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 투 더 댄스’, 이 신기한 댄스 버스킹은 왜 실패한 걸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돌아가 보자. JTBC 예능 <비긴어게인> 시리즈는 왜 흥했을까? 유명한 음악 영화에서 그대로 따온 동명의 예능 프로그램이 새롭게 느껴진 바탕에는 ‘호기심’이 있었다. 팝 문화의 성지에서 우리나라 대형 뮤지션들이 명함과 경력을 가리고 무대를 가지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당시 K-콘텐츠가 지금보다는 변방이던 시절이라 그들을 지켜볼 유럽인들의 반응도 궁금했지만, 일종의 몰카 상황극처럼 졸지에 무명 뮤지션으로 리셋된 환경에 놓인 뮤지션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무대를 가질지도 궁금했다.

영화 <비긴어게인>이 뉴욕 거리를 배경으로 분위기를 만들었듯, 설렘을 일으키는 이국적인 도시의 풍경 속에서 이방인이 된 우리의 뮤지션들이 그들의 얼굴과 명성을 전혀 모르는 관객 앞에서 초심으로 돌아가 음악을 선보인다는 설정이 재밌었다. 로드무비와 같은 영화적인 기획이면서 사실상 뮤직비디오였고, 당시 트렌드였던 여행 예능의 볼거리가 있으며 동시에 ‘국뽕’ 고취와 ‘문화 사대주의’의 미묘한 경계 위에 서 있었다.

그러던 이 시리즈가 문화 사대 등의 지적을 넘어서서 사랑을 받는 음악 예능이자 여행 예능으로 도약한 계기는 박정현, 하림, 헨리, 이수현 등을 중심으로 하나의 가족처럼 움직인 패밀리밴드 덕분이었다. 멤버 전원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며, 여행을 즐길 줄 알고, 각자 뚜렷한 장기와 분위기 다른 보컬을 가졌으면서도 아티스트의 정체성과 예민함을 캐릭터화하기보다 어울리고 뒤를 봐줄 줄 알았다. 출연자 한 명 한 명의 뚜렷한 개성이 조화를 이루고, 각기 다른 음색과 역할이 멋진 하모니를 만든 패밀리십은 음악 예능에서 이들의 여정을 함께하고 싶고, 다음 주가 기다려지는 여행 예능으로 이야기를 확장시켰다. <비긴어게인> 시리즈는 패밀리밴드의 여행이 끝난 후에도 계속 됐지만 반응은 누가 버스킹하느냐에 따라 확연히 차이가 났다.

돌아와 JTBC 예능 <플라이 투 더 댄스>는 제목만 다를 뿐 <비 어게인>의 제작진이 헨리와 함께 댄스를 소재로 만든 <비긴어게인>이다. 엠넷 <스우파>로 여성 댄서들이 큰 관심을 받는 이때, 스트릿댄스의 본고장인 뉴욕과 LA에서 리아킴, 러브란을 비롯한 국내 최정상 댄서와 <스우파> 멤버 아이키와 리정, 그리고 신예 춤꾼들인 에이미, 하리무 등이 무대를 갖는다. 톱레벨의 여성 댄서들이 명함을 가리고 해외에 나가 길거리 공연을 펼친다. 방송 전부터 티저 형식으로 유튜브에 미국에서 가진 버스킹 무대 직캠을 공개하면서 붐업을 유도하고, 글로벌한 스타인 리아킴, <스우파>의 핵심인 리정, 아이키 등 인지도 높은 출연자들을 통해 홍보를 했다.

그런데 1회부터 지금까지 시청률과 화제성은 너무나 잠잠하다. 결국 LA로 자리를 옮긴 최근 방송분에서 시청률 1% 마지노선까지 붕괴됐다. 가장 핫한 인플루언서로 우뚝 선 <스우파>의 주축들이 참여한다. 발 빠르게 해외 로케를 재개했다. <비긴어게인>의 댄스 버전 버스킹 무대를 유튜브를 통해 미리 선공개하며 타깃 시청층에게 일종의 티저 전략을 썼다. 그러나 전혀 시청률에 반영되지 않았고, 오히려 관심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 <스우파> 붐을 타고 만들어진 댄스 예능 프로그램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에 빠진 셈이다. <스우파>의 우산 아래 만들어진 댄스 프로그램들은 정작 보면 뭐 볼만하다는 평이지만, 보게 되기까지의 해자가 너무나 깊고 험하다.

<스우파>가 흥한 건 사실 춤 때문이 아니다. 이 프로그램을 발판삼아 방송계에 안착한 멤버들의 면면과 활약이 춤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캐릭터의 매력, 그리고 익숙하고 뻔한 서바이벌 무대 위에서 오랜 시간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이들의 자존감과 독보적인 개성을 가진 캐릭터들의 연대가 흥행의 단초가 됐다. 방송에서 놀 줄 아는 새로운 얼굴이 즐비했고 시대상의 반영과 맞아떨어진 거지 ‘춤’이 포커스가 아니었다.

하지만 <플라이 투 더 댄스>는 댄스 버스킹을 내세웠다. 결과를 놓고 볼 때 유튜브 직캠 영상부터 시청률까지 어쿠스틱 세션으로 버스킹을 하는 노래에 비해 조명과 무대 장치, 음향 효과 없이 펼쳐지는 길거리 춤 공연은 도시에 녹아들지도, 놀라움을 만들지 못했다. 딱히 몰입이 안 되는데 출연진은 너무나 크게 만족하고 감격하고 감동하고 흥분하면서 괴리는 더욱 커진다. 편곡 과정이 없다보니 커버 댄스는 오리지널리티를 느낄 부분이 비교적 부족하다. 누구나 노래 감상은 할 수 있지만 춤 평가는 한층 더 전문적인 분야다. <스우파>로 모든 것이 해결됐다고 착각하지만 댄서는 여전히 낯선 출연자다. <스우파>와의 결정적인 차이이기도 하다. 시청자와 쌓아온 역사가 적다보니 앞서 언급한 리셋의 호기심을 느끼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맨해튼 브리지를 배경으로 <월드 오브 댄스> 심사위원 시절 선보였던 춤을 추는 리아킴의 모습에 출연자들은 감격하고, 자랑스러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리아킴은 “이런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 시간을 위해 계속 활동하고 싸웠다”고 말했지만 그 성취의 감동을 시청자들이 함께 느끼기 위해선 꽤나 많은 부연 설명이 필요했다.

<스우파>의 인지도를 가져오면서 새로운 스타와 관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엿보인다. 그러나 출연자 사이의 위계가 이미 정해져 있고, 누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 춤에서도 일상에서도 예측이 단박에 가능하다. 한 달간 함께 연습을 하고 나갔다지만, ‘추자’는 <스우파>처럼 원래 있던 뿌리들을 흙만 잘 털어서 보여준 게 아닌 급조된 조합이다 보니 ‘예능’으로 볼만한 관계나 봤던 자신감 충만한 모습 이외에 다른 분위기는 만들지 못했다.

<비긴어게인>이란 시리즈 관점에서도 문제는 명약관화하다. 멤버들은 무척 패셔너블하고 자신감 넘치는 매력적인 아웃핏을 선보인다. 좋긴 한데, 해외 멋진 도시의 화려함 속에 무척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공연을 온 아티스트들 같다. 혹은 단체 관광이거나. 뉴욕의 시크한 도시 풍경과 바쁘고 화려한 삶, 맛보기로 보여준 LA의 여유 넘치는 바이브와 탁 트인 여름 풍경 안에 녹아들어야 할 ‘여행’의 낭만이 잡히질 않는다. 리정과 헨리를 제외하면 언어의 제약도 커서 도시와도, 관객과도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그래서 떠나왔다는 로망이 자극되지 않고 버스킹 무대는 놀랍고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방송 이벤트에 머문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기도 전에 나가서 공연을 한다. 공기를 느끼고, 긴장을 달랠 틈이 없다. 장소는 외국이지만 K-콘텐츠의 위상과 접근성이 달라진 만큼 팬이 이미 몰려 있어서 리셋된 환경에 몰입하는 분위기는 깨진다. 기존 <비긴어게인> 시리즈가 최대한 한국, 아시안 관객을 편집했던 이유를 생각해볼 때 로망의 울타리 구축에 실패한 셈이다.

이젠 살짝 지겨운 <스우파>의 잔향에다가, 너무나 익숙해진 <비긴어게인>의 맛, 노래에 비해 버스킹으로 즐기기에 난해한 댄스 퍼포먼스까지 성공했던 코드는 다 가져왔지만 그것이 새로운 콘텐츠로 발전되지 않았다. 춤 자체가 방송 콘텐츠가 될 수 있을까? 댄서들을 알리는 것이 예능으로 어느 정도 대중성을 지닐까? 냉철한 대중의 기호를 다시 한 번 확인한 사례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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