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토리, 스튜디오 체제의 롤 모델로 급부상한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이어 <빅마우스>도 연달아 성공했다. 사실 과거 방송사 중심으로 돌아가던 드라마업계의 관점으로 보면 두 작품의 성공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가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을 게다. 즉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ENA에서 또 <빅마우스>는 MBC에서 방영되었으니 두 작품의 연관성이 없게 느껴졌을 거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방송사가 아니라 어느 콘텐츠 제작사가 만들었는가가 중요해졌다. 그리고 그것이 중요하다는 걸 실증적으로 보여준 사례로서 두 작품을 제작한 에이스토리가 주목받고 있다. 이른바 방송사 체제에서 스튜디오 체제로 바뀌어 가고 있는 현재, 그 성공사례로 떠오르고 있는 것.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주목받는 건 그간 좋은 작품을 성공시키고도 IP(지적재산권)를 모두 플랫폼에 빼앗기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던 그 흐름을 뒤집었다는 점이다. 과거 지상파에서는 제작비의 70% 정도를 주고 IP를 가져가는 관행이 있었다. 당장 제작비 수급이 중요한 제작사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OTT 체제로 바뀌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OTT가 제작비의 100+a를 제공해 조금 나은 조건이었을 뿐, IP는 온전히 OTT로 넘어가는 상황이었다.

에이스토리는 OTT와 작업을 해서 심지어 글로벌한 성공까지 거둔다고 해도 제작사는 여전히 어렵다는 걸 일찍이 경험했다. 그 작품이 바로 김은희 작가의 <킹덤>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된 이 작품은 시즌2까지 제작되며 글로벌 신드롬까지 만들었지만 에이스토리에는 그 성과의 어드밴티지가 돌아가지 않았다. 그 이상의 수익을 내기도 어려웠고, 리메이크나 IP를 통한 부가사업도 불가능했다.

김은희 작가와 에이스토리가 후속작으로 <지리산>을 넷플릭스가 아닌 아이치이의 투자를 받아 제작한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지리산>은 아이치이에 방영권만을 줬을 뿐 IP를 온전히 제작사 소유로 할 수 있었다. 물론 작품이 생각만큼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해 이러한 선택이 결실로 돌아오긴 어려웠지만, 어쨌든 에이스토리는 이런 행보를 통해 중요한 경험치를 갖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실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따게 됐다. 애초 SBS와 이야기 됐지만 과감하게 ENA라는 신생에 가까운 케이블 채널과 계약하고 또 글로벌 방영은 넷플릭스와 계약하면서 온전히 IP를 갖는 걸 선택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결과적으로 보면 제작사나 플랫폼 모두에 상생의 이익을 가져다 준 작품이 됐다. 첫 시청률이 0%대(닐슨 코리아)일 정도로 채널 인지도가 바닥이었던 ENA는 최고시청률 17.5%를 거둔 이 작품을 통해 채널 브랜드 인지도를 극점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또 넷플릭스에서도 국내는 물론이고 글로벌 차트에서도 인기를 끌만큼 이 작품은 화제가 됐다.

무엇보다 에이스토리는 이 작품의 성공으로 미국, 중국, 일본 등 해외 여러 나라에서의 리메이크 제안을 받게 됐고, EMK 뮤지컬컴퍼니와 함께 뮤지컬 제작에도 들어갔다. IP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다. 마치 에이스토리라는 스튜디오의 경쟁력을 제대로 보여주겠다 작심한 듯 차기작으로 제작한 <빅마우스> 또한 최고 시청률 11%를 넘기며 지상파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다. 금토드라마 시간에 부동의 채널로 자리했던 SBS를 MBC가 완벽히 눌러버리며 최근 들어 <옷소매 붉은 끝동> 같은 작품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는 MBC 드라마에 제대로 힘을 실어준 것이다.

ENA라는 채널 브랜드를 급상승시키고, 넷플릭스에서도 글로벌 성과를 낸 데다, 몇 년 동안 이미지 추락까지 경험했던 MBC 드라마를 다시 옛 궤도로 올려놓은 상황. 이런 상황이라면 향후 플랫폼들은 에이스토리가 제작하는 작품에 줄을 설 수밖에 없다. 콘텐츠 제작사가 플랫폼을 찾아가 편성과 투자를 위해 IP까지 내어주던 그 흐름을 떠올려보면 완벽히 역전된 상황이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은 K콘텐츠의 경쟁력이 될 수밖에 없는 콘텐츠업계 전체에 좋은 선례이자 신호탄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에이스토리의 이런 선례가 가능했던 건 두 가지 전제가 있어서다. 그 하나는 그간 작품 자체(대본, 연출)의 완성도에 투자하며 갖게 된 자신감이 그 첫째이고, 다른 하나는 그래도 다른 제작사들과 비교해 버틸 여력이 있을 만큼의 규모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에이스토리와 달리 영세한 규모의 제작사들은 여전히 바로 그 약점 때문에 좋은 작품을 내고도 거대 플랫폼들 앞에서 IP를 내주는 일이 여전히 벌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현재 K콘텐츠의 세계적인 위상을 만든 건 물론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이 그 영향력을 발휘한 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킹덤>이나 <오징어게임> 같은 K콘텐츠 자체가 가진 경쟁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들이다. 결국 K콘텐츠가 이 경쟁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성공이 성과로 돌아오는 콘텐츠 제작사 중심의 새로운 체제가 마련되어야 한다. 방송사나 OTT 같은 플랫폼보다 콘텐츠 제작을 위해 현업에서 발로 뛰고 있는 제작사들 중심의 생태계 마련을 위해 보다 과감하고 폭넓은 정부의 지원이 절실해진 시점이다. 제2, 제3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같은 성공스토리가 계속 나오려면.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ENA, MBC, tvN,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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