 밀접하고 일상적인 동시에, 무의식적인 억압기제이다. <지우학>에서는 그 면면들이 곳곳에 드러난다.

허나 <지후학> 서사의 중심은 역시 학원물이다. 첫사랑처럼 달콤한 이야기부터, 왕따 서사와 우정 서사까지 <지우학>은 학원물과 좀비물의 연결고리를 촘촘하게 쌓는다. 그 때문에 효산고등학교는 좀비서사에 적합한 최적의 장소가 된다. 도서관, 교실, 계단, 복도, 음악실, 체육관 등 모든 장소를 좀비와의 싸움에 어울리는 장소로 만들어내는 구도도 빼어나다. 여기에 <지우학>은 좀비와의 전쟁 중 효산고 학생들 사이에 벌어지는 우정과 사랑, 감정적인 대립의 서사도 놓치지 않는다. 아이들은 연인이 되었거나, 심판관이 되었다가, 전사도 되었다가, 냉정한 괴물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10대 학생의 풋풋한 감정선들은 살아 있다.

그런데 <지우학>은 <부산행>과는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지우학>은 한국식 휴머니즘을 또 한 번 좀비물의 서사로 물어뜯어 버리는 것이다. 청산과 온조의 엄마, 아빠는 모두 좀비로 돌변한다. 친구들 사이에 우정은 극적인 상황에 내몰리면 끊어지고, 따돌림 당한 아이들은 구원받지 못하고 스스로 고립되어 좀비보다 더 못된 악의 역할을 한다. 결국 <지우학>은 좀비 이야기의 서스펜스를 놓치지 않으면서 가족과 개인의 따스한 인간미로도 치유 못하는 지금 우리 한국 사회의 비정함을 밑바닥에 깐다. 좀비물과 신파를 뒤섞는 동시에 팬데믹의 먹구름에 갇혀 있는 비정한 21세기를 보여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 21세기 K 좀비물이 세계인에게 공포의 공감을 주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넷플릭스, 영화 <부산행>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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