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 경계지대에서 대안 찾기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아기에게는 베이비박스가 이편과 저편을 나누는 세계의 경계였을 게다. 이편이 엄마의 품에서 살아가는 삶이라면 저편은 보육원으로 가거나 누군가에게 입양되는 삶이니 말이다. 비가 쏟아지는 밤, 소영(이지은)은 그 베이비박스 앞에 아기를 놓고 떠난다. 아기 우성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쪽지에 남겨 놓은 채.

그런데 소영은 왜 베이비박스 안에 아기를 넣지 않고 그 앞에 놓고 떠났을까. 다시는 아기를 보지 않으려는 결심 때문이라고 했지만, 어쩌면 그것이 영영 저편의 세계로 아기가 경계를 넘어가는 것처럼 여겨져서가 아니었을까. 저편으로 넘기지도 못하고 이편 자신의 품에 계속 안을 수도 없는 소영은 그래서 베이비박스 앞에 아기를 내려놓고 떠난 게 아닐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는 영화의 첫 시퀀스만으로 이 작품이 그리려는 세계를 압축해 보여준다. 소영이 떠난 후 그 아기는 여러 손을 거친다. 마침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아기를 인신매매하는 이들을 검거하기 위해 잠복근무를 하고 있던 형사 수진(배두나)이 그 아기를 들어 베이비박스 안에 넣어준다. 혹여나 아기가 위험해질까 걱정해서다. 그런데 아기를 안에서 받은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는 엉뚱하게도 의뢰인들에게 팔기 위해 아기를 상현이 운영하는 세탁소로 데려다 놓는다.

즉 이편에서 저편으로 넘어간 아기는 수진의 손을 거쳐 상현과 동수에 의해 어딘가로 팔려갈 상황에 이른다. 그런데 그 때 이편의 엄마 소영이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교회를 찾아오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동수는 그를 상현의 집으로 데려간다. 이들을 추적하는 수진에게는 그들이 인신매매범이라 불리지만 상현은 그것이 아기를 좀 더 나은 부모를 찾아주기 위함이라고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러자 소영은 그를 비웃으며 그들이 결국 “브로커”에 지나지 않다고 일갈한다. 그러면서도 좀 더 나은 부모를 찾아 떠나는 여정에 자신도 함께 하게 되면서 이들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이들이 함께 떠나는 건 표면적으로는 아기 하나에 몇 천만 원을 벌 수 있다는 속물적인 이유 때문이지만, 그 이면에는 진짜 좋은 부모를 찾아주겠다는 진심도 담겨 있다. 그리고 이런 진심은 동수가 엄마에게 버려져 보육원에서 자란 인물이고 그래서 진짜 아기를 간절히 원하는 새 부모 밑에서의 삶이 보육원에서의 삶보다 낫다는 걸 그가 이야기 해주면서 전해진다. 그래서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들은 단지 ‘브로커’라는 한 마디로 단정할 수 없는 인물들로 다가온다.

흥미로운 건 아기를 통해 이 여정에 참여하는 이들이 저마다 자신의 상처나 결핍을 들여다본다는 점이다. 소영은 자신이 결코 키울 수 없는 사정이 있어 아기를 버릴 수밖에 없었지만, 아기를 놓고 가격을 흥정하거나 외모가 어떻다 지적하는 의뢰자들 앞에서 분노한다. 또 진정으로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것이 아기의 행복을 위해 더 나은 일이라 생각한다. 동수는 자신을 버린 엄마를 이해하지 못해 평생을 괴로워했지만 소영을 보면서 엄마의 심정을 이해하려 한다. 상현은 빚에 쪼들려 떨어져 지내고 있는 딸과 다시 함께 살고 싶어 하지만 아내가 아기를 가졌다는 이야기에 그들을 놓아주려 한다. 행복을 위해서 꼭 함께 사는 것만이 선택지는 아니라는 걸 소영과 아기를 통해 경험하게 되면서일 게다.

이들을 단지 ‘브로커’라는 한마디로 단정할 수 없다는 건 이들을 미행하며 그 일거수일투족을 봐온 수진과 이형사(이주영)의 변화에서 나타난다. 그들은 점점 이들을 검거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아기의 행복한 미래를 위한 선택을 생각하게 된다. 사건을 저질러야 이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어, 사건이 터지기만을 기다리는 이들은 드디어 깨닫는다. 자신들이 진짜 ‘브로커’ 같다는 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들은 주로 가족을 다루지만, 이를 통해 그려내는 건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어떤 범주로는 결코 설명될 수 없는 경계지대가 있다는 사실이다. 베이비박스 이편과 저편으로 아기의 경계는 분명히 나눠지지만, 이편과 저편이 아닌 또 다른 대안적인 곳으로 흘러간 아기는 그 곳에서 의외의 행복한 미래를 마주한다. 물론 그건 그 대안적인 길에 서 있는 이들이 이편과 저편이 아니라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아기의 길을 선택해줘서다.

<브로커>는 임신중단부터 버려지는 아기, 입양 같은 논쟁적인 내용들을 가져오면서 이편과 저편으로 단순히 나눠지지 않는 경계지대의 대안들을 얘기한다. 사회적 통념이나 법으로 나눠지는 합법과 위법 같은 경계가 결코 말해줄 수 없는 어떤 선택들이 있고, 그래서 이를 뛰어넘는 어떤 대안들이 가능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건넨다. 그리고 송강호는 바로 그 경계지대에 서 있는 상현을 특유의 복잡 미묘한 감정 표현으로 구현해낸다.

솔직히 그 과정이 대단히 흥미롭게 흘러가는 영화는 아니다. 또 결말이 그리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사회적 통념이 가치를 매기는 것으로는 판단될 수 없는 어떤 중간지대를 꺼내 보여주고, 그 대안에 담긴 먹먹한 감동과 위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작품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브로커>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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