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사자 된 김희선·로운은 어떤 ‘내일’을 보여줄까
‘내일’, 저승과 오피스와 휴먼이 만났을 때

[엔터미디어=정덕현] 스스로 죽으려는 자들을 막는 저승사자. MBC 금토드라마 <내일>에서 저승사자는 죽은 자를 저승으로 데려가는 자들만이 아니다. 이른바 ‘위기관리팀’이 있다. 그 팀장은 바로 구련(김희선). 그는 죽은 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인도관리팀 박중길(이수혁) 팀장과 대립한다. 박중길은 자살이 ‘살인과 다를 바 없다’며 “남겨진 자들의 아픔은 생각지도 않는 가장 이기적인 행동”이라 말한다. 그들을 막기 위해 조직된 위기관리팀이 왜 필요한가 모르겠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박중길의 그런 지적에 대해 구련은 반박한다. 자살은 죄가 아니라 “누구보다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지막 발버둥”이라는 것. 그의 이 말은 <내일>이라는 저승 판타지가 앞으로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말해준다. 그 ‘마지막 발버둥’을 들어주고 이를 통해 극단적인 선택을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내일>은 너무나 힘든 하루하루로 인해 내일이 없었으면 하는 이들에게 과연 무엇이 내일을 살 수 있게 해주는가를 묻는 드라마다.

저승사자가 본업인 죽은 자들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런 선택을 막는 일도 한다는 판타지 설정에 <내일>은 옥황(김해숙)의 목소리로 이런 근거를 제시한다. “한국에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하루 평균 40명 한해에 만 오천 명 불명예스런 세계 1위지. 출산율 또한 세계 최저. 인구 감소폭이 중요 32개국 중에 가장 가파르게 감소되고 있어. 이 수치들이 뭘 뜻하는지 몰라? 이 나라의 소멸이야!”

즉 자살률 세계 1위에 출산율 세계 최저인 이런 상황으로 가다간 나라 자체가 사라질 거라는 이야기다. “주마등의 존재도 사라지고 폐업할 수밖에 없다는 거지. 우리 직원들이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뭐야? 금수저 환생 때문 아냐? 돈 명예 건강 뭐든 하나를 갖고 태어날 수 있다는 혜택. 근데 환생할 곳이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나라 자체가 소멸하면 환생도 어렵다는 위기의식. 저승사자와 옥황이 말하는 이 나라의 위기는 판타지지만 풍자적인 뉘앙스가 담긴다. 얼마나 살기 힘들어 자살하거나 아예 아이를 갖지 않는 현실이면, 저승에서 이를 걱정해 ‘위기관리팀’까지 꾸리겠는가.

저승이 등장하는 서사라면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고, 그것도 자살을 생각하는 이들의 이야기에는 절망적이고 무거운 현실이 담길 수밖에 없다. 자못 무거울 수밖에 없는 소재지만, <내일>은 이를 저승과 꿈의 세계를 넘나들고, 그 세계를 하나의 회사처럼 그려냄으로써 발랄함을 유지한다. 또한 죽으려는 자들의 사연을 들어주고 이를 되돌리려는 휴머니즘을 지향으로 내세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저승 오피스 휴먼 판타지’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재들을 하나로 묶어낸다.

자살하려는 자를 살려내려다 코마 상태가 된 최준웅(로운)은 그래서 이 저승의 독점 기업 주마등에 ‘계약직’으로 들어간다. 6개월 동안 일을 하면 깨어나게 해준다는 조건이다. 그렇게 입사(?)해 그가 맡게 되는 첫 번째 관리 대상자는 학창시절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던 방송작가 노은비(조인)다. 학폭 가해자들에게 잔혹한 복수를 해주는 내용의 웹툰 ‘복순이’의 작가와 인터뷰를 하다 고통스러워 뛰쳐나가는 모습은 아마도 웹툰작가가 노은비의 가해자였을 거라는 짐작을 하게 만든다.

그런데 바로 이 관리대상자인 노은비의 과거는 사연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보여진다. 유리가 깨지는 것처럼 부서지기 쉬워 보이는 기억 속에서 구련과 최준웅은 도망치며 노은비의 기억을 찾아간다. 그 속에서 교실 칠판 가득 채워진 ‘저주의 말들’을 보게 되고, 그걸 울며 지우는 노은비의 모습을 보게 된다. 과연 이들은 이 무너지는 기억 속에서 그 사연을 들여다보고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을까.

<내일>은 자살률 최고, 출산율 최저라는 오명을 가진 한국의 현실을 자살자들의 사연을 통해 끄집어낸다. 그런데 그걸 드러내는 방식은 회사처럼 운용되는 저승사자들과, 사연자들의 꿈 속을 들어가는 시각적으로 재연된 판타지를 통해서다. 그래서 보다 액션이 더해진 판타지 영상들을 따라가다 보면 거기 현실에 아파하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더 이상 내일이 오기를 바라지 않는 이들을. 너무 무겁지 않게 저승과 이승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모험을 통해 현실을 끄집어내고, 거기 담긴 사람들의 뜨거운 이야기가 담기는 것.

그래서 <내일>에는 학교폭력 같은 삶을 포기하게 만들 정도의 심각한 우리네 현실 문제를 다양하게 끄집어낼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현실에 무너진 이들을 어떻게 다시 일으켜 세울 지도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과연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내일’을 보여줄까. 그래도 살아갈만한 내일일까. 여전히 암담한 현실이 반복되는 내일일까. 일단 카리스마 가득한 모습으로 돌아온 김희선과 멍뭉미 넘치는 로운의 조합과, 판타지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잘 구현한 연출이 더해져 그 첫 단추는 잘 꿰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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