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도둑들’ 왜 ‘백년손님’보다 진화하지 못했나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가족예능은 더 이상 트렌디하지 않다. 여기서 트렌드라함은 TV의 주요 소비자로 굳건히 자리 잡은 중장년층에게도 그렇다는 뜻이다. 지난 10년 간 가족예능은 초기 관찰예능 형태에서 시작해 <살림남>시리즈, TV조선의 ‘맛’ 시리즈로 대표되는 시트콤 요소가 강한 주말드라마의 가볍고 친근한 버전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그 이상의 진화가 없는 변주를 거듭하면서 예능정보쇼의 확대된 버전으로 굳건한 세계관을 구축한 SBS <미우새>를 제외하곤 현재 캐스팅으로도 극복이 안 되는 자기복제로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그런 점에서 오은영 박사의 출현은 관련 기획을 하는 제작진들에게 하나의 희망처럼 다가왔다. 물론 한 사람의 전문가를 한 사회가 맹신했을 때의 위험성은 늘 도사리긴 하지만, 그를 통해 기존의 극화된 형식의 한계를 맞이한 관찰예능은 정보와 교육, 사회적 의식 함양이라는 가치라는 새로운 볼거리로 만들 수 있었다. 물론 구현하기는 훨씬 까다로워졌지만 봐야 하는 이유, 색다른 가치를 내세울 명분은 충분히 됐다.

이처럼 변화의 기운도 나타나고, 기존 가족예능도 주춤한 이때 새롭게 편성된 JTBC의 신규예능 <딸도둑들>이나 올해 초부터 방송중인 MBC의 <호적메이트>는 캐스팅의 변주 이외에 추구하는 바가 새롭지 않아 놀랍다. 반응도 시원치 않다. 지난 12일 첫 방송된 <딸도둑들>은 강호동, 이수근, 홍진경, 장동민, 류진, 스포츠스타 조현우 등등의 네임벨류에 비해 초라한 1.5%의 시청률을 기록 중이고, <호적메이트>도 2~3%의 근근한 수준이다.

워낙 빠르게 돌아가고 그중에서도 시간이 빨리 흐르는 곳이 콘텐츠업계이긴 하지만 <딸도둑들>같은 경우 잠시 역사를 잊은 것인가라는 의문마저 든다. 제작발표회에서 강호동은 “장인과 사위의 브로맨스라는 소재 자체가 일단 특별하다”며 “방송 이후 장서관계의 새로운 터닝 포인트, 혹은 트렌드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고, 홍진경은 “가족 예능에서 장인과 사위의 관계를 보는 건 처음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5년 전에 사위와 장인·장모 이야기를 다루면서 관찰예능으로 무려 5년간 큰 사랑을 받은 SBS <백년손님>이 있었다. 물론 후반부 갈수록 패턴화되는 에피소드의 한계에 봉착하긴 했지만 방송사 내부 사정으로밖에 볼 수 없는 의문의 폐지가 되기까지 동시간대 1위를 지키며 7~8%의 준수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백년손님>은 안방마님 김원희를 중심으로 2009년 <스타 부부쇼 자기야>로 시작해 2013년 장서 관계를 포착하는 관찰예능으로 리뉴얼했다. 아내 없이 사위 홀로 처가에서 지내는 하룻밤을 카메라에 담는다는 간단한 한 줄이 설정의 전부다. 연예인, 스포츠스타, 일반인 사위 가족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장모 혹은 장인과 사위와의 관계에서 특별한 캐미를 선사했고, 추억의 ‘후포리 3인방’등 가족을 넘어서 동네 어르신들까지 하나의 세계관 속으로 끌어들이며 세대불문한 사랑을 받으며 화제성도 무척 컸다.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유는 명확했다. 당시 유행하던 종편의 떼토크쇼와 정반대의 고부갈등이 아닌 처가살이라는 '장서 갈등'을 소재로 삼은 것 자체가 충격적이었고, 당시 핫한 관찰예능을 성인 가족예능에 투여한 점도 새로웠다. 어색하고 오해가 있던 관계가 서서히 변해서 서로에 대한 정이 깊어지는 모습은 성장 서사를 기본으로 삼는 리얼리티 예능, 관찰 예능의 정수를 강타했다.

그런데 2022년에 편성된 <딸도둑들>은 장서관계를 세상 가장 어색한 사이인 장인과 사위로 보다 구체화한 것 이외에 <백년손님>의 호기심에서 나아간 점이 없다. 오히려 이 압축으로 인해 에피소드 생산과 몰입에 많은 제약을 야기한다. 각 에피소드마다 등장인물이 사위와 장인 단 둘이다보니 관계에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시트콤처럼 극화된 재미가 이제 필수가 된 관찰예능의 재미와 볼거리를 만드는 데 제약이 따른다. 즉, 볼거리나 보여줄 수 있는 관계가 무척 한정적이다. 그래서 현실감이 떨어지는 기획된 이벤트들을 펼치는데 스튜디오에 앉아있는 베테랑 MC들조차 별다른 코멘트를 남기지 못할 정도로 긴장이나 재미를 주조하는 별다른 장면이 없다. 시트콤화된 가족예능에 익숙한 시청자 입장에서도 웬만해서는 몰입하기 쉽지 않다.

또한, 프로그램이 보여주고자 하는 골이 너무 명확하다. 결국은 아내나 장모 입장에서 귀엽고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브로맨스 하나다. 출발선은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처럼 기존의 장인과 사위의 관계라는 고정관념이다. 그런데 <며느라기> 같은 드라마도 나오고 여성서사가 콘텐츠 시장의 대세를 이룬 시대에, 장인과 사위의 브로맨스는 누구에게, 누구를 위한 로망일지 의문이 든다. 중장년층에게 사위와의 특별한 관계가 로망일까? 방송에서 사위와 장인의 어색함을 탈피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누구에게 재미로 다가올 것인가?

홍진경은 “화요일 밤, 가족들과 편안히 모여 앉아 ‘저 집은 저러고 사네’하며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이 가치는 여전히 유효할 뿐 아니라 무척 크다. 그러나 이러한 소소한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이제 기획은 대단히 혁신적이고 볼거리는 남달라야 한다. 여전히 캐스팅을 통한 반전이라는 한 방이 남아 있긴 하지만, 출발선이 너무 평이하단 점이 문제다. 트로트 붐이 지나가고, 가족드라마도 더욱 간간해지면서 변화를 거듭하듯이 중장년층도 언제나 새로운 걸 원한다. 특히 요즘 시대 흐름에, 이토록 긴 계보를 이어온 가족예능을 새롭게 선보이기 위해서는 더한 버라이어티와 더한 리얼리티가 필요하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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